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창단된 '공룡' 삼성화재를 빼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14년까지 약 20년 동안의 한국 남자배구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삼성화재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학배구의 스타 선수들을 휩쓸며 초호화 멤버를 구성해 슈퍼리그와 V리그를 지배했다. 실제로 삼성화재 독주의 정점에 있었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 엔트리 12명 중 이경수와 방신봉, 권영민을 제외한 9명이 삼성화재 선수였을 정도였다.

삼성화재는 프로 출범 후에도 안젤코 추크와 가빈 슈미트(한국전력 빅스톰),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로 이어지는 특급 외국인 선수들을 앞세워 V리그 7시즌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2015-2016 시즌의 괴르기 그로저, 2016-2017 시즌의 타이스 덜 호스트까지 더하면 삼성화재는 2006-2007 시즌부터 2016-2017 시즌까지 무려 11시즌 연속 V리그 남자부 득점왕을 배출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삼성화재의 왕조는 2014-2015 시즌 '괴물' 로버트 랜디 시몬을 내세운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게 패하며 무너졌다. 2016-2017 시즌에는 급기야 프로 출범 후 처음으로 봄배구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이제는 삼성화재가 없는 봄 배구가 팬들에게 익숙해지고 있을 정도로 그 위상이 많이 추락한 삼성화재는 이번 시즌 부활과 추락의 갈림길에서 조용히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1437득점 합작한 리그 최고의 쌍포 거느리고도 봄 배구 진출 실패
 
 한국 나이로 35세가 된 박철우는 지난 시즌 토종 선수 중 2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한국 나이로 35세가 된 박철우는 지난 시즌 토종 선수 중 2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한국배구연맹

 
삼성화재는 2016-2017 시즌 처음으로 봄 배구 진출에 실패한 후 '갈색폭격기' 신진식 감독을 3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무려 4개 팀의 감독을 역임하고 있는 신영철 감독(우리카드 위비)을 시작으로 김세진 감독(전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최태웅 감독(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 이은 4번째 삼성화재 출신 사령탑이다(이번 시즌을 앞두고 OK저축은행의 석진욱 감독과 한국전력의 장병철 감독이 가세하며 삼성화재 출신 감독은 6명이 됐다).

삼성화재는 신진식 감독이 부임한 첫 시즌 타이스와 박철우로 구성된 쌍포를 앞세워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하며 봄 배구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복귀로 명가부활을 이뤘다고 하기엔 이른 감이 있었다. 특히 현역 시절의 신진식 감독처럼 서브리시브를 책임지면서도 공격에서도 타이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확실한 윙스파이커 자원이 부족했다.

성균관대 시절부터 '리틀 신진식'으로 불렸고 FA 시장에서 최대어로 불리던 전광인(현대캐피탈)을 놓친 삼성화재는 차선책(?)으로 OK저축은행에서 뛰었던 살림꾼 송희채를 영입했다. 여기에 '미남센터' 지태환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박상하와 중앙을 든든히 지킬 수 있게 됐다. 삼성화재는 작년 9월에 열린 컵대회에서 9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다가올 2018-2019 시즌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하지만 진정한 '명가부활'을 노리던 삼성화재의 포부는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송희채 영입과정에서 주전 리베로 부용찬(상근예비역)이 OK저축은행으로 이적하면서 리베로 포지션이 급격히 약해졌고 시즌 초반 주전 세터로 낙점된 김형진도 경험부족을 드러냈다. 결국 삼성화재는 19승17패 승점 55점으로 62점의 우리카드에게 7점이 뒤져 두 시즌 만에 다시 봄 배구 진출이 좌절됐다.

작년 컵대회 MVP이자 FA로 영입한 송희채는 국내 선수 득점 10위(365점)에 그치며 기대에 비해 다소 아쉬운 활약에 그쳤다. 하지만 타이스와 박철우로 구성된 삼성화재의 쌍포는 정규리그에서 1437득점을 합작하며 남자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다만 팀 서브(세트당 0.95개)와 팀 디그(세트당8.35개) 부문에서 각각 6위에 그쳤을 정도로 공수에서 약점도 뚜렷했던 시즌이었다.

전력 누수 심한 2019-2020 시즌, 반등의 계기 찾아낼까
 
 프로 3년째를 맞는 김형진 세터는 삼성화재의 주전세터로서 자각이 필요하다.

프로 3년째를 맞는 김형진 세터는 삼성화재의 주전세터로서 자각이 필요하다.ⓒ 한국배구연맹

 
박철우라는 걸출한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화재는 그 동안 주로 서브리시브가 가능한 윙스파이커형 외국인선수를 선발했다. 하지만 신진식 감독은 지난 5월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206cm의 장신 공격수 조셉 노먼을 지명했다. 공격력 강화를 위한 과감한 선택이었지만 노먼은 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퇴출됐고 현재는 이탈리아 출신의 안드레아 산탄젤로(198cm)와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이번 시즌 전력 누수가 꽤나 심각하다. 30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 박철우 대신 토종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할 윙스파이커 송희채는 폐렴으로 수술을 받아 컵대회에 결장했다. 시즌 초반 결장이 불가피한 송희채의 공백이 길어진다면 삼성화재는 시즌 초반 순위 싸움에서 일찌감치 멀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 세터 황동일(현대캐피탈)이 팀을 떠났고 지난 시즌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이강원(사회복무요원)은 군에 입대했다.

고질적으로 발목과 허리가 좋지 않은 박철우도 이제 과거처럼 풀타임으로 활약하기가 쉽지 않다. 신진식 감독도 체력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박철우를 가끔씩 중앙공격수로 투입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박철우는 여전히 삼성화재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선수인 만큼 박철우가 흔들리면 삼성화재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이민욱(한국전력)과 황동일이 팀을 떠나면서 허전해진 세터진 역시 삼성화재의 약점이다.

다만 지난 시즌 블로킹 부문에서 나란히 2위(세트당 0.58개)와 4위(세트당 0.56개)에 올랐던 박상하와 지태환으로 구성된 센터진은 삼성화재가 내세울 수 있는 강점으로 꼽힌다. 삼성화재의 센터진은 두 주전 선수의 기량 차이가 거의 없어 누가 전위에 올라 와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박상하는 이번 시즌이 끝나면 생애 두 번째 FA자격을 얻기 때문에 동기부여도 확실하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팬들의 기대를 한껏 모았다가 시즌 개막 후 톱니가 하나씩 어긋하면서 허무하게 무너지는 팀이 있다. 반면에 시즌 시작 전에는 허점 투성이로 보이다가도 시즌 개막 후 하나씩 단점을 보완해 가면서 성적을 끌어 올리는 팀도 있다. 시즌 시작 전부터 많은 불안요소를 안고 있는 삼성화재는 분명 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팀이다. 과연 삼성화재는 불안하게 출발하는 2019-2020 시즌을 웃으면서 끝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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