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집> 프로듀서를 맡은 김지혜 피디.

영화 <우리집> 프로듀서를 맡은 김지혜 피디.ⓒ ATO

 
소포모어 징크스는 없었다. 앞서 초등학생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이들의 미묘한 심리를 그려낸 영화 <우리들>(2016)로 호평받은 윤가은 감독의 차기작 <우리집> 역시 흥행 중이다. 지난 8월 22일 개봉한 영화는 현재까지 약 5만의 관객을 모았다. 전작이 두 소녀의 내면 갈등을 다뤘다면 이번엔 주제를 좀 더 확장해 가족과 집, 우정을 말하고 있다.

그간 한국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아이들을 전면에 꾸준히 내세운 영화가 있었던가. 윤가은 감독 특유의 관심사이자 철학이기도 하겠지만 두 영화가 세상에 빛을 본 데는 제작사 아토(ATO)의 뚝심 또한 중요했다. 4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프로듀서들로 구성된 이 제작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서 기획을 전공한 4명의 피디가 뭉쳐 각자의 프로젝트를 함께 혹은 따로 진행하는 독특한 시스템이 핵심이다. 

<우리들>의 메인 프로듀서를 맡은 김지혜 피디를 만났다. 국내 대표적 영화 제작사인 명필름 출신으로 탁구 남북 단일팀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 <코리아>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김지혜 피디는 "이제 막 저예산 영화를 한다는 게 이런 것이라는 걸 알아가는 시점"이라며 <우리집>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는 국내 영화계, 그리고 지원 정책이 정권 때마다 널뛰듯 바뀌는 환경에서 어떻게 꾸준히 한 감독의 연작을 낼 수 있었을까. 
 
 영화 <우리집>의 프로듀서를 맡은 김지혜 피디.

영화 <우리집>의 프로듀서를 맡은 김지혜 피디.ⓒ ATO

 
"창작자 지지하고 일할 환경 만들어주는 게 우리 일"

개봉한 지 꽤 지난 시점이었지만 김지혜 피디는 여전히 윤가은 감독과 배우들 무대인사를 따라 다니고 있었다. "제가 운전해서 태우고 다닌다"며 "저예산 영화는 안내 요원이나 경호원을 따로 둘 수가 없어서 (감독과 배우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는지 꼼꼼하게 신경 써야 한다"고 웃어 보였다. 인터뷰 날은 마침 배우들 한복 인사 영상을 찍는 날이기도 했다. 

윤가은 감독은 첫 장편 영화 <우리들>을 발표한 이후 꽤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첫 영화 이후 두 번째 영화를 "최대한 빨리 찍는 게 좋다"는 주변의 조언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내용을 구성했다. 그 무렵 김지혜 피디 역시 저예산 영화 제작에 대한 생각을 정리 중이었다. 김 피디는 "솔직히 전 윤가은 감독님이 첫 영화 이후, 보다 큰 회사와 작업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서 아무 말을 안 드리고 있었다"며 운을 뗐다.

"<우리들>이 끝나고 감독님이 여러 투자사를 만난 걸 저 역시 알고 있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근데 개봉 후 가을 무렵인가 왜 아토는 자기에게 아무런 제안을 안 하시냐 물으시며 먼저 제안 주셔서 당황했다(웃음). 우리 생각엔 감독님이 좀 더 큰 작품을 하실 줄 알았거든. 천천히 같이 고민하자고 했다. 저도 2016년에 <용순>을 끝낸 뒤라 여러 생각이 들던 때였다. 저예산을 처음 하면서 상업영화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고 저예산 영화 제작자 개념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작품을 하기까지 감독님이 중압감을 많이 느끼고 있더라. 아이템이 바뀌기도 했고(윤가은 감독은 본래 중학생 시선으로 가정폭력을 바라본 <소라>라는 작품을 준비하다 소재와 인물을 바꿔 <우리집>을 만들게 됐다-기자 말). 저예산 영화의 피디, 제작자는 곧 창작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나름 개념을 잡았다. 

윤가은 감독님과 하면서 그 선을 분명히 하기로 했다. 연출자 입장에서 생각하자고 결심했지. 작업하면서 오히려 윤 감독님이 '예산을 줄여야 하지 않나요?'라며 걱정해주시더라(웃음). 그만큼 서로 입장을 배려한 것 같다. 제가 영화 일을 한 지 19년 차인데 가장 행복했던 영화 현장이었다. 감독님이 피디인 저보다 더 현장 환경을 걱정해주시더라. 저 역시 그래서 더욱 신나게 일할 수 있었다. 제가 감독 복이 있는 것 같다(웃음)."

 
 영화 <우리집>의 촬영 현장. 윤가은 감독과 배우 김나연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영화 <우리집>의 촬영 현장. 윤가은 감독과 배우 김나연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롯데엔터테인먼트

 
표준근로계약 준수하는 저예산 영화

<우리들> 이후 영화 외적으로 아토는 또 하나의 실험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권유도 있었던 차에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체결한 것. 김지혜 피디는 "<우리집>이 아토의 다섯 번째 작품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이전 영화들에는 스태프와 우리의 뼈를 갈아 넣은 측면이 있다"며 "다들 좋은 뜻으로 그간 합류했지만 이번 영화에선 최저시급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제가 PGK(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위원이기도 하고 매주 근로 환경 안건을 접하면서 확실한 흐름인 걸 알고 있었다. 감독님에게도 지켜보자고 권했고 감사하게도 격하게 동의해주셨다. 더구나 우린 어린 배우들이니 하루에 최대 10시간 촬영, 표준 근로기준 준수가 중요했지. 물론 제작비는 올라갔다. 

다행히 롯데시네마 아르떼(롯데컬쳐웍스의 예술영화관 운영 및 투자 전담팀으로 <우리집> 투자와 배급을 맡음)가 저예산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며 우리 작업을 보장해줬다. 게다가 우리가 영진위로부터 받은 지원금도 지분으로 인정해줬다. 요즘 수익배분율이 투자사 6, 제작사 4인데 아르떼 측과는 반대로 했다. 그만큼 독립예술영화 지원에 대한 원칙과 가치관이 있더라."


창립 이후 아토는 <우리들>을 시작으로 벌써 5편의 작품을 내놓았다. <용순> <홈> <살아남은 아이> 등의 면모를 보면 분명 '한국영화의 다양성은 독립예술영화에서 나온다'는 명제에 걸맞은 젊은 제작사다. 이 말에 김지혜 피디는 반성 어린 말부터 했다.

"사실 작품을 해오면서 자기반성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우리집>도 그랬고, 아토의 영화는 감독님들이 하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피디도 하고 싶어 하는 작품이었다. 그전까지 우린 관객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만 하고 싶은 걸 생각한 경향이 있다. 우리 영화들이 대부분 돈을 조금이라도 벌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치 신인 감독이 자의식에 차서 작품을 하듯 회사를 처음 차린 직후의 우리도 그런 단계였던 것 같다.

지금의 영화 산업에서 우리도 먹고사는 게 중요하고 관객 역시 중요하다. 투자사나 스태프들에겐 '오, 이런 영화를 했는데도 돈을 버네?' 이런 확신을 주는 제작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말부터 아토 피디들의 생각이 명확해진 것 같다. 먹고 살 수 있는 영화를 하자는 거지(웃음). 물론 갑자기 큰 예산의 영화를 할 수는 없지만 나름 10억, 20억의 예산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이를 위해 독립영화 제작, 지원 시스템이 개선돼야 하기도 하고, 조금 더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