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주짓떼로가 빼어난 타격까지 갖추게 되면 정말 까다롭다. 헤비급으로 간격을 좁혀봤을 때, 그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선수는 단연 '미노타우르스'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다. 프라이드 당시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의 노게이라는 상대를 끌어안은 채 스스로 하위포지션을 자처하는 방식을 통해 그라운드로 전장을 바꾸곤 했다. 그만큼 그래플링 싸움에 자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파이팅 패턴이었다.

때문에 대부분 상대는 노게이라와 그라운드에서 얽히는 상황을 극도로 피했다. 상위포지션을 잡고 압박을 펼치며 파운딩을 치는 듯 싶다가도 삽시간에 팔다리를 잡히며 서브미션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게이라의 주짓수를 피하려면 일단 그라운드 상황을 만들어내지 않아야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노게이라는 스탠딩에서의 복싱 테크닉에도 빼어났기 때문이다. 빠르지는 않았으나 좋은 타이밍에서 맞추는 재주가 좋은지라 어지간한 타격가에게도 스탠딩 공방전에서 쉽게 밀리지 않았다. 맷집과 체력이 워낙 좋아 어지간한 잔타격은 받아주면서 상대를 압박했다.

초반에는 밀리는 듯하다가도 진흙탕 싸움 양상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싶으면 어느새 상대는 미노타우르스의 미로에 갇혀버리기 일쑤였다. 노게이라에게 거리를 잡힌다는 것은 곧 패배였던 시절이었다. 근거리, 중거리에서의 노게이라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이에 감탄한 팬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역전의 명수'라는 찬사까지 쏟아져 나왔다. 
 
 '바이 카발로(Vai Cavalo)' 파브리시오 베우둠

'바이 카발로(Vai Cavalo)' 파브리시오 베우둠ⓒ UFC

 
모두가 피하는 그라운드, 헤비급 괴물 주짓떼로 베우둠
 
노게이라 이후 브라질을 대표하던 특급 헤비급 주짓떼로는 '바이 카발로(Vai Cavalo)' 파브리시오 베우둠(42·브라질)이다. 실질적으로 노게이라와 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격투무대에 빨리 데뷔한 편은 아닌지라 세대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노게이라가 하락세에 접어들 무렵 베우둠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베우둠은 노게이라 만큼의 괴물 같은 맷집은 갖지 못했다. 하지만 타격을 보는 눈이 좋아 어지간한 공격은 피해내거나 흘려 맞았다. 정타를 잘 허용하지 않는 선수였다. 노게이라가 내구력, 투지를 앞세워 상대를 질리게 하는 근성의 화신이었다면 베우둠은 원거리, 근거리를 넘나들며 자신에게 불리한 중거리를 잘 허용치 않는 영리한 플레이를 펼쳤다.

노게이라는 등장 당시 토탈파이터로 불렸다. 당시만해도 주짓떼로는 주짓수 하나만 믿고 경기를 펼치는 원패턴 파이터가 많았던 상황인데 노게이라는 준수한 타격 솜씨까지 뽐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주짓떼로가 타격능력을 갖추게 되면 어떤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선봉에서 보여줬다 할 수 있다.

노게이라는 자신의 맷집을 믿고 주짓수 베이스에 복싱을 입혔다. 반면 베우둠은 무에타이를 장착해 원거리 싸움에서의 경쟁력을 높였다. 상대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킥을 차다가 거리가 좁혀졌다 싶으면 잽싸게 달라붙으며 빰클린치 상황을 만들어 내거나 클린치 싸움을 펼쳤다. 어설픈 중거리 상황을 허용하게 되면 위험해지는 것을 잘 아는지라 자신에게 유리하게 게임플랜을 잡아갔다.

물론 타격가도 아닌 베우둠이 마음 놓고 킥을 차거나 니킥을 차올렸던 배경에는 최고 수준의 주짓수 실력이 받쳐줬던 이유가 크다. 베우둠의 주짓수는 특급 레슬러들은 물론 같은 주짓떼로들 조차 탑 포지션을 잡고도 스탠딩으로 도망갈 정도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그라운드 싸움을 해보겠다고 덤벼드는 상대들도 있었으나 잠깐만 그래플링을 섞어보면 화들짝 놀라 몸을 피하기 일쑤다. 주짓수 무대에서도 명성을 떨쳤을 만큼 기술적으로도 뛰어나거니와 악력도 워낙 강해 상대 입장에서는 금세라도 서브미션을 허용할 것같은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베우둠은 게임이 잘 풀리지 않거나 자신이 불리하다 싶은 순간에는 스스로 바닥에 누워 상대를 끌어들이려한다. 이를 팬들은 '낚시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자칫 낚이게 되면 난감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 물론 대부분 상대는 베우둠의 도발에 들어가지 않고 외려 거리를 둔다. 
 
 '70억분의 1'로 불리던 케인 벨라스케즈는 베우둠과의 맞대결에서 자신의 특기인 레슬링을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70억분의 1'로 불리던 케인 벨라스케즈는 베우둠과의 맞대결에서 자신의 특기인 레슬링을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UFC 아시아제공

 
아쉬운 매치, 코미어와 붙었다면 어땠을까?
 
이렇듯 베우둠은 원거리, 근거리를 오가며 진화를 거듭하며 '60억분의 1'로 불리던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그 뒤를 잇던 '70억분의 1' 케인 벨라스케즈를 모두 잡아내며 킹 슬레이어로 악명을 떨치게 된다. 둘 다 자신의 장기인 서브미션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다. 표도르와 벨라스케즈는 서브미션으로 무너진적이 한번씩 밖에 없는데 모두 베우둠에게 당했다.

