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양자물리학> 스틸컷

영화 <양자물리학> 스틸컷ⓒ (주)메리크리스마스

 
영화 <양자물리학>은 개봉 전 의뭉스러운 제목으로 주목을 끌었다. 제목만 듣고는 SF 영화라고 착각할 뻔했다. 극장에 앉고 보니 범죄 오락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최근 이슈가 떠올랐다.

한 연예인의 충격적인 사건을 선행학습했기 때문인지 제목과 다른 전개가 펼쳐져도 크게 지장은 없다. 몸보다 입으로 내뿜는 구강 액션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살아있는 캐릭터, 범죄 오락 장르에 적당한 플롯과 반전, 사회 부조리를 통쾌하게 부숴버리는 스토리는 부진했던 한국 영화의 구원투수다.

영화는 유흥계와 마약, 유명 연예인과 클럽과 검찰, 언론, 정치계까지 연루된 터지지 않는 시한폭탄을 이리저리 토스한다. 가히 명절 특수가 끝난 극장 비수기, 최근까지 이슈였던 유명 연예인 사건이 연상되는 시의성까지. 단숨에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제목만으로 유추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 <양자물리학> 스틸컷

영화 <양자물리학> 스틸컷ⓒ (주)메리크리스마스

 
<양자물리학>은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라는 양자물리학을 인생철학으로 삼고 있는 흙수저 '찬우(박해수)'의 고군분투기다. 찬우는 가방끈 짧은 자격지심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책을 파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양자물리학을 만나고 삶과 연결 짓기 시작한다. 삶은 고유의 파동을 지닌 사람끼리 시너지를 낸다고 믿는다. 오랜 나이트 밑바닥 생활을 견디며 자신의 이름으로 된 술집을 차린 찬우는 최고의 멤버 영입에 나선다.

가장 공을 들인 사람은 바로 성은영(서예지)이다. 사교계의 황금인맥을 자랑하는 성은영은 찬우가 예전부터 눈여겨온 캐스팅 1순위였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사연 따위가 대수랴. 드디어 성은영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클럽 MCMC의 수장 찬우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하다.

찬우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양자물리학 개념은 고정된 게 아닌, 언제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말한다. 팀워크의 중요성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생각만 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게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일종의 주문인 셈이다. 찬우의 유쾌한 말발은 명언집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입은 살아 있지만 대충 둘러대거나 거짓말하지 않는다. 뚝심 있고 의리 있는 캐릭터에 박해수는 맞춤정장처럼 잘 어울렸다.

활강하는 캐릭터, 적재적소에 배치하다
 
 영화 <양자물리학> 스틸컷

영화 <양자물리학> 스틸컷ⓒ (주)메리크리스마스

 
오직 말발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찬우뿐만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가 재미를 더한다. 지적 카리스마를 가진 업체 최고의 매니저 성은영은 '서예지'가 맡았다. 털어도 티끌 하나 나오지 않는 청렴한 경찰 역은 '김상호'만의 연기색을 입혀 박기헌을 가공했다. 거기에 <타짜>의 곽철용이 돌아온 것 같은 조폭 사채업자 정갑택 역에 '김응수'가 합세했다.

이어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조폭 잡는 검사 곽도원을 봤을 때의 느낌이 검사 양윤식 역의 '이창훈'과 오버랩된다. 엎치락 뒤치락하는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만능키를 가진 듯 보였지만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비열한 검사 역할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재벌계의 뿌리 뽑아야 하는 암덩어리 같은 존재 백영감을 맡은 '변희봉'까지 신구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절대 넘을 수 없던 선을 넘은 녀석들
 
 영화 <양자물리학> 스틸컷

영화 <양자물리학> 스틸컷ⓒ (주)메리크리스마스

 
여전히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세상. 피라미드 최하위 계층에서 한 단계 올라가는 것도 어려워 보이는 흙수저들의 반란은 통쾌했다. 한 사건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줄줄이 엮인 인물들로 새로운 국면을 맞기도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에서 특권층은 머리를 살리기 위해 꼬리를 자르고 숨어들기 바쁘다. 언제 어디서 꼬리였던 자기가 버려질지 몰라 불안한 소시민은 살기 위해 빠른 판단력이 요구된다.

지식과 소문을 접목해 차곡차곡 쌓아올린 찬우의 입담은 죽지 않고 살기 위한 자신만의 생존비법이다. '대단한 이빨이야'라고 혀를 차며 이야기하는 정갑택의 대사가 떠오른다.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한다는 말이 있지만 찬우의 말솜씨는 쓰러지더라도 언제든지 일어설 수 있는 오뚝이와 닮았다.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다. 태어나길 금수저로 태어나야 꽃길만 걷는 탄탄대로에 진입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넘볼 수 없는 장벽 밖의 사람들은 여전히 성공에 목을 맨다. 마치 대한민국 성공신화의 그릇된 민낯 같아 씁쓸하다.

<양자물리학>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팽팽한 긴장감이 제대로 파동이 맞아떨어진 영화다. 신선한 영화의 등장으로 그동한 고질적인 한국 영화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영화기도 하다. 어쩌면 투박할지 모르지만 권력에 맞선 카타르시스와 속도감 있는 전개가 온전히 즐길만한 상업영화로 손색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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