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영화사 진진

 
최근 20~30대 사이에서 달리기는 열풍처럼 자리 잡고 있다. 늦은 저녁 도심 곳곳에서도 무리를 지어 달리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칠 때가 있다. 불안한 미래, 취업, 연애 등으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잡념이 사라질 때까지 앞만 보고 달리고 싶어져서 일까. 특별한 장비나 팀을 꾸리지 않아도 당장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일까. 건강관리, 자기관리 등 달리기를 시작하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영화 <아워 바디>의 8년 차 행정고시생 자영(최희서)을 볼 때도 처음에는 왜 저렇게 뛸까 이해되지 않았다. 공부만 하느라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 여기저기 불어난 살과 망가진 몸. 서른한 살 먹을 때까지 그는 자신의 몸을 온전히 들여다볼 줄 몰랐다. <아워 바디>는 청춘의 대표 키워드라 할 수 있는 '몸'을 주제로 꿈, 젊음, 자존감을 키워가는 여성 서사 영화다.

달리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여기서 그만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다. 이까짓 뜀박질마저 중도 하차하면 인생까지도 포기하는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달리고 또 달렸다. 일종의 대리만족 같은 중독이다. 직업과 꿈을 헷갈린 청춘은 안정이라는 신기루를 잡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행시를 준비하고 번번이 낙방으로 지쳐가던 자영은 2차 시험을 보지 않기로 한다. 대신 지친 몸을 이끌고 맥주를 사러 간다. 동네에서 마주치던 현주와 친해지며 달리기를 시작한다.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영화사 진진

 
처음에는 그저 현주(안지혜)를 롤 모델 삼았다. 현주의 단정된 몸과 올곧은 호흡에 매료되어 닮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자영은 점차 현주를 뛰어넘어 자신의 억눌렸던 욕망에 눈을 뜨게 된다. 나는 무엇을 바랐고, 원하는가. 욕망이 소리치는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닮고 싶은 러닝메이트를 만나 꾸준히 달렸더니 살은 빠지고 자신감은 붙었다. 친구의 권유로 시작했던 아르바이트에서도 인턴을 지나 정직원까지 도전하게 되었다. 놓아버린 삶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삼십 대, 무엇을 시작하기엔 늦었을까 의문이 드는 나이다. 기대수명 100세 시대, 서른은 고작 삼분의 일 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지만 한국 사회는 앞자리가 바뀌는 일에 유독 민감하게 군다. 공부, 취업, 결혼을 해야 하는 마지노선을 만들어 놓고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낙오자란 주홍 글씨를 새긴다.

나이 제한은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슬픈 현실이다. 마치 이 나이에는 이것을 해야 한다는 공식이 있는 것 같다. 대세에 편입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그래서 항상 SNS나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만 알아간다. 내 몸을 직접 탐구하며 스스로 알아가려 하지 않는다. 남이 평가하는 나 자신이 표준에 얼마나 가까운지 비교하기 바쁘다.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영화사 진진

 
공부만 해왔던 자영은 어느덧 서른하나다. 아르바이트조차 할 수 없다. 남자친구는 '공무원은 되지 못해도 사람답게는 살아야 되지 않겠냐'라고 에둘러 말하며 떠났다. 공부를 때려치웠다는 말에 엄마는 밥그릇을 치우며 경제적 지원을 끊었다. 이제 자영은 선택권이 없다. 잡아 줄 사람도 없이 처음으로 혼자 일어서야 한다. 이때 비로소 달리기로 다져진 기초체력이 빛을 발한다.

가족의 기대와 사회의 분위기가 자영을 병들게 했다. 젊었을 때는 꿈을 위해 자기 몸은 등한시하기 십상이다. 대충 먹고 하루 종일 좁은 방에 앉아 머리만 사용한다. 빠르게 몸은 나빠지고 공부 효율은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쌍끌이로 자존감과 체력은 바닥에 떨어진다. 과연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런 자영에게 달리기는 삶의 의지 이상의 것이었다.

현주와 함께 처음으로 완주한 기쁨은 결코 늦지 않음을 확인하는 기회로 다가왔다. 몸은 공부보다 정직하다. 내가 노력한 만큼 보여주니까. 누구와 관계로 틀어지지도 않고, 언제 어디서나 마음만 먹는다면 혼자 꾸준히 할 수 있는 몸에 쓴 보약이다.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영화 <아워 바디> 스틸컷ⓒ 영화사 진진

 
<아워 바디>는 타인이 아닌 내가 내 몸을 사랑할 때 이루어지는 변화에 주목하며 몸을 탐구하는 영화다. 태어나서 공부만 해온 자영은 그 근성으로 달리기를 했다. 공부, 달리기, 인생도 지구력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이유기도 하다. 조금 더 단단해진 몸과 마음으로 자영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로 달릴 것이다.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그의 미래를 응원한다. 여러 장애물과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을지라도 꾸준한 페이스로 인생을 완주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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