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 버드> 포스터.

영화 <레이디 버드> 포스터.ⓒ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막 고향을 떠나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입버릇처럼 부산이 싫다는 말을 하곤 했다. 아마 인생에서 가장 심심한 시기를 그곳에서 보낸 탓도 클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는 부산에서도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곳이었다. 그리고 집과 학교, 학원을 제외하면 갈 곳도 없었기에 나는 그 심심한 동네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가끔 서면이나 해운대에 나가면 숨통이 트이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번화가도 나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나는 스무 살이 되면 부산을 떠나리라 마음을 먹었다.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그 곳에 정박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부산은 내가 살기에 적당한 도시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이는 내가 그 곳을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시절 나는 내 인생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몰랐던 것은 문자 그대로 '내 인생'이기에 나에게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입 밖으로 꺼내본 적도 없다. 다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내가 가진 모든 욕구의 배경에는 저런 생각이 강력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학교 옆에 있던 아파트에 살고 싶어 했는데, 그건 단순히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욕망은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서 그 아파트는 부와 고급스러움의 상징이었고 집이 조금 산다는 아이들은 모두 거기에 살고 있었다(심지어 아파트 이름도 '삼성'이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4인 가족에게 딱 적당한 크기였고 그리 낡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저 아파트에 살 수 없다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시시한 것들에 둘러싸여 초라하게 살 것 같았다. 그래서 불행해지라 믿었다. 지금 돌아보면 참 분수도 모르는 불안감이었지만.

나를 심란하고 뜨끔하게 만든 영화 <레이디 버드>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10대 시절, 나는 내가 특별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도무지 몰랐다. 그러니까 막연하게 초라하고 시시한 것들과 결별하면 상황이 알아서 풀리리라 상상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게 10대와 20대를 거쳐 만난 영화 <레이디 버드>는 보는 내내 나를 심란하고 뜨끔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은 어린 시절의 나와 비슷한 게 아니라 그냥 똑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보다 솔직했다. 레이디 버드는 나고 자란 새크라멘토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대학을 가면 그곳을 뜨겠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내가 볼 때 그녀의 집이 화려하진 않아도 부족함은 없어 보이는데, 레이디 버드는 남자친구에게 굳이 자신이 '철로변의 구린 쪽'에 산다고 이야기 한다. 심지어 그녀는 부유하고 잘 노는 친구를 만들기 위해 단짝과 부러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거짓말로 스스로를 부풀리고 포장한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레이디 버드가 자신이 동경하는 화려한 저택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순간이다. 이 모습은 작품에서 종종 다시 등장하며, 레이디 버드가 결국은 뉴욕에서 살기 시작한 후에도 같은 구도로 한 번 더 반복된다. 즉 레이디 버드가 꿈꾸던 도시에 간 이후에도 특별하고 화려한 삶과 그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시시하고 초라한 삶이 싫어서 그곳으로 갔음에도 말이다.

레이디 버드가 새크라멘토에서 사귄 남자친구는 바람을 피우고 결국 둘의 관계는 끝나고 만다. 그 뒤에 새로 사귄 남자친구 카일과 레이디 버드는 처음으로 성관계를 맺는데 성공하지만 그 순간은 아주 시시하게 끝나버린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뉴욕에 온 레이디 버드는 파티에서 만난 남자와 섹스를 시도하지만 술을 너무 마신 탓에 구토하고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가고 만다. 마치 그녀가 "일생 동안 시시한 성관계를 반복하게 될 것"이란 카일의 예언처럼(그는 정말 짜증날 정도로 거지 같은 남자친구였지만 그럼에도 나조차 저 말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풍경이 바뀐다고 삶이 자동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레타 거윅의 첫 장편 연출작 <레이디 버드>(2018) 한 장면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말하자면 레이디 버드는 뉴욕으로 간 이후에도 자신이 동경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배경으로만 두며 형편없는 섹스를 하거나 그마저도 실패하는 것과 같은 시시하고 초라한 일을 겪는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당연한 수순이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지어준 그 이름처럼 비상(飛上)을 하고 싶었고 그 목적지가 뉴욕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새크라멘토나 뉴욕이나 하늘 아래 땅이기는 매 한가지인데 어떻게 그것이 비상이 될 수 있겠는가.

