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무사히 < KBS 드라마 스페셜 >이 안방극장을 찾아왔다. 지난 9월 27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KBS 2TV에서 열 편의 단막극이 방송되고 있다. 9월 27일 <집우 집주>와 지난 4일 <웬 아이가 보았네> 두 편이 방송됐다. 

지난 9월 26일 문보현 드라마 센터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단막극의 소중함보다는 경제논리가 우선시 되기 때문에 다시 (단막극을) 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공영방송의 책임감, 사명감으로 단막극의 정신을 잃지 않고 제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올해도 찾아온 드라마 스페셜은 문보현 센터장의 각오답게 2019년의 현실을 담아내려 애쓴다. 

<집우 집주>가 그린 2019년의 현실
 
 2019 드라마 스페셜 <집우 집주>의 한 장면

2019 드라마 스페셜 <집우 집주>의 한 장면ⓒ KBS

 
드라마 스페셜의 오프닝을 연 <집우 집주>는 2019년을 살아가는 젊은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집'의 문제를 다룬다. 중소 건축 사무소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수아(이주영 분)의 일은 '집을 꾸며주는 것'이다. 그는 집을 돋보이게 해주는 소품을 선택하는 데 남다른 감각을 자랑한다. 하지만 정작 그가 가장 갖고 싶어하는 빈티지 턴테이블을 들여놓을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그만의 감각으로 구차하지 않게 지냈던 공간마저 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면서 비워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렇게 드라마는 엄연한 직장인임에도 자신이 꿈꾸는 집을 마련하기는 커녕, 가지고 있는 돈으로 마땅한 전셋집조차 마련하기 힘든 청춘에 주목한다. 더더욱 그녀를 초라하게 만드는 건 엘리베이터도 없이 서민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사는 부모들이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겨우 마련한 집에 아버지는 지금도 남들이 버린 가구를 주워와 고쳐 쓰고 어머니는 빠듯한 생활비에 보태느라 남의 집 파출부 일을 나가는 형편이다. 

다시 집을 구해야 할 처지에 놓인 수아, 그런 그에게 남자친구는 이 기회에 아예 '살림을 합치자'고 말한다. 프러포즈다. 오갈 곳조차 없어 보였던 남자친구 유찬(김진엽 분)은 알고 보니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초라한 자신의 집을 창피하게 느낀 수아는 자신의 집 대신 제게 인테리어를 부탁했던 친구의 멋진 아파트를 자기 집이라고 속이기에 이른다.
 
 < KBS 드라마 스페셜-집우집주 >의 한 장면

< KBS 드라마 스페셜-집우집주 >의 한 장면ⓒ KBS

 
결국 수아의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한다. 수아의 아버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시고 남자친구 역시 그런 수아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를 통해 수아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가졌던 '집'에 대한 컴플렉스를 되돌아 보게 된다. 가정과 연인관계조차 해체될 위기, 뜻밖에도 수아를 구제한 건 그녀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신혼집을 꾸미려 했던 친구다.

친구 집을 빌려 남자 친구와의 상견례를 치렀으니, 친구에게 경찰 신고를 당해도 모자랄 상황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마치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문구처럼,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던 자신의 헛된 욕망을 고백한다. 으리으리한 집으로 그녀를 위축시켰던 남자친구 역시 알고 보니 그 허울을 벗어던지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택 침입인 줄 알았더니 자신과 다르지 않게 신분 상승의 에스컬레이터에서 스스로 내려온 친구, 계층 차이때문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결혼인가 싶었더니 스스로 뛰쳐나온 남자 친구, 엘리베이터도 없이 온수도 제대로 안 나오는 아파트이지만 그래도 화목한 가정까지. 그렇게 <집우 집주>는 2019년에 집 없어 서러운 젊음에 화답한다. 수아의 형편은 처음과 달라진 게 없지만 대신 '마음만은 부자'가 되었다. 

그렇게 <집우 집주>는 1019년에 '집'으로 인해 고통받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강단 있는 젊은이들의 동화로 마무리짓는다. 
 
