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은 정겨움의 상징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팍팍한' 도시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웃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먹을 것을 나누고 사는 시골마을은 인정과 따스함을 떠올리게 한다.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시골마을 옹산도 그렇다. 대대로 게장을 만들어 팔아온 이 동네 주민들은, 같은 말씨를 쓰고,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서로의 집안 사정을 모두 알고 있다. 종종 싸우기도 하지만, '동질성'을 지닌 이웃들은 정겨운 시골마을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런 이 마을에 동백(공효진)이 나타난다. 젊은 나이에 홀로 아기를 낳아 키우며 술집을 운영하는 동백. 그런데 이 '정겨운' 시골마을 사람들이 동백에게만은 정겹지 않다.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동백을 바라보고 차별적인 행동으로 동백에게 무수한 상처를 입힌다.

왜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동백에겐 이토록 모진 것일까? 자신들의 '동질성'에 흠집을 내는 동백을 대하는 마을사람들의 태도 속에 담긴 편견어린 사고들의 면면을 짚어본다.

다수가 전부이다
 
 KBS <동백꽃 필 무렵>의 포스터. 동백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KBS <동백꽃 필 무렵>의 포스터. 동백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KBS


1회 동백이 이사 오던 날. 건물주인 노규태 사장(오정세)은 동백을 보자마자 "근데 어떻게 바깥양반은 안보이셔"라고 인사를 건넨다. 노 사장의 이 말에는 악의가 없다. 건물 수리와 관련된 일들은 남자인 남편과 상의하겠다는 단순한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이성애에 바탕을 둔, 아내-남편으로 구성된 가족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편협함이 내포되어 있다.

사실 가족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엄마나 아빠 한 쪽만 있을 수도 있고, 동성결혼이 인정되는 사회에서는 엄마와 아빠의 성별이 같을 수도 있으며, 부부관계가 아닌 공동체에 기초한 가족도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족'하면 아내와 남편, 아이로 이뤄진 가정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아내-남편-아이로 이뤄진 가족의 형태가 다수를 차지한다고 해서 이것만이 '정상'이고 다른 형태의 가족은 '비정상' 취급받거나 배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다수를 전부'로 취급하는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실천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엄마, 아빠'를 그려보라고 하고, 건물들은 장애인은 염두에 두지 않고 설계된다. 공중 화장실을 지을 때도 성소수자들의 불편함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는 다수를 차지하지 않는 사람은 그 존재를 드러내기가 힘들다.

이런 일들은 노 사장이 그랬듯 '악의 없이' 그냥 습관처럼 일어난다. 하지만 습관이 된 배제는 소외받는 이들에게는 매일 겪어내야 하는 상처가 된다. 1회 동백은 마을사람들에게 "남편은 없는데 아들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 말끝에서 겹겹이 쌓인 상처와 슬픔이 느껴졌다. 3회 용식(강하늘)이 필구(김강훈)에게 던진 "꼭 집집마다 아빠가 다 있는 건 아니여"라는 말처럼 주류가 전부가 아님을 인식하는 감수성이 꼭 필요한 이유다.

나는 너와는 다르다

 4회 마을시장의 상인은 동백에게 "똑같이 하루 세끼 먹고 산다고 다 똑같은 사람인 줄 아나"라고 쏘아붙인다. 술집을 운영하는 미혼모 동백과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자신은 엄연히 다르다는 인식, 나아가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사고가 반영된 말이다.

'나는 남과 다르다'는 사고가 자신이 아닌 남을 향했을 때 이는 편견과 차별적 태도로 이어진다. 심리학자들은 이질적인 집단에 대한 편견을 낮추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요소로 '자비(compassiom : 연민으로도 번역함)'를 든다. 여기서 자비란 나와 다른 존재를 나와 같다고 느끼는 것, 즉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 것으로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하고픈 동기와 태도를 말한다. '자비'의 태도를 가질 때 사람들은 나와 남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적취향, 장애유무, 인종에 관계 없이 모두가 '사람'이라는 한 집단에 속한다고 느끼고 서로를 배척하지 않게 된다.

마을사람들이 동백에게 편견을 드러내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자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게장골목 상인들의 마음 속에는 '동백은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있고, 이런 사고는 차별적인 태도로 나타난다.

반면, 곽덕순(고두심)은 "미혼모가 술집하지 말라는 법 있어. 그럼 과부도 게장 팔면 안되겠다"(1회)라고 말한다. 즉, 미혼모나 과부나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때문에 곽덕순은 동백에게 '베프'가 되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동백(공효진)은 술집을 운영하는 미혼모다. 마을 사람들은 동백을 이질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동백(공효진)은 술집을 운영하는 미혼모다. 마을 사람들은 동백을 이질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KBS

 
고정관념에 끼워 맞추기

마을 사람들은 동백에게 불쑥불쑥 이렇게 말을 던지거나 수군거린다.

"웃어줘요. 생글생글 친절하게. 그게 본인의 일이잖아. " (2회, 홍변호사)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 (2회, 노사장)
"우리 최소한 도덕적으로 살자. 자식한테는 안부끄럽게." (2회, 게장골목 상인들)


이런 말들은 동백을 '술 집 여자'라는 고정관념에 끼워 맞춘 표현들이다. 동백이 아무리 "저 부끄러운 짓 안 했어요"라고 항변해도 마을 사람들은 '술 집 여자'는 웃음을 팔고, 남자들의 비위를 맞춰 돈을 번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동백을 대한다. 동백의 아들이 말하듯 "식당 사장"이나 마찬가지의 일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동백에게서 '술 집 여자' 같은 면만 보려고 애쓸 뿐이다.

고정관념에 끼워 맞추는 이런 사고방식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타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면은 보이지 않고, 기존의 고정관념에 맞는 부분만 찾아내 기억하기 때문에 이는 편견을 강화하고 차별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런 사고 과정 역시 악의 없이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픈 상처가 된다. "마음에는 굳은살도 안 박히나. 맨날 찌르르해요. 느낌이 두부를 조각칼로 퍽퍽 퍼내는 느낌이에요"(4회)라는 동백의 대사는 이런 태도가 사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를 매우 잘 표현한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지속되는 편견과 차별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6회 동백은 이렇게 하소연한다.

"내가 고아가 되고 싶어 된 것도 아니고 미혼모가 되려고 그런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자꾸 재수가 없대요. 생긴 것도 박복하게 생겼다나 팔자도 더럽다고 막. 그런데 어쩔 땐 사람들이 그러니까 나도 내가 꼭 그런 거 같은 거예요."

편견 가득한 시선, 폄하하는 발언, 차별하는 행동이 반복되면, 당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마음 속에 내면화하게 된다. 외부의 평가가 마음 속 깊이 파고들어 스스로도 '가치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심리적 죽음'과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매회, 동백을 호심탐탐 노리는 까불이의 존재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동백의 일상에 묻어나는 까불이의 흔적은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소름이 끼친다. 그런데 과연 소름끼치게 공포스러운 것이 까불이뿐일까? 동백에겐 당장 보이지 않는 까불이보다 매일 매일 심리적 죽음을 체험하게 하는 동네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이 더 두렵고 견뎌내기 힘든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옹산 마을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백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악의 없고, 정 많은 마을사람들이다. 이는 보통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한다.

지금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 누군가를 심리적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백꽃 필 무렵> 마을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한 번쯤 고민해볼 숙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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