레이디 버드는 그저 그녀의 모습 그대로 뉴욕에 착지한다. 사람도 본인이 지닌 것도 그대로인데 상황이 달라질 리는 만무하다. 레이디 버드는 그곳에서도 그저 레이디 버드가 겪을만한 일을 겼는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 세크라멘토가 '레이디 버드'를 만들었듯 뉴욕도 '크리스틴(영화의 말미에서야 그녀는 자신의 부모가 준 이름을 받아들인다)'을 지금과는 다른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단지 그게 '특별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을 뿐.

영화는 레이디 버드가 뉴욕에 도착한 후 막을 내리지만 나는 그 이후에 그녀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상상해 보았다. 아마 내가 지나온 길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부산의 집보다 더 초라한 고시원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고향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로를 제외하면 딱히 갈 곳도 없었다.

서울은 더 재밌고 새로운 도시이긴 했지만 그것에도 시한은 있었다. 즉 서울에서도 익숙한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다 그 학교가 회사로 바뀌는 삶을 살게 되었다. 특별한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소하고 시시하며 반복되는 일들이 더 많았다. 이사만 가면 달라질 거라고, 이직만 하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과정은 계속 되풀이되었다.

레이디 버드가 너무도 소중한 캐릭터인 이유
 
 그레타 거윅의 첫 장편 연출작 <레이디 버드>(2018) 한 장면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체념은 아니었다. 내게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과분한지 점차 알게 되었을 뿐이다. 또한 소소하고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저 평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이 그런 평범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결코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이 모든 사실들은 미처 생각으로 정리하기 전에 이미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레이디 버드 역시도 아마 비슷한 삶을 살리라 생각한다. 그녀 또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어도 여전히 자신은 극히 평범한 사람임을.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다 결국에는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이루어진 일상을 살 것임을. 무언가 특별한 성취가 없는 삶 말이다.

그리고 그게 결코 나쁜 것도 실패도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취 그 자체가 보장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마치 아빠의 우울증이 돈 때문이냐는 레이디 버드의 질문에 엄마인 매리언이 이렇게 답한 것처럼 말이다.

"성공은 그 자체로는 별 의미 없는 거야, 성공했다는 거 말곤."

그리고 삶의 한 국면을 지나온 후에 뒤를 돌아볼 때마다 그녀는 깨닫게 될 것이다. 특별하지 않았던 지난 순간과 지루했던 주변 환경이 어떻게 지금의 자기자신을 만들었는지. 시시하다 생각했던 고향과 초라하다 여겼던 집과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만 생각했던 엄마가 스스로를 어떻게 성장시켰는지.

영화의 마지막 레이디 버드는 매리언에게 전화해서 묻는다. 자신이 새크라멘토의 도로를 처음 달리며 발견했던 아름다움을 엄마도 출퇴근길을 운전하며 느꼈냐며. 그리고 나 역시도 쓰는 문장과 하는 말에서 엄마의 흔적을 느낄 때 속으로 질문한다. 지금 내가 느끼고 표현하는 이 감정과 생각을 엄마는 이미 지나왔냐고. 

그런 의미에서 레이디 버드는 나의 과거이자 동시에 시행착오이며 같은 인생의 경로를 앞뒤로 걸어가는 동행인이기도 하다. 나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공감을 하고 누군가는 애틋함이나 혹은 반가움을 느낄 것이다. 어떤 감정이든 좋다.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은 우리가 지나온 삶도, 그 곁에 있던 사람들도 그리고 지금의 나도 긍정하게 만든다. 특히나 요즘과 같은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정말 소중한 캐릭터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