베우둠은 통산 23번의 승리 중 11회(48%)를 서브미션 승으로 장식했다. 예상보다 적은 수치일 수도 있겠으나 여기에는 상대들이 베우둠과의 그래플링 승부를 극단적으로 피한 이유가 크다. 외려 베우둠의 그라운드를 경계하다 예상치 못한 타격에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아이 훼이크에 속아 엄청난 니킥을 허용하고 무너진 마크 헌트가 대표적이다.

도저히 질 것 같지 않았던 벨라스케즈는 베우둠에게 패한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베우둠과 맞붙었을 당시 벨라스케즈는 '시가노' 주니오르 도스 산토스와의 1차전에서 불의의 한방을 허용하고 무너진 경기를 제외하고는 무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스 산토스와의 2, 3차전을 내리 잡아내며 1차전 당시의 패배를 곱절로 갚아주기도 했다.

때문에 매치업이 성사될 당시만 해도 베우둠의 주짓수가 무섭기는 하지만 벨라스케즈라면 레슬링을 앞세워 정면에서 그래플링 공방전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달랐다. 벨라스케즈는 이른바 상성관계서 베우둠에게 철저히 잡아먹히고 말았다.

벨라스케즈는 베우둠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최대 무기인 레슬링을 활용하지 못했다. 잠깐 상위 포지션을 잡은 상황에서 베우둠이 너무 여유 있게 대응하자 다른 선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후 그래플링 공방전을 아예 피해버렸다. 그렇게 되자 두 선수는 스탠딩에서 싸우게 됐다. 물론 베우둠 역시 실체는 주짓떼로지 전문 타격가는 아니다. 레슬링을 못 쓴다고는 하지만 벨라스케즈가 아예 못해볼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사이즈의 차이가 드러났다. 베우둠은 벨라스케즈보다 신장(193cm)에서 훨씬 앞선다. 거기에 무에타이를 수련한 선수답게 거리를 잡고 차주는 킥에 능하다. 벨라스케즈 입장에서 자신보다 큰데다 킥까지 잘 쓰는 선수를 맞아 펀치위주의 타격으로는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스탭을 잘 활용하는 유연한 카운터 펀처같으면 모르겠으나 스탠딩에서의 벨라스케즈 패턴은 우직한 펀치 압박이 주를 이룬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벨라스케즈는 정타횟수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짧은 벨라스케즈가 훅을 휘두르는 것보다 큰 베우둠의 잽과 킥이 사정거리에서 앞섰던 것이 이유다. 거리차 앞에서 벨라스케즈의 핸드스피드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높은 타점에서 계속 내리꽂히는 잽 공격이 계속되자 압박이 주무기인 벨라스케즈는 역으로 뒤로 밀려버리는 모습이었다.

이럴 경우 벨라스케즈에게는 마지막 선택지가 있다. 도스 산토스를 침몰시켰던 클린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베우둠에게는 클린치마저 통하지 않았다. 그라운드 싸움이 두렵지 않은 베우둠에게 벨라스케즈의 클린치는 전혀 부담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무에타이 훈련 중 다듬은 빰 클린치 이후 니킥공격을 통해 신장의 우위를 살려 벨라스케즈를 더욱 괴롭혔다. 붙었다 싶은 순간 묵직한 니킥이 들어오는지라 클린치싸움이 되면 손해를 보는 쪽은 벨라스케즈였다. 결국 벨라스케즈는 베우둠을 맞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처참하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궁금한 매치는 전 챔피언 'DC' 다니엘 코미어(40·미국)와의 승부다. 한때 코미어는 벨라스케즈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으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코미어는 "나는 벨라스케즈에 미치지 못한다"며 겸손한 발언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같은 팀 동료에 대한 존중의 뜻도 포함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헤비급에서 보여준 코미어의 기량은 결코 벨라스케즈에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미어는 가장 최근 경기에서 '스톤콜드' 스티페 미오치치(37·미국)에게 리벤지를 허용하기 전까지 헤비급 무패를 달렸다. 벨라스케즈가 그랬듯 신장은 작지만 체급 최고의 레슬링 실력을 앞세워 자신보다 큰 선수들을 어렵지 않게 무너뜨렸다.

물론 벨라스케즈전만 놓고 봤을 때는 코미어 역시 베우둠과의 상성에서 불리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코미어는 벨라스케즈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벨라스케즈가 돌덩이 같은 단단한 이미지라면 코미어는 상대적으로 좀 더 유연하다는 평가다. 장신자와의 거리를 좁힌 후 자신의 거리에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본인보다 월등히 큰 미오치치를 상대로 거리를 좁혀 타격전을 통해 1차전을 잡아낸 것을 비롯 2차전에서도 바디샷을 연거푸 허용하며 역전패 당하기전까지 경기를 주도해 나가고 있었다. 레슬링에 일가견이 있는 거구의 미오치치를 번쩍 들어 올려 테이크다운 시키기도 했다. 이제껏 코미어가 헤비급에서 그래플링 싸움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안타깝게도 둘간 매치업은 성사될 확률이 희박하다. 불혹을 훌쩍 넘긴 베우둠은 최근 들어 기량 적으로 하락한 기색이 역력하다. 코미어 역시 진작부터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던지라 언제 옥타곤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흥행적인 부분에서도 별 메리트가 없는 매치업인지라 주최측에서 이를 검토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창때 둘이 붙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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