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 컷

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 컷ⓒ CGV 아트하우스

 
영화 <죄 많은 소녀>의 영희(전여빈 분)는 사랑하던 친구가 죽은 뒤 살인자로 낙인 찍힌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사람이 된 것이다. 죽은 친구 경민(전소니 분)과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영희는 혼란스러워 한다. 스스로 자신이 정말 경민의 죽음의 원인인가 고민한다. 한 가지 결론에 수십 가지 이유가 있다면, 영희는 그것을 전부 혼자 떠안으려 한다. 누군가 떠안지 않으면 경민이 죽은 원인에 추측만 난무할 것이고, 언젠가 그 원인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경민은 죄 많은 소녀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침묵한다.

극 중에서 영희는 앞머리로 눈을 가린 채 등장한다. 반쯤 뜬 눈으로 반 정도의 시야만 가지고 생활한다. 교무실에 불려와 담임의 추궁을 듣지만 답답한 머리 모양처럼 침묵만 유지할 뿐이다. 실종된 친구 경민의 행방에 대해, 마지막 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아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담임은 영희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약간의 부채감을 넘긴다.

영희를 비롯한 반 친구들이 경찰과 면담한다. 경찰은 경민이의 평소 행동, 친구 관계, 마지막 날의 감정 상태나 행동 등을 물었다. 학급 아이들은 무난한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성과 없는 이야기가 오고 갔고 마지막으로 한솔(고원희 분)과 영희의 면담으로 경민이의 실종에 대한 이유가 밝혀지는 듯했다.
 
 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 컷

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 컷ⓒ CGV 아트하우스

 
한솔은 경민, 영희와 친구 사이로 경민이가 실종된 마지막 날 버스에 함께 탑승했다. 한솔은 영희가 경민에게 "죽어버리라고, 죽지도 못할 거면서, 죽어보라"고 말했다고 경찰에게 전한다. 경찰은 엄청난 단서를 잡은 듯 영희를 불러내 다그친다. 경민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은 '영희'인 것 같다고 단정 짓는다.

영희는 "경민이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길래, 싸 보이게 그러지 말고 그 말이 진심이라면 죽어보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경찰이 생각하는 그런 심각한 분위기에서 전한 진심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경민의 엄마는 영희의 뺨을 때린다.

CCTV에는 경민과 영희가 뽀뽀하는 모습이 찍혀 있다. 이를 본 사람들은 경민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분명 영희라고 단정 짓는다. 반 친구들도 영희의 집까지 찾아가 친구를 죽게 한 가해자라고 영희를 괴롭힌다. 신발을 망가 트리고 급기야 영희 얼굴에까지 상처를 낸다. 아이들은 괴롭힘을 당한 영희가 어른들에게 고자질을 하진 않을지 걱정하며 자리를 뜬다. 경민의 장례식장에서 영희는 억울한 자신의 심정을 고백이라도 하듯 화장실에 들어가 락스를 마신다. 피를 토하고 입으로 게워낼 수 있는 건 전부 게워낸다.

영희가 발작하며 쓰러지는 순간, 영희의 몸부림이 말하려 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됐다. 억울함일까. 죽은 친구에 대한 미안함일까. 그리움일까. 탓을 만들어내고 탓을 돌리기에 바쁜 사람들에 대한 분노일까. 영희가 어떤 몸부림을 쳐봐도 결국 사라진 경민은 돌아오지 않는다.
 
영희의 자살시도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간 자신들이 단순하게 모든 잘못을 영희에게 돌려버린 건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 영희가 주된 원인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으로 머쓱해진다. 그러다 또 다른 가해자로 보일만 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 경민이 살아있을 적, 경민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만한 말을 한 사람을 찾아내 제2의 영희로 만들어버린다.

영희는 제2의 영희가 된 사람의 뺨을 세게 내리치지만 이어 품에 꼭 안아 그를 쓰다듬는다. 마치 자신을 보는 것처럼, 괴롭힘 당하던 자신을 만져주는 것처럼. 힘차게 그를 때린 뒤 또 위로한다. 앞머리로 눈을 반쯤 가린 채,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겠다는 답답한 침묵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경민의 엄마(서영화)는 끝까지 영희를 따라다닌다. 경민이의 죽음이 그 이전부터 계획된 것이라는 게 이미 밝혀졌고, 영희가 경민이의 죽음에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했지만, 경민의 엄마는 영희를 계속 쫓는다. 사실 그는 부모 스스로가 경민의 죽음에 가장 큰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자식을 잃은 죄책감 앞에 그는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한다. 자신보다 어린 친구에게, 자신보다 힘이 없는 약자에게 그 탓을 돌려야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으로부터 몰아세워진 영희가 서 있는 곳은 죽어 사라진 경민이가 있을 곳보다 더 외로운 곳이고, 철저히 고립된 곳이다. 락스를 마신 영희는 말을 꺼낼 수 없었고, 적당히 회복된 몸으로 다시 학교에 돌아온다. 담임은 영희에게 친구들 앞에서 간단한 안부 인사를 한 뒤 자리에 들어가 앉길 권한다. 영희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수화를 시작한다. 수화의 내용은 "나는 나의 죽음을 완성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가장 멋지게 죽고 싶습니다"였다. 수화가 끝나자 친구들은 전부 박수를 쳤다. 수화를 알아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민이는 죽고 없었다. 영희는 사랑하던 친구를 잃었고 그 친구의 죽음을 자신이 떠안게 되었다. 또한 자신을 좋아하던 한솔의 질투로 오해를 쌓았다가, 영희의 죄가 벗겨진 이후 어이없게 오해가 풀려 다시 가까워진다. 영희는 한솔이와 다시 함께 다니게 됐지만 반드시 의지하는 관계로 깊어졌다고 보기엔 의문이 든다.
 
 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 컷

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 컷ⓒ CGV 아트하우스

 
영희는 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던 공포감을 깨달은 게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희망, 우정과 사랑 같은 감정은 형태가 있는 원인과 결과라는 틀 안에서 쉽게 부서졌다. 그것을 목격했고 그것의 탓이 전부 자신에게로 돌아온 것을 경험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를 수습하기 위해선 사랑이나 우정같은 감정 따위가 아니라 탓을 짊어지고 모든 괴롭힘을 감수하고 걸어갈 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맞아서, 그게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어떤 것이든 진실이 되게 해줄 사람 하나만 있으면 세상은 꽤 조용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락스를 쏟아 부은 뒤 다시 되살아난 영희에게 어떤 희망이 남았는지는 모른다. 그저 영희가 앞으로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멋지게 죽어갈지, 그것을 계획해 나가는 것이 차라리 남은 희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 형태 없는 감정일지는 몰라도,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추악하고 공포스러운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나는 느꼈다. 그리고 사람이 자신의 죄를 짊어질 줄 모르고 타인에게 돌리고 싶어 하는 건, 비단 사람이 약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인간이 약해서라기보다, 악해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선 인간은 한없이 착해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면 어떤 모습으로, 어느 정도로 악해질지 모르는 게 인간이라고도 생각해본다. 악해질 수 없을 만큼 무식해도 될 법한데, 그러기엔 또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사는 게 인간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었다라고 모든 일을 치부하기엔 우리가 가진 죄에 대한 원인이 너무나 크다. 각각 파티션은 작을지 몰라도 모두가 어떤 원인에 조금씩은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숙연해졌으면 좋겠고, 미안해 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한 사람이 끝까지 안고 가지 않으면 사라지게 될 죄 따위,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잊고 살게 될 죄 따위, 인간에겐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가치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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