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장르.'
 
천만 관객을 넘긴 한국영화의 키워드를 꼽으면 이렇게 요약된다고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면, '과거의 어느 시대를 기준으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가족이야기'다.

천만 영화의 장르는 '드라마-액션-사극-판타지-재난' 등으로 다양하지만 다수의 흥행 영화에 이러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실제로 두 편 모두 천만을 넘긴 <신과 함께> 시리즈는 판타지 영화이기에 이 조건과 안 맞아 보이지만 과거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가족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배급의 '전설'
 
 <영화 배급과 흥행-천만영화의 흥행공식>(이하영 저)

<영화 배급과 흥행-천만영화의 흥행공식>(이하영 저)ⓒ 아모르문디

 
한국영화 배급의 역사와 흥행 공식을 분석한 책이 출간돼 관심을 모은다. 20일 나온 <영화 배급과 흥행-천만 영화의 흥행 공식>(이하 <영화 배급과 흥행>)은 영화 배급의 과정과 그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책을 쓴 사람부터가 특별하다. 저자인 이하영 전 시네마서비스 이사는 영화판에서는 '배급의 전설'로 불린다.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흥행 전망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 기획실장을 인연으로 투자사인 시네마서비스에서 배급 일을 시작했다. 이후 30년 영화 인생 동안 기획, 홍보, 마케팅을 두루 거쳤지만 배급과 관련해서 이하영 만큼 충무로 바닥을 꿰뚫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전날 관객 수를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주말마다 영화별 흥행 성적을 분석하는 일을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흥행판'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소문이 나 여러 제작자들이 영화 개봉일을 상담해 올 정도다.
 
이 전 이사의 무기는 풍부한 데이터들이다. 오랜 시간 영화 흥행판에서 꼼꼼하게 챙겨둔 기록은 흥행을 매해 52주로 나눠 주중과 주말 성적을 구분했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서 찾아보려면 일일이 긴 시간 자료를 분석해야 확인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틈틈이 남겨 놓은 기록이 매우 소중한 자료로 남은 것이다.
 
<영화 배급과 흥행>에 따르면 천만 영화의 흥행공식은 4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성수기 시즌에 개봉하라는 것이다. 학생들의 방학이 겹치는 연말연시가 이어지는 설 시즌과 추석 시즌보다는 여름, 겨울 성수기에 천만영화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개봉 첫 주말 관객 수 200만을 넘겨야 한다. 천만 도전을 위한 최소한의 발판이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요란스러운 개봉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는 드라마로 승부하라는 것.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15세 미만 등급도 필수다. 아직까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가 천만을 넘은 적은 없다. 장르별로는 액션은 여름 시즌, 드라마는 겨울 시즌, 코미디는 설날 시즌, 사극은 추석 시즌이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40~50대 관객을 움직이는 것은 마지막으로 중요한 조건이다. 20~30대보다는 중장년층이 가세해야 흥행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들은 사극을 좋아하는 것도 특징이다.
 
스크린독과점은 영화산업 공멸 지름질
 
그렇다고 이 책이 천만 영화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정해진 시장에서 천만 영화에 집중한다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언젠가는 모두 전복될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 수직계열화와 스크린독과점 문제를 매섭게 비판한다.
 
한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고 다양성을 무너뜨릴 때 산업 전체에 긍정적 영향보다는 부정적 영향이 많다는 것이다. 시장 경제의 핵심인 자유경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영화 산업이 공멸로 가는 길이라는 지적은 새길만한 부분이다. 국내 전체 관객 수가 가장 많았던 해의 경우도 천만 영화보다는 300만~900만 영화가 가장 많았을 때라며, 이런 영화들이 많아야 영화 산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 배급사들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대기업 수직게열화가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극장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제작사들의 성장기회가 막힐 수밖에 없다. 최근 나오고 있는 한국영화의 위기론도 다양성이 사라지면서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나오는 현실이 바탕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저자 역시 같은 생각을 밝히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저조한 추석 흥행에 대해서도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조언하고 있다. 추석 영화들이 너무 어둡다며, 사극이 유리한 것은 맞지만 2014년 이후 나온 영화들 상당수가 명절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어두우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선택했다고 지적한다. 이어 그는 밝고 흥겨운 영화가 필요해 보인다고 제안했다.
 
배급과 흥행에 대해 중요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답게 영화사들의 배급에 앞서 갖춰야 할 중요한 전략도 정리돼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봉할 영화의 잠재적 관객을 파악해야 하는 것부터 개봉일을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까지 배급 실무에 대한 A~Z까지가 다 담겨 있다.

영화 배급과 흥행에 대한 책이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매우 의미있는 실무지침서이자 배급학 개론서이기도 하다. 한국영화 배급의 출발부터 시작해 이후 변천사를 담아서 작은 역사서 구실도 한다.
 
주요 흥행 시즌 각 배급사들이 개봉일 결정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수싸움과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책의 양념 구실을 하고 있다. 멀티플렉스가 생겨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국의 개별극장을 찾아가 일일이 영화 상영 허락을 구해야 할 때 경쟁사의 작품들 대신 자기 회사의 영화를 걸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의 기록은 흥미를 돋운다.

영화 배급과 흥행 - 천만영화의 흥행 공식

이하영 (지은이), 아모르문디(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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