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작품상 수상작 <우리는 매일매일>(2019)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작품상 수상작 <우리는 매일매일>(2019)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작품상 수상작 <우리는 매일매일>(2019)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작품상 수상작 <우리는 매일매일>(2019)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대학 시절 운동권 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성추행을 당한 기억을 남몰래 삭혀야 했던 강유가람 감독은 페미니즘을 접하고 그간 몰랐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강유가람 감독이 처음으로 페미니즘을 알게된 1990년대 말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가부장제 문화와 학내에 만연한 성범죄, 성차별에 저항하는 영페미니스트 일명 '영페미'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시기였고 그들의 등장은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학내 풍토를 당연하게 여기던 대학 사회에 신선한 파동을 일으켰다. 

한 때 '영 페미'의 일원이자 지금도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꾸준히 다큐 작업을 이어가는 강유가람 감독의 신작 <우리는 매일매일>(2019)은 1990년대 말 페미니즘 운동에 새로운 흐름을 일으킨 영페미니스트들의 현재를 담은 영화다. 지난 5일 폐막한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빼어난 여성주의 시선과 작품성을 인정받아 한국장편경쟁 작품상을 받는 의미있는 결과까지 이루었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영페미니스트들은 더 이상 '영'하지도 않고(물론 1세대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여전히 '영'한 존재이겠지만)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운동, 불법촬영반대시위, 낙태죄 폐지 운동 등과 함께 사회의 거대한 물결로 이어진 최근 페미니즘 흐름과 비교해봤을 때 다소 점잖아 보이기까지 한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작품상 수상작 <우리는 매일매일>(2019)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작품상 수상작 <우리는 매일매일>(2019)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과거 영페미들에게도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쇼킹'한 존재로 인식되는 시절이 있었고 성희롱을 처음으로 범죄로 인식하게 만드는 등 사회 곳곳에 만면한 성차별 문화를 줄이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해왔다. 그럼에도 예전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적극 받아들이고 함께 힘을 모아 변화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물결을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에 관한 자기 점검에 빠진 감독은 과거 페미니즘 운동을 함께하던 옛 동료들을 찾아 나선다. 

이 중에는 여성단체 활동가로서 페미니즘 운동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동료도 있고, 수의사가 되어 동물권 운동으로 전향한 친구도 있으며, 직장생활 내 타협을 택한 대신 평등한 부부 관계와 워라벨로 이전과 다른 삶을 영위하는 이도 있었다. 한 때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 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가 처한 상황과 선택한 길에 따라 이들의 삶 또한 제각각이다. 

어떤 모습으로 살든... 페미니스트로서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작품상 수상작 <우리는 매일매일>(2019)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작품상 수상작 <우리는 매일매일>(2019)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페미니스트는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된 관념과 편견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페미니즘 운동을 함께 했던 동료, 친구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 가던지 간에 감독과 영화는 그녀들 그 자체의 삶을 존중하고 경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 성폭력 운동에 앞장서는 활동가, 여성주의 의료조합을 운영하는 활동가, 지역 여성 활동가, 페미니스트 가수, 동물보호 활동가, 회사 생활에 충실한 직장인 등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던 페미니스트로서 더 나은 오늘과 내일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그녀들의 단단한 하루는 진심어린 박수가 절로 나오게 한다. 

과거 강유가람의 페미니스트 친구로서 <우리는 매일매일> 인터뷰에 참석한 한 여성 활동가는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어서 행복해질 수 있었고, 내가 누군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고 말이다. 나 또한 그간 페미니즘이 뭔지 잘 모르고 살다가 2년 전 여성주의 다큐멘터리 포럼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페미니즘에 눈을 뜨게 되었기에 그녀의 말에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요즘은 내가 좀 더 페미니즘을 일찍 알았다면 조금 더 건강하고 진취적인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다. 최근 페미니즘 진영에서 내세우는 모든 이슈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페미니즘은 십년 가까이 방송, 영화 리뷰어로 활동하면서 막연히 불편하게 느껴졌던 장면들 혹은 여전히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의 문제점들을 명확히 인지하게 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 건가에 관해 끊임없이 성찰하게 만든다. 

페미니즘이 사회 광범위적으로 확산되면서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여성 운동에 대한 생각과 운동의 방향 또한 각기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은연 중에 이렇게 말한다. 한 때 같은 조직, 목표 아래서 활동하던 페미니스트들도 이렇게 제각각의 길을 걷는데, 이전보다 더 많은,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뭉친 페미니즘 운동 또한 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고 다양해지고 세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페미니즘을 생각하고 추구하던 간에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악습에 대항하는 거대한 문제의식은 모든 페미니스트들의 공통 분모와 지향점이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든지 간에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는 매일매일>은 페미니스트로서 건강한 삶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위안과 힘을 안겨 준다. 그리고 과거 페미니스트들의 동료들을 찍으면서 누구보다 더 많은 힘을 받았을 강유가람 감독이 각자 자리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좋은 다큐 영화를 열심히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살고있는 여성들의 생생한 모습을 그린 영화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작품상 수상작 <우리는 매일매일>(2019)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작품상 수상작 <우리는 매일매일>(2019)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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