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에서 2012년까지 무려 20여년 동안 방송된 KBS 2TV <체험 삶의 현장>은 연예인들과 사회 저명인사들이 다양한 노동의 현장에서 땀 흘려 번 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예능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노동'을 고전적으로 다뤘다. 노동을 경험해보지 않았던 이들이 현장에서 서툰 손길로 일하다 당황하고 고생하는 체험담 그 자체가 볼거리였다. <체험 삶의 현장>은 출연자들의 노동에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미담을 더해 오래도록 휴머니티한 예능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20년이나 계속된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시간이 흐를 수록 노동의 현장은 식상해졌고 결국 종영했다.

<체험 삶의 현장>이 시청자 곁을 떠난 지 7년, 최근 새로운 개념의 노동 예능이 등장했다. 바로 tvN <일로 만난 사이>와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장성규의 일일 체험 현장을 다룬 웹예능 <워크맨>이다.

사실 두 프로그램의 형식은 단순하다. <일로 만난 사이>에선 유재석과 초대 게스트가, <워크맨>에선 장성규가 단 하루 동안 노동 현장에 투입돼 일을 하는 것이다.

시대 공감 <워크맨>
 
 워크맨

워크맨ⓒ 스튜디오 룰루랄라


그냥 하루종일 일만 할 뿐인데 왜 주목을 받을까? 우선 장성규 사례부터 보자. <아는 형님>과 <방구석 1열>을 통해 차근차근 예능감을 키우며 순발력있는 입담을 선보이던 장성규 아나운서는 프리 선언 후 유튜브로 향했다. 

그는 자신이 투입된 각종 노동 현장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입담과 생생한 날것 그 자체인 반응을 보여줘 젊은층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과거 <체험 삶의 현장>이 다룬 고전적인 현장과 다른, 요즘 젊은이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대변해주기 때문 아닐까?

2탄으로 방영된 에버랜드 알바에서 장성규는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의 역할을 한 번씩 다 해본다. 장성규의 말대로 "(직원들이) 매일 웃고만 있어서 편하게 일하는구나 했"던 그곳에서, 직원들은 관객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춤추고 노래하고 아이들로부터 물 세례를 받는 것도 모자라 고난이도 놀이기구까지 타야 했다. 비록 장성규가 경험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 자체만 봤을 때 웬만한 서바이벌 예능을 저리가라 할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웃으며 그걸 해낸다. 어디 에버랜드 뿐일까. 미용실, 편의점, 피자집 등등 이 시대 '알바'의 행렬은 무궁무진하고 장성규는 그걸 온몸으로 체험해 내며 페이소스 넘치는 웃음을 자아낸다. 

바로 그 지점, 오늘날 '시급'이라는 말로 퉁친 현장의 고생담을 장성규는 '리얼'하게 전해주며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프로그램 말미, 그는 자신이 받은 시급을 정산하며 그날의 흘린 땀과 비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또는 직장 레벨에 따라 후하게 치러진 대가에 대해 날것 그대로의 반응을 보여주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과 교감한다.

유재석 버전 <체험 삶의 현장>   
 
 tvN 예능 <일로 만난 사이>의 한 장면

tvN 예능 <일로 만난 사이>의 한 장면ⓒ tvN


반면 유재석을 앞운 예능 <일로 만난 사이>는 보다 고전적인 <체험 삶의 현장> 버전에 가깝다. 과거 < 체험 삶의 현장>이 양지운이란 걸출한 성우의 구성진 입담을 바탕에 깔고 MC들과 다른 현장을 다녀온 출연자들의 훈수를 더해 맛깔스러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일로 만난 사이>는 MC 유재석을 노동 현장에 투입한 뒤 출연자와 함께 일하도록 해 '노동'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다.

<일로 만난 사이>는 이효리-이상순과 함께 한 첫 회, 그리고 차승원과 함께 한 2회를 통해 유재석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한다. 유재석은 여전히 우리나라 대표 MC지만, 어느덧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나이가 됐다. 그는 녹차밭과 고구마밭 등 실전 노동의 현장에서 한껏 작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리얼리티 예능 경력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지만, 농촌의 진짜 노동 현장에서 그는 그저 '일머리' 없는 일꾼에 불과했다.

그러나 3회에 '대책 없는' '하찮은 형들'이 등장하면서 유재석도 변하기 시작했다. 뮤지션으로는 일가를 이루었지만 화문석을 만드는 현장에서는 그저 오십 줄에 엄살 심한 형들이기만 했던 유희열, 정재형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이들이 땀 흘리며 나누는 삶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렇게 농촌으로 전전하던 <일로 만난 사이>는 4회에 이르러 '힙벤져스' 그레이, 쌈디, 코드 쿤스트와 함께 KTX 기지로 향한다. 유재석과 '힙벤져스'들은 청소도구를 실은 자전거를 타고 달려 열차가 잠시 멈춰서는 10분에서 15분, 30분 사이에 이뤄지는 '신속 정확'한 열차 내 청소팀에 합류한다. 당초 유재석은 '힙벤져스'가 잘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들은 예상과 편견을 보기 좋게 깨며 KTX 실내 청소원들의 칭찬까지 들을 정도로 꼼꼼하게 청소를 마친다.
 
 tvN 예능 <일로 만난 사이>의 한 장면

tvN 예능 <일로 만난 사이>의 한 장면ⓒ tvN


곡을 발표할 때마다 화제의 중심에 서는 그레이와 쌈디, 코드 쿤스트가 KTX 청소 현장에서 보여준 건 자유분방한 영혼이 아닌,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담금질을 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유재석과 현장에서 허심탄회하게 나눈 이야기들은 그들이 그동안 최고의 뮤지션이 되기 위해 감수해왔던 숨겨진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해준다.

만약 다른 토크 프로그램에 그들이 나와 그동안 정상에 서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떻게 하다가 번아웃을 경험했는지를 밝혔다면 지금처럼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한 번의 허튼 몸짓도 보이지 않고 묵묵하게 노동을 한 그들이었기에, 더 공감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이렇게 2019년 유재석 버전의 <체험 삶의 현장>은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서 쉼 없이 땀으로 범벅된 채 돌아가는 '노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중계한다. 그리고 그  '노동'을 통해 게스트의 인간적인 모습, 그들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전하는 통로가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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