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동을 중심으로 한 부산 원도심에서 진행되는 커뮤니티비프. 지난해 중앙동 40계단 앞에서 진행된 '시네객잔'

남포동을 중심으로 한 부산 원도심에서 진행되는 커뮤니티비프. 지난해 중앙동 40계단 앞에서 진행된 '시네객잔'ⓒ 부산국제영화제

 
남포동 영화제의 부활.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주목되는 점은 '커뮤니티비프'의 확장이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의 태동지인 남포동과 중앙동 등 쇠퇴한 원도심을 다시 조명하며 안팎의 호평을 받은 이후, 올해는 다시금 옛 영화를 회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남포동은 부산영화제 태동지라는 의미가 있지만 8회 영화제 이후 해운대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버릴 수도 그렇다고 안고 갈 수도 없어 난제와도 같았는데, 커뮤니티비프가 해법이 됐다.
 
지난해 커뮤니티비프가 예행연습이었다면, 올해는 프로그램을 대폭 늘리면서 해운대를 중심으로 치러지는 영화제와는 차별화된 남포동만의 영화제를 준비했다. 초창기 남포동 영화제의 향수가 애틋한 올드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핵심 프로그램은 리퀘스트시네마, 리액션시네마, 리스펙트시네마 등 3개로 구분됐다. 리퀘스트시네마는 지난해의 연장선으로 '관객이 만든다'는 슬로건 아래 관객이 직접 프로그래머가 되어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등 관객들이 주체가 되어 행사를 끌어간다. 커뮤니티비프를 통한 부산영화제의 새로운 지향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해운대에선 프로그래머들이 선택한 영화를 보고 즐긴다면, 남포동에선 관객들이 직접 참여해 영화제를 만든다는 게 큰 차이다. 또 이곳에선 조용하게 영화만 관람하는 것에서 벗어나 영화 중에 수다를 떨 수도 있고 노래도 부를 수 있으며 음식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주제도 '관객이 만드는 영화제'다.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이벤트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능동적인 관객들을 남포동으로 손짓하고 있다.
 
특히 규모 면에서 지난해와 큰 차이를 보인다. 정미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올해 부산영화제 전체 상영작이 300편인데, 남포동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은 150편에 육박한다. 300편 중 일부 작품이 남포동에서도 상영되지만, 별도로 커뮤니티비프에서만 상영되는 영화들이 더 많다.
 
춤추고 노래하고 술마시며 영화 관람
 
 술 마시며 야외에서 밤새 영화를 관람하는 '취생몽사'. 2018년 커뮤니티비프에서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 모습

술 마시며 야외에서 밤새 영화를 관람하는 '취생몽사'. 2018년 커뮤니티비프에서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 모습ⓒ 부산영화제

 
주로 동호회 등의 커뮤니티에서 신청한 영화들로 개봉작들도 많다. 지난 8월말 시작된 사전 예매를 통해 일정 인원이 도달한 영화의 상영이 확정됐다. 방탄소년단의 팬클럽인 '아미'들은 방탄소년단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브링 더 소울: 더 무비>를 함께 보기로 했고, 배우 박보검의 팬들도 <반짝반짝 두근두근>을 함께 관람한다.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악의적 폄훼에 맞서 왜곡된 주장을 검증하는 <김군>과 일본군에게 고통받았던 여성평화운동가 김복동 할머니를 그린 <김복동>은 상영 후 감독과 제작 프로듀서 등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대담 행사를 진행한다. 올해 3월 타계한 바버라 해머 감독의 1990년대 작품도 <질산염 키스>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리액션시네마는 반응하는 영화관으로, 영화관의 엄숙함을 벗어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게 특징이다. <알라딘>이 싱어롱으로 상영되고, 영화 상영과 무용가들의 공연이 동시에 펼쳐지는 관객참여형 퍼포먼스도 곁들여진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끈, 밤새 술을 마시며 영화를 보는 '취생몽사'에서는 <낮술>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치코와 리타>가 상영된다.

'리스펙트시네마'는 영화애호가, 영화학도, 영화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를 향한 애증과 경의(homage)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영화를 보면서 해설을 하는 '마스터톡'은 <광해, 왕이된 남자> 제작자인 원동연 대표와 <힘내세요 병헌씨> 이병헌 감독, 홍완표 배우가 나선다. 영화계에서 입심이 좋은 제작자이자 감독이 나서면서 장면 장면에 담긴 뒷이야기 등을 전해줄 예정이다. 
 
한중일 평화삼국지라는 이름으로 한예종 영상원과 중국, 일본 영화학교와의 합작 학생영화를 상영하는 시간이 준비돼 있고, 단편영화들과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DGC) 졸업영화 걸작선을 상영하는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한국영화 100년을 맞이해 100명의 감독이 각각 만든 100초짜리 기념영상도 모두 공개된다.
 
