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루스에게 생긴 일> 포스터.

영화 <루스에게 생긴 일> 포스터.ⓒ 넷플릭스

 
한국영화를 말할 때는 대개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로 나누고, 독립영화를 다양성영화나 예술영화라고 부른다. 반면 미국영화를 말할 땐 상업영화조차 영화의 한 부류로 취급한다. 그만큼 비상업영화의 비중과 역할이 커졌다는 것이다. 영화라는 게 상업과 예술의 한 분야로 동시에 출발했지만, 세상이 자본주의화되면서 상업영화가 주류가 된 것이다.

미국과 한국 독립영화 모두 1980년대 들어 부각되었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시작된 선댄스 영화제의 영향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물론 후엔 상업영화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독립영화가 부각되며 상업영화와 맞먹는 기조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0년대 들어 미국에 두 개의 독립영화 제작사가 설립된다. 안나푸르나 픽처스와 A24다. 1990년대 미라맥스 필름와 2000년대 와인스타인 컴퍼니를 이은 2010년대 절대적 신흥강자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잘 맞아떨어진 사례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영화들을 다수 제작/배급하고 있다. 한편, 스트리밍 거인 넷플릭스도 창작자에게 많은 돈과 무한정에 가까운 자유를 선사하며 작가주의 독립영화들을 쏟아내고 있다. 

2017년작 <루스에게 생긴 일>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독립영화'에 속하는 모양새를 지녔다. 당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미국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영화 전반에 인디 감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극치를 뽑아내는 상업영화에 반하는,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를 톡톡 튀는 스토리가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도둑 맞은 루스의 여정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루스, 그날도 평범하게 일을 하는데 갑자기 담당 환자가 죽는다. 퇴근을 하는데도 참으로 촘촘히 그리고 자잘하게 그녀를 괴롭히는 일들이 생긴다. 주차장에서도, 마켓에서도, 술집에서도. 집에 왔는데 뭔가 이상하다. 도둑이 든 것이다. 도둑은 처방받은 약품과 노트북과 할머니가 물려주신 은식기 세트를 훔쳐갔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루스가 문단속을 잘 하지 않았다고 추궁하곤 가버린다. 

황당한 그는 그날 밤 친구집으로 가 자초지종을 얘기하곤 하룻밤 신세를 진다. 다음 날 집으로 향하는 루스, 집 앞마당에 개똥을 투척하곤 갈 길 가는 놈한테 한 마디 한다. 집에 와선 이것저것 철저히 대비를 하지만 그 사이 도둑이 또 오간 것 같다. 그녀는 발자국을 본따고는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직접 탐문에 나선다. 당연히 아무도 모른단다. 

그녀는 개똥투척남의 집에도 가보지만 그런 놈을 어떻게 믿냐 하며 돌아간다. 그날 밤 안 잡힐 것 알면서도 해본 노트북 추적기에 신호가 잡혀 경찰에 신고했지만 돌아오는 건 출동할 수 없다는 대답뿐이다. 화가 난 루스는 끊어버리곤 개똥투척남에게 가서 도움을 청한다. 그래도 그가 운동도 열심히 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토니라고 자신을 밝힌 그와 루스는 함께 루스 집에서 물건들을 훔쳐간 도둑을 찾으러 여정을 떠난다. 금방 끝날 것 같던 여정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코믹 범죄 스릴러의 여성서사

영화 <루스에게 생긴 일>은 루스와 토니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하는 코믹한 범죄 스릴러다. 별 것 아닌 일에서 시작해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방식은 꽤나 전통적인 서사다. 하지만 일이 시작된 계기나 일의 과정, 결말의 황당함은 현대적이다. 또한 한계가 그어진 울타리 안에서의 안정적인 흐름을 원하고 또 그렇게 진행하는 상업영화와 다른 노선이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등장인물보다 뭔가 모자라 보이는 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이 이해 되면서도 참으로 하찮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영화 아닌 현실의 우리네와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평범한 인물이니, 그동안 비현실적 영화를 봐왔던 이들에겐 오히려 그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테다. 이처럼 티 내지 않고 드러내는 영화를 오랜만에 본다. 

한편, 영화는 루스라는 평범의 가장 밑바닥처럼 보이는 여성이 서사를 이끌어간다. '여성 서사'로 불릴 만한데, 그나마 있는 남성 일행 토니가 정녕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인물인 게 더욱 크게 작용한다. 그는 있으나 없으나 한 만큼 영화의 코믹한 재미를 위해 존재하며, 루스 혼자서 도둑 든 물건들을 찾아오게 될 것이다. 루스는 꼬일대로 꼬였다고 생각한 인생을 하나씩 둘씩 물건을 찾으러 다니며 푼다. 외면적 사건과 내면적 심리의 조우를 영화적으로 매우 훌륭하게 형상화 시켰다. 

쏠쏠한 재미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본인들은 뜻하지 않았겠지만 영화적으론 필연적으로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한 곳에 모이게 된다. 루스의 황당한 여정이 막바지로 치닫는 한편, 소심하기만 했던 그가 반격을 거듭하고선 외면적 사건과 내면적 심리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지점일 테다. 그곳에서 사건의 전말은 매우 잔인하게 진행되고 또 마무리된다. 예상치 못한 잔인함은 의외의 카타르시스와 영화적 재미를 선사한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루스가 찾으려 한 도둑 맞은 물건을 의미가 없어진다. 대신, 루스 자체에 의미가 부여된다. 그가 찾으려 한 건 물건이라기 보다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목적이나 목표를 향해 쉼없이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의미가 없어진다. 이미 과정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깨닫게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캐릭터성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영화 밖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꽤나 쏠쏠할 테다. 루스 역의 멜라니 린스키는 <코요테 어글리> 주연을 비롯 <아버지의 깃발> <인 디 에어> <월플라워> 등에서 조연으로 활약했고, 유명 미드 <두 남자와 1/2> 시리즈에서 꾸준히 얼굴을 비췄다. 그녀가 주연으로 분한 영화들 면면으로 보아, '독립영화의 여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하겠다. 

한편, 토니 역의 배우는 눈에 상당히 익다. 일라이저 우드, 다름 아닌 역사상 가장 위대한 트롤로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프로도'이다. 사실 그는 90년대 꾸준히 주조연으로 배우 생활을 해왔는데, 오히려 <반지의 제왕> 이후 잘 풀리지 않았다. 아직 40대도 되지 않은 그이기에 <루스에게 생긴 일>에서처럼 특이하면서도 눈에 띄어 쉽게 잊히지 않는 배역을 기다려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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