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배구 시절 현대자동차와 삼성화재라는 두 공룡에 치어 언제나 3인자 싸움을 했던 대한항공 점보스는 V리그 출범 후 가장 많은 혜택을 본 팀이다. 당시엔 한국전력이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았고 우리카드 위비와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는 창단하기 전이었다. 따라서 대한항공은 수 년간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독식하며 신영수, 김형우, 김학민(KB손해보험 스타즈), 진상헌, 한선수, 곽승석 같은 주축 선수들을 차례로 지명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2010-2011 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고도 한 번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당시 V리그를 지배하던 팀은 가빈 슈미트(한국전력 빅스톰)와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라는 역대급 외국인 선수가 이끌던 삼성화재 블루팡스였기 때문이다. 급기야 2014-2015 시즌에는 2005-2006 시즌 이후 9년 만에 봄 배구 진출에 실패하기도 했다.

2016년 박기원 감독이 부임한 대한항공은 최근 세 시즌 연속으로 챔프전 무대를 밟았고 2017-2018 시즌에는 프로 출범 후 첫 챔프전 우승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세 시즌 연속으로 챔프전에서 격돌했던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게는 시리즈 전적 1승 2패, 총 전적 5승7패로 뒤져 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맞춤형 외국인 선수 안드레스 비예나를 영입한 대한항공은 탄탄한 전력을 앞세워 현대캐피탈에게 설욕을 벼르고 있다.

박기원 감독 부임 후 3시즌 연속 챔프전에 오른 대한항공
 
 2018-2019 시즌 정규리그 MVP 정지석은 이제 유망주가 아닌 공수를 겸비한 V리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다.

2018-2019 시즌 정규리그 MVP 정지석은 이제 유망주가 아닌 공수를 겸비한 V리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다.ⓒ 한국배구연맹

 
이란 남자배구가 오늘날 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하는데 크게 기여했던 박기원 감독은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현 KB손해보험)와 남자 대표팀 감독을 거쳐 2016년 대한항공 감독으로 부임했다. LIG손해보험과 대표팀 감독 시절 그리 좋은 성과를 올리지 못한 점과 60대 중반(1951년생)을 넘은 고령의 나이 때문에 박기원 감독의 대한항공 사령탑 부임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박기원 감독은 대한항공을 창단 후 최고의 전성기로 이끌며 팀도 살리고 본인도 잃었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박기원 감독이 부임한 후 세 시즌 연속 챔프전에 진출했고 2017-2018 시즌에는 현대캐피탈을 3승1패로 꺾고 V리그 출범 후 첫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따라서 2017-2018 시즌이 끝난 후에도 대한항공은 변화보다 전력 유지에 초점을 맞췄다.

대한항공은 두 시즌 동안 팀의 주포로 활약한 외국인 선수 미차 가르파리니를 재지명하며 가장 중요한 전력을 지켰고 최석기(우리카드)가 떠난 자리에는 FA센터 김규민을 영입해 중앙을 더욱 탄탄히 했다. 프로 2년 차를 맞는 고졸 유망주 임동혁 역시 본격적으로 팀 전력에 보탬이 될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탄탄한 전력을 구축한 대한항공은 2018-2019 시즌 정규리그에서 25승을 따내며 두 시즌 만에 다시 챔프전에 직행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최종목표였던 '두 시즌 연속 우승'은 끝내 이뤄내지 못했다. 대한항공은 챔프전에서 크리스티안 파다르와 전광인, 문성민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삼각편대의 현대캐피탈을 만나 허무한 3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84년생의 노장 가스파리니가 42.86%의 공격 성공률로 53득점에 그치며 파다르와의 외국인 선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높이대결에서도 현대캐피탈의 신영석,최민호와 싸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2018-2019 시즌 최고의 선수는 단연 대한항공의 정지석이었다. 2013년 드래프트 2라운드 출신으로 박철우(삼성화재)에 이어 고졸 선수 최고의 성공사례를 만든 정지석은 2경기 연속 트리플크라운을 포함해 두 번의 라운드 MVP에 선정됐다. 2018-2019 시즌 정규리그 MVP와 레프트 부문 베스트7 역시 정지석의 몫이었다. 지난 봄 FA 최대어였던 정지석은 5억8000만 원의 거액에 대한항공과 재계약했다.

가스파리니 떠나고 작지만 빠르고 높이 뛰는 비예나 가세
 
 지명 당시 많은 이들의 의구심을 자아냈던 비예나는 컵대회 MVP에 선정되며 자신을 향한 의심의 시선들을 날리고 있다.

지명 당시 많은 이들의 의구심을 자아냈던 비예나는 컵대회 MVP에 선정되며 자신을 향한 의심의 시선들을 날리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정지석과 곽승석으로 이어지는 대한항공의 윙스파이커 라인은 단연 남자부 최강이다. 두 선수 모두 공격뿐 아니라 서브리시브와 수비까지 겸비한 만능형 선수인 데다가 전성기에 오른 정지석은 물론 만31세의 곽승석 역시 아직 에이징 커브(나이에 따른 기량저하)의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지난 시즌 챔프전에서 한계를 보였던 가스파리니는 남자부 트라이아웃에 불참하면서 대한항공은 새 외국인 선수를 찾아야 했다.

대한항공의 선택은 194cm의 단신공격수 비예나였다. 지명 당시만 해도 207cm의 가빈, 203cm의 레오 안드리치(OK저축은행) 등이 활약할 남자부에서 비예나는 지나치게 단신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비예나는 컵대회에서 엄청난 탄력을 활용해 5경기에서 122득점(평균 24.4득점)을 퍼붓는 뛰어난 공격력을 과시했다. 비예나는 V리그에서도 세터와의 호흡만 원활하다면 이번 시즌 외국인 선수 판도를 바꿀 다크호스로 꼽힌다.

각각 인하대와 삼성화재의 주전 세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광우 세터는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대한항공으로 이적했다. 기존의 주전인 한선수 세터와 유광우 세터는 대학시절부터 프로 진출 후까지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지만 황승빈 세터가 입대하면서 대한항공에서는 우리카드에서 입지가 좁아진 유광우 세터를 영입했다. 두 베테랑 세터가 쓸 데 없는 자존심 싸움을 벌이지 않고 잘 공존한다면 대한항공은 세터진마저 난공불락이 될 것이다.

대한항공은 왼쪽과 오른쪽, 중앙, 세터까지 7개 구단 중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유독 리베로 포지션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특히 지난 시즌까지 주전 리베로로 활약했던 백광현(상무)이 입대하면서 리베로 자리는 더욱 불안해졌다. 비 시즌 동안 리베로 포지션을 보강하지 못한 대한항공으로서는 2017년 트레이드로 영입한 정성민 리베로의 활약이 절실하다.

객관적인 전력만 놓고 보면 대한항공은 이번 시즌에도 현대캐피탈과 함께 우승을 다툴 확률이 높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정지석과 유망주 임동혁 정도를 제외하면 주전 대부분이 30세 이상의 노장들로 구성돼 있다. 대한항공이 최상의 전력으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한항공으로서는 아직 주력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지지 않은 이번 시즌 반드시 빼앗겼던 우승컵을 되찾아 오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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