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스틸컷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실험적인 영화다. 40년 넘게 기지촌에서 매춘부로 일하던 '인순(박인순)'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같은 소재를 다룬 전작 <거미의 땅>의 다른 버전 같다. 이승도 저승도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듯 하다. 하지만 말과 말로 전해져 윤색을 거치고 살이 붙는 구전설화처럼 말 뭉치가 불어나 한 사람의 역사가 된다.

영화의 전반부는 기지촌 여성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인순씨의 생활을 쫓으며 옛 기억을 구술하는 방식을 취한다. 자신을 박인순이라고 소개하는 여자는 누구보다도 죽음을 가까이에서 많이 본 여자다. 하지만 자신은 수많은 죽음을 지나왔던 억세게 운 좋은 여자다. 과연 그 운이 그냥 얻어진 걸까?

그는 기지촌에서 일하면서 갖은 멸시와 학대 속에 지쳐갔다. 미군 남편을 만나 잠깐 미국에도 살았다. 그때 얻은 아이는 그곳에 놓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순씨의 삶을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서 듣는다는 것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또한 인순씨는 수락산 기슭에 자리한 뺏벌의 전설을 들려준다. "옛날 옛날에 말이야"로 시작하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생산해 낸다. 예로부터 뺏벌은 사람이 많이 죽었던 곳이고 배나무가 있던 지역이며, 미군 기지가 자리하고 있었던 이름 없는 곳이라고도 소개한다. 이름과 장소가 옮겨진 이상한 장소이며, 한번 들어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서야 나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스틸컷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이어 뺏벌에서 죽은 원혼들이 떠돌고 있다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전설을 읊어주고,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 마음을 읽어 준다. 기이하게도 산자와 죽은 자, 그러니까 뺏벌을 돌아다니는 원혼, 원혼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가 얽히고 설킨다. 때문에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보고 있는 듯한 기묘함과 <인간극장>을 보고 있는 듯 현실감도 감돈다.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영화는 어느 순간 극 영화로 변해 있다. 다분히 실험적인 영화임에 틀림없다. 전설, 다큐멘터리, 픽션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스틸컷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저승사자는 기지촌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여성들을 데려가기 위해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화자가 된다. 저승사자라고 해도 무연고자를 함부로 데려갈 수 없기에 개인의 역사를 만들어 주는 조력자가 된다. 기지촌 여성들을 향한 사려 깊고 애정 있는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시도다. 영화에서 세상에 알려지지 말아야 하는 존재들이기에 죽음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무덤들은 죽어서야 드디어 이름을 갖게 된다.

또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기억과 장소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뺏벌이란 이름이 옮겨온 장소는 산자와 죽은 자를 구별할 수 없다. 영화는 잊힌 기지촌 여성들을 기억하는 색다른 방법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이 믿으면 이야기가 되고, 자연스럽게 증거가 만들어져 사실이 되는 민담을 기지촌 여성과 연결 지었다. 때문에 우리 기억에서 사라질 뻔한 아픈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구실을 마련해 준다. 그 어떤 매체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기록으로 기억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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