정성일 평론가와 듀나 평론가, 김홍준 감독이 각각 선정한 영화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상영하는 '정듀홍 영화제'는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행사다. 상영작은 비공개로 당일 극장에 들어가야 알 수 있다. 블라인드 상영의 형태로, 어느 쪽에 관객이 더 많이 들까와 상영 후 만족도를 놓고 대결을 펼친다. 상영 후에는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된다. 듀나는 온라인 채팅을 통해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남포동에서 부마항쟁 4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 커뮤니티비프

남포동에서 부마항쟁 4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 커뮤니티비프ⓒ 부산영화제

 
광주항쟁 직전인 1979년 부산과 마산(현 창원)지역 민중들이 박정희 독재에 저항했던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행사도 커뮤니티비프에서 만날 수 있다. 부마항쟁은 박정희의 18년 독재를 무너뜨린 항거로 평가받고 있다.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 정권 당시 정치적 탄압을 당했던 부산영화제가 박정희 독재에 저항했던 역사적 투쟁을 기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남포동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은 부마항쟁 당시 시위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10월 8일과 9일 이틀간 남포동 광장에서 진행되는 기념행사에서는 피에르 쉴러 감독의 <원네이션>과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이 상영되고 부마항쟁 4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와 함께 부산MBC가 만들었던 <기억하라 1979> 방송 다큐도 볼 수 있다.
 
홍세화 언론인, 박재연 박사가 '프랑스혁명 230주년'과 '부마 40주년'을 기념으로 민주주의의 미래에 토론한다. 송기인 신부, 김경수 경남도지사, 명계남 배우 등은 '항쟁의 역할, 우리의 과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 등은 '진실, 지역, 그리고 기억'에 대해 대화한다. 김보형 들국화 최성원 위나밴드와 버스트오케스트라의 축하공연도 진행된다.
 
앞서 지난 17일 정부가 부마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터라, 커뮤니티비프가 준비한 기념행사의 상징성이 더욱 커 보인다. 
 
김지미 배우가 말하는 한국영화 역사
 
 
 한국영화 100년의 의의를 살리기 위해 기획된 커뮤니티비프 '김지미를 아시나요'

한국영화 100년의 의의를 살리기 위해 기획된 커뮤니티비프 '김지미를 아시나요'ⓒ 부산영화제

 
'김지미를 아시나요라는 주제로 4일간 이어지는 대담은 현존하는 한국영화의 가장 오래된 스타 배우 김지미 선생을 조명하는 행사다. 가장 오래된 배우를 통해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한다는 의미가 있다. 여고 시절인 1956년에 데뷔한 김지미 선생은 생존해 있는 한국영화 원로들 중 영화계 입문시기가 가장 빠르다. 현재 미국에 거주중인 김지미 선생은 부산영화제의 특별 초청으로 특별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부산영화제 측은 올해 이 행사 준비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한국영화 100년에 원로영화인들을 대우하는 게 가장 의미 있다는 판단 아래 김지미 배우를 위한 프로그램을 수개월간 준비했다. 김지미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들 중 정창화 감독의 <장희빈>, 정진우 감독의 <춘희>, 임권택 감독의 <티켓> 등 6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또 '영화인 김지미'와 '여배우 김지미'와 '인간 김지미'를 주제로 4일 동안 4번의 토크쇼를 준비했다. 정진우 감독과 안성기, 이영하, 전도연, 김규리 배우 등 오랜 동료와 후배 영화인들이 게스트로 나서 이야기를 거들고, 김홍준 감독과 김형석 평론가가 대화를 이끌 예정이다. 한국영화의 숨겨진 비사 등이 공개될 가능성이 높아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기대되고 있다.
 
김지미 배우의 출연작품 중 기존 포스터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해 리메이크한 포스터도 전시된다. 김지미 배우의 삶이 한국영화의 역사라는 점에서, 한국영화 100년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과 독일 최고 영화 장비제조사 아리(ARRI) 지원 속에 남포동 광장에서 지역 영화 문화 단체 및 공동체 간 혁신 네트워크 포럼인 어크로스더시네마와 시민들이 직접 영화감독과 배우가 되어보는 행사도 진행된다.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역사 유적지나 부마항쟁의 역사가 스며있는 장소를 돌아보는 '길 위의 인문학'은 부산 원도심이 품은 독립과 민주 등 근현대의 삶과 항쟁의 역사 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커뮤니티비프를 맡고 있는 정미 프로그래머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관객중심성을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실험하는 스핀오프 영화제"라며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관심사를 아우를 수 있도록, 한국영화 100년에 어울리는 풍성한 잔칫상을 관객들과 함께 준비했다"고 자심감을 나타냈다.

이어 "부산국제영화의 고향인 남포동 원도심으로 오셔서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기 바란다"며 "부산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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