영화 <로드 투 퍼디션> 포스터.

영화 <로드 투 퍼디션>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미국·영국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주요 부문을 휩쓸며 세기말을 화려하게 장식한 영화 <아메리칸 뷰티>로 데뷔한 샘 멘데스 감독은 스타 연극 연출가 출신으로 영화판에서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2000년대 다작을 함에도 영화를 잘 만들어 '믿고 보는 감독'으로 군림했다. 2010년대 들어선 < 007 > 시리즈 두 편만 연출했는데,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를 받았다. 

< 007 스카이폴 >은 007 시리즈 최초로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시리즈 최고 수익을 올린 것과 동시에 미국·영국 아카데미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는 이례적으로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수상을 하는 쾌거를 이뤘다. 자타공인 2010년대 초반 최고의 블록버스터였다.

하지만 다음에 내놓은 < 007 스펙터 >는 전작의 성공으로 관객들의 기대치가 높았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 면에서 좋지 못했다. 이후 샘 멘데스는 007 시리즈에서 하차했고, 올 겨울에 제작과 연출과 각본까지 최초로 맡은 영화 < 1917 >을 앞두고 있다. 

샘 멘데스의 초기작이자 두 번째 연출작 <로드 투 퍼디션>은 볼 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두루 갖춘 작품이다. 폴 뉴먼과 톰 행크스라는 미국 대표 배우가 함께 했다는 게 특이점일 테고, 마피아 복수를 다룬 범죄 누아르라는 점과 가족애 중 부성애를 콕 찝어 다룬 드라마라는 점이 눈에 띈다. 그밖에도 이후 007 시리즈에서 함께 할 다니엘 크레이그를 비롯해 주드 로, 스탠리 투치, 제니퍼 제이슨 리 같은 유명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도망치는 마피아

대공황과 금주법이 미국 전역을 한창 휩쓸고 있던 1931년, 마피아 보스 존 루니(폴 뉴먼)에겐 두 아들이 있다. 하나는 친아들 코너 루니(다니엘 크레이그), 다른 하나는 양아들 마이클 설리반(톰 행크스). 마이클은 '죽음의 천사'라 불리며 조직의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하지만 마이클의 두 아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비가 쏟아지는 그날도 마이클은 보스의 명을 받고 코너와 함께 메시지를 전달하러 갔다. 자신의 큰아들 마이클 주니어가 몰래 따라온 것을 모른 채. 

일종의 협박 메시지만 전하며 잘 타이르고 오면 될 것을 코너가 보스의 명을 어기고 돌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마이클도 어쩔 수 없이 합세해 일망타진하고, 이 광경을 마이클 주니어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본다. 하지만 보스는 코너를 향한 적개심을 만천하에 드러낼 뿐 마이클과 마이클 주니어는 걱정하지 말라고 챙긴다. 

코너는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마이클 가족에게로 돌린다. 마이클을 집에서 떼어놓아 살인교사를 시키지만 실패하고 직접 마이클 집으로 가서 아내와 막내아들을 죽인다. 큰아들은 간신히 무사할 수 있었다. 마이클은 코너의 주체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이 아닌 조직적인 행동이라고 판단, 보스가 보내온 거액의 돈과 복수를 그만두라는 메시지를 거절하고 훗날을 도모하며 마이클 주니어와 함께 길을 떠난다. 

세심하고 고풍스러운 범죄 누아르 서사

영화 <로드 투 퍼디션>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전반부에는 마피아의 생리를 다루며 평화 속에서 불안과 갈등이 점차 증폭되는 것을 그린다. 후반부에는 마이클 부자의 낭만적이기까지 한 여정을 다루며 혼란 속에서 피어나는 부성애에 주목한다. 시간 흐름에 따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는 것과 별개로 영화 자체를 두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선, 범죄 누아르 서사다. 누군가 좋은 모습을 보이며 잘 나가면 누군가는 반대의 곡선을 그린다. 영원한 평화는 없다. 차곡차곡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가 넘친다. 다분히 고의적인 또는 주체할 수 없어 의도치 않은 일이 터진다. 그동안 쌓아왔던 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문제는 오랜 세월 쌓였기에 죽음의 행렬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 비파멸적 희생으로 끊어내지 않는 이상 영원히 계속될 숙제일지 모른다. 

영화는 세심하고 고풍적으로 서사를 이끈다. 삐걱거림 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1930년대 미국 마피아의 복수'라는 일반인과는 굉장히 동떨어진 소재를 가져온 만큼, 여러 곳에서 지극히 영화적인 설정이 거슬리기도 한다. 마이클이 아무리 출중한 실력을 가진 마피아 일원이라도 총 한 자루를 가지고 홀로 일급 마피아 일원들을 상대하는 것도 모자라, 수없이 많은 은행에서 검은돈만을 털며 마피아가 고용한 프로 청부살인업자의 위협까지 물리칠 수 있을까. 다행인지, 의도한 것인지 영화에서 액션이 거의 부각되지 않기에 영화 감상을 해치는 수준은 아니다. 

로드무비 드라마

<로드 투 퍼디션>은 엄밀히 범죄 액션 영화임에도 드라마에 큰 장점을 보인다. 당연히 감독의 의도가 묻어나왔기 때문일 텐데, 동명의 원작 그래픽노블의 영향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미국에 정착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마피아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과정을 풀어내는데, 웅장함이나 장대함과는 거리가 있다. 이 영화의 드라마를 이루는 소재는 마피아적 가족애보다 소시민적 가족애이기 때문이다. 즉 조직의 규율, 나아가 이민자들 전체를 위해 가족을 희생시키거나 그 반대의 이야기라고 보기 힘든 것이다. 

영화는 후반부를 장식하는 마이클과 아들 마이클 주니어의 부자(父子) 로드무비로 드라마의 대부분을 구성한다. 마이클은 평소 무뚝뚝하게 가족들을 대하며, 큰아들보다 막내아들을 더 챙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 데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치부인 직업을 큰아들에게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 다른 누구도 아닌 큰아들만 살아남아 함께 복수 또는 도망의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오해가 풀리고 사랑을 재확인하는 건 당연지사. 이 영화를 보는 이유와 즐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비뚤어진 듯 헐거운 듯 애틋한 부자 관계를 혼란 속에서 잔잔하게 지켜보는 것. 

영화에는 두 부자 관계가 나온다. 존과 코너, 마이클과 마이클 주니어. 사건이 마이클 주니어와 코너 때문에 진행되고 존과 마이클이 마무리하는 형식인데, 이 구도가 자못 흥미롭지만 존과 마이클이 아들을 대하는 시선의 차이야말로 흥미롭다. 존이 아들을 조직과 미래의 애물단지로 생각하는 반면, 마이클은 큰아들이 자신과 너무 닮아 자신처럼 될까봐 두려워한다. 그 차이가 자신들의 운명은 결정하지 못했지만 아들들의 운명엔 큰 영향을 끼친다. 

폭력의 굴레, 복수의 굴레는 끊어낼 수 있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폭력과 복수를 당하고 행한 이가 해내야 한다. 그는 자신보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래야만 한다. 자신은 이뤄낼 수 없었던 고귀한 평범함을 후대가 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건 필히 폭력과 복수로 끝맺음된다. 끊어낸다는 건 곧 희생, 즉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영화 속 '퍼디션'은 마이클 주니어의 이모가 사는 곳으로 '안전'을 뜻하지만 한편 마이클에겐 퍼디션 자체의 뜻인 '멸망'이나 '지옥'을 뜻하기도 하겠다. 그곳이 안전한 곳일지 지옥일지 그들 여정을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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