 < KBS 드라마 스페셜-집우집주 >의 한 장면

< KBS 드라마 스페셜-집우집주 >의 한 장면ⓒ KBS

 
<웬 아이가 보았네>가 보여준 판타지
 
두 번째 작품인 <웬 아이가 보았네>는 시골 마을에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름은 오동자(김수인 분), 하지만 친구들은 동자를 똥간이라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동자가 할아버지와 사는 집은 허구헌 날 술에 절어 사는 할아버지로 인해 술병이 나뒹구는 쓰레기장과도 같다. 그래도 동자는 술에 취해 쓰러지다시피 잠들어 버린 할아버지가 혹시나 숨이 끊어지는 건 아닐까 얼굴을 대본다.

냉장고 속에 굴러다니는 한 초코파이 한 입으로 끼니를 때운 채 학교로 향하는 동자, 국가에서 나눠주는 쌀을 굳이 돈으로 받겠다고 고집한 동자가 꼬깃꼬깃한 돈으로 하고 싶은 건, 최근 소식이 끊어진 엄마를 찾아가는 일이다.

그런 동자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동자만의 아지트가 있다. 산 속 외딴 빈 집이다. 그곳에서 동자는 엄마에 대한 유일한 기억을 느끼게 해주는 라디오를 듣는다. 바로 그 동자의 아지트에 불청객이 들이닥친다. 알고 보니 그 집의 진짜 주인이었다.
 
 < KBS 드라마 스페셜-웬 아이가 보았네 >의 한 장면

< KBS 드라마 스페셜-웬 아이가 보았네 >의 한 장면ⓒ KBS

 
그런데 이 주인 아저씨는 동자의 눈에 조금 이상해 보인다. 커다란 덩치의 아저씨인데 집을 꾸민 모양은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심지어 동자을 보고 보이는 반응조차 그렇다.

<웬 아이가 보았네>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산속으로 숨어든 양순호(태항호 분)와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 오동자를 만나게 한다. 동화 <거인의 집>을 모티브로 했다는 드라마는 동화 속 '거인'을 2019년의 트렌스젠더가 되고픈 남자로 변주한다. 그리고 동자는 그의 '모성'을 불러 일으키며 유사 가족을 잠시나마 꾸려낸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순호에서 순이가 될 날을 학수고대하던 남자는 자신의 집에 쳐들어와 엄마를 찾아달라는 동자와 잠시나마 '모녀'의 정을 나눈다. 엄마처럼 만두를 빚고, 동자에게 생선을 발라먹이고, 생리를 시작한 동자에게 파티를 열어주고, 걸맞는 속옷을 준비해 주고자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속사정이야 영락없는 엄마와 딸이지만, 누군가는 이를 보고 아동 성추행이라고 오해한다. 결국 순호의 집에 들이닥친 이장과 동네 사람들 앞에서 순호의 비밀이 드러나고 만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런 비극적 상황을 판타지로 응답한다. 순호와 동자는 함께 엄마를 찾아나섰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동자를 떠나보낸 순호는 그 엄마를 다시 홀로 찾아간다. 그리고 여자가 되기 위해 모았던 돈으로 그 엄마의 빚을 갚아준다. 엄마는 순호가 마련해준 하얀 원피스를 입고 동자를 찾아온다. 
 
 < KBS 드라마 스페셜-웬 아이가 보았네 >의 한 장면

< KBS 드라마 스페셜-웬 아이가 보았네 >의 한 장면ⓒ KBS

 
결손 조손 가정의 학대받는 아이였던 동자는 '엄마' 같은 아저씨를 만나 처음으로 따스한 가정과 모성을 체험한다. 심지어 그 아저씨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동원해 동자에게 진짜 엄마를 찾아준다. 

<집우 집주>나, <웬 아이가 보았네>는 2019년의 현실에 감히 칼을 대지 않는다. 대신 그 현실을 살아가며 벼렸던 칼날을 칼집에 꽂는 대신 풍선을 들려준다. 그리고 잠시나마 풍선을 들고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로 함께 산책을 하자며 현실의 고통을 어루만져준다. 드라마다운 상투적인 해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 KBS 드라마 스페셜 >이 가장 능숙하게 해 온 방식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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