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스트레인저> 포스터.

영화 <리틀 스트레인저> 포스터.ⓒ Focus Features

  
우리나라에 정식 수입돼 극장개봉으로 이어지지 않는 괜찮은 외국 영화들이 종종 있다. 그중 팬들의 성원으로 몇 년만에 들여오는 경우가 있는데, <플립> <라이크 크레이지> <루비 스팍스> 등이 최근 지각 개봉한 작품들이다. 한편, 넷플릭스가 시작되고 나서는 지각 '극장' 개봉이 아닌 지각 '넷플릭스' 서비스되는 경우가 생겼다. <블랙클랜스맨> <던 월> <더 이퀄라이저 2> 등이 대표적이다. 

<리틀 스트레인저>도 그중 하나다. 작년 후반기에 북미에서 개봉했지만 처참한 흥행 실패 때문인지 국내에선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하고, 얼마전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였다. 소설 <핑거스미스>로 유명한 사라 워터스의 동명 2009년작을 원작으로, <프랭크>와 <룸>으로 이름을 드높인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기대를 한껏 높였다. 

영화는 드라마로 시작해 미스터리 스릴러를 지나 공포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다. 그 중심엔 '의사 패러데이'와 그가 찾아가는 대저택 '헌드레즈 홀' 그리고 그곳에 사는 에이어스가(家)가 있다. 대체로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소구점이 확실한 영화로, 영화 자체가 아닌 영화에서 파생되는 생각을 정리해보면 나름의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무너져 내리는 헌드레즈 홀과 에이어스가 그리고 의사 패러데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워릭셔 지방, 의사 패러데이는 하녀 베티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고 유서 깊은 에이어스가의 대저택 헌드레즈 홀로 향한다. 알고 보니 그녀는 그곳에서 나가고 싶어 꾀병을 부린 것이었다. 패러데이는 눈감아 준다. 사실 그는 하층민 출신으로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대영제국 국경일에 헌드레즈 홀에 와본 적이 있다. 어머니가 한때 그곳의 하녀였던 것이다. 과거의 영광을 지니고 있는 저택에 깊은 인상을 받은 꼬마 패러데이는 우연히 저택 안으로 들어가 저도 모르게 장식물 일부를 훔친다. 

한편, 헌드레즈 홀과 에이어스가는 무너져 내리고 있는 듯했다. 어머니 에이어스 부인, 전쟁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부상 당한 아들 로더릭, 해군 여군 장교 출신의 캐럴라인, 그리고 하녀 베티와 개 지프밖에 남지 않았다. 패러데이는 로더릭의 다리를 치료해준다는 명목으로 저택을 계속 드나들기 시작한다. 그러는가 하면 그의 시선은 계속 캐럴라인을 향한다. 

어느 날 에이어스가는 새 이웃 환영회를 연다. 패러데이를 비롯 여러 이웃들이 모인 자리, 유일하게 참석하게 된 여자아이 하나가 지프에게 심하게 물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치료는 했지만 지프를 안락사시킬 수밖에 없었다. 로더릭이 말한 '불길한 예감'의 시작이었다. 이후 에이어스가의 일원들이 하나둘씩 헌드레즈 홀에서 떠나간다. 패러데이는 캐럴라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결혼까지도 생각하게 되는데... 

시대상

영화는 헌드레즈 홀과 에이어스가가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시대상을 다루는 작품으로 볼 수도 있고 패러데이와 에이어스가 간의 개인심리적인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우선 시대상을 엿보자면, 영국은 엄연히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후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이며 사실상 대영제국 해체 수순으로 돌입한다. 그 중심엔 단연 귀족들이 있었을 터, 헌드레즈 홀과 에이어스가는 그 상징과도 같다. 

반면 패러데이는 1차 세계대전 직후의 화려한 영국 시절엔 하층민의 자식에 불과했지만 2차 세계대전 직후엔 가장 잘나가는 직업을 가진 의사이다. 에이어스 부인은 그를 무시하지만 누가 보아도 전세가 역전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제목인 '리틀 스트레인저' 즉 '어린 낯선 사람'은 영화의 전체는 물론 마지막 반전까지 관통하는 개념인데, 영국 귀족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존재였을 것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에이어스가가 헌드레즈 홀에서 겪게되는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특히 귀족 사회에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현상들과 다름없다. 이해할 수 없고 두렵고 도망치고 싶지만, 그들은 오랜 세월 쌓아온 기득권을 쉽게 버릴 수 없다. 헌드레즈 홀에서 떠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아쉬운 건, 영화 속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그저 일차원적으로 귀족 사회에 들이닥친 현상들에 맞춰지는 걸 넘어 어린 낯선 사람이라는 외부의 이질적인 존재 침투에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패러데이라는 존재가 갖는 의미가 잘 부각되지 않았다. 이 점이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개인의 욕망

그래도 주인공 패러데이에 천착해보지 않을 수 없다. 초반 회상에 보다 잘 드러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그는 어릴 때부터 대저택 헌드레즈 홀에 대한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그건 우러러보는 것과는 정도가 완전히 다른 욕망이었다. 에이어스가 일원들은 어릴 때 죽은 수전이 집을 떠나지 않고 유령이 되어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라 봤는데, 패러데이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패러데이는 헌드레즈 홀의 현상을 두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망이라는 자아가 의식의 반대편에 붙어 있네. 그 무의식적 자아가 강한 충격을 받으면 분리되어 해를 끼치는 세력으로 돌아다니는 거지"라고 말한다. 폴더가이스트 이론이다. 즉, 그는 어린 시절 헌드레즈 홀에 들어왔을 때 욕망들에 휩싸여 의식이 분리되었고 해를 끼치는 세력이 되어, 남아서 붕괴시키고 있다는 생각한 것이다. '어린 낯선 사람' 말이다. 

강한 충격일 정도로 열등감에 휩싸였고 성공의 척도로 생각해왔던 대상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도하는 느낌은 무엇일까. 패러데이는 분명 상류층인 그들의 일원이 되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욕망의 대상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허무함과 허망함이란. 영화는 시종일관 불편하고 불안하고 불쾌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강한 욕망과 욕망의 사그러짐이 주는 냄새일 것이다. 하지만, 허무함과 허망함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전달해주진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그들은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걸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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