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명절 특수가 예전같지 않다는 말도 나오지만, 추석 연휴는 여전히 다채로운 신작들을 만날 수 있는 시기다.

CGV, 롯데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이제 막 태동하던 1999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는 여전히 단관 혹은 소규모 복합관이 강세를 보였다. 당시에는 미국, 유럽, 홍콩 등에서 온 다양한 작품들이 관객들의 선택을 기다렸다. 때마침 유튜브를 통해 불어 닥친 복고 열풍(SBS는 최근 유튜브로 1990년대 후반 <인기가요> 스트리밍 방송을 시작해 각광받았다)에 발 맞춰, 과거 추석 우리의 극장가에선 어떤 영화들이 사랑받았는지 살펴봤다. 

1999년 <식스센스>의 돌풍
 
 영화 < 식스센스 > 포스터

영화 < 식스센스 >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른바 '밀레니엄', '세기말'을 코앞에 둔 1999년 추석(9월 24일)엔 이 작품이 극장가를 평정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식스센스>였다. (서울 기준 79만 명) 이전까지 전혀 경험할 수 없었던 독특한 분위기의 심령 스릴러는 영화 팬들을 뛰어넘어 일반 대중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브루스 윌리스가 OO이래!"라는 스포일러는 유머성 스포일러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다이하드> 시리즈 이후 이렇다한 흥행작을 내지 못했던 브루스 윌리스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일약 아역 스타배우로 주목 받았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역시 차세대 할리우드를 이끌 귀재로 각광 받았고 <언브레이커블> <싸인>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한동안 기대치에 부응하기도 했다. 
 
 배우 주진모의 데뷔작 < 댄스댄스 > 포스터.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할리우드 직배사((브에나비스타 코리아 - 현 월트디즈니)가 배급에 나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배우 주진모의 데뷔작 < 댄스댄스 > 포스터.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할리우드 직배사((브에나비스타 코리아 - 현 월트디즈니)가 배급에 나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 (주)두인컴

 
반면 비슷한 시기 개봉된 한국 영화들은 나란히 참패의 쓴 맛을 보고 말았다.  <비트> 정우성과 고소영이 다시 한번 힘을 모은 <러브>를 비롯해 송승헌-김희선-김현주 등 젊은 배우들을 내세웠던 판타지 로맨스 <카라>, 신인 주진모와 황인영을 과감히 기용했던 <댄스댄스>는 처참히 관객들에게 외면 당했다. 어설픈 내용 구성과 설익은 연출력, 배우들의 미흡한 연기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명절 대목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했다.

이 무렵 할리우드 영화들은 블록버스터물 보단 중간급 작품들 위주로 국내 극장에 간판을 내걸었다. 1968년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 했던 범죄물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코미디 달인 아담 샌들러의 전성기를 알린 <빅 대디> 등이 소개되었지만 미국 현지에 비해 한국 시장에선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다이하드2> 레니 할린 감독의 야심작 <딥 블루 씨>는 <죠스>의 아류작이라는 혹평 속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라임 니슨과 캐서린 제타 존스를 내세웠던 유령 소재 영화 <헌팅>도 재미를 보진 못했다.

1989년 추석엔 역시 성룡... <미라클> 인기
 
 영화 < 성룡의 미라클 > 미국판 DVD 표지

영화 < 성룡의 미라클 > 미국판 DVD 표지 ⓒ Warner Brothers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9년 추석(9월 14일)엔 토요일이 중간에 낀 징검다리 5일급 황금 연휴가 형성된 해였다. 당시 할리우드 직배사 진출에 한국 영화인들이 강력 반발하며 집단 행동을 하기도 해서, 극장가는 온통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국내 유명 극장들은 직배사 영화 개봉을 거부하는가 하면 UIP (현 UPI코리아) 배급 작품을 상영중인 극장 안에 일부 영화인들이 뱀을 풀어넣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단일관 중심의 신작 개봉, 구작을 내건 재개봉관들이 혼재돼 당시 일간신문에는 각종 새 영화를 선전하는 각종 광고가 빼곡히 등장했다.

추석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은 명절 단골 손님 성룡이 감독 및 주연을 맡았던 <성룡의 미라클>이었다. 얼떨결에 조직들의 싸움에 휩싸인 시골 청년의 좌충우돌 성공담에 코믹 액션이 어우러지면서 언제나 그렇듯 큰 흥행 성공을 거뒀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또 다른 출연배우 원표와 지금은 고인이 된 매염방 등은 어느새 추억이 되었다.
 
 영화 < 트윈스 > 포스터

영화 < 트윈스 > 포스터 ⓒ Universal Pictures

 
미국 할리우드 작품으론 1988년작으로 1년 늦게 지각 개봉된 코미디 <트윈스> 정도가 주목 받았다. 연구소의 실험 과정에서 태어났지만 서로 존재를 알지 못했던 이란성 쌍둥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1980년대 액션 영웅 아놀드 슈월제네거의 연기 변신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트윈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그는 훗날 <유치원에 간 사나이> <쥬니어> <솔드아웃> 등 또 다른 코믹물에서도 특별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 무렵에는 이른바 민주화 바람을 타고 온, 다양한 소재의 영화들이 국내 극장에서 소개됐다. 엘살바도르 군부 독재에 맞서 싸웠던 로메로 주교의 실화를 다룬 <로메로>, 지금은 중화권 톱스타로 자리 잡은 공리의 <붉은 수수밭>, 1969년 체코 민주화 운동을 다룬 밀란 쿤데라 원작 <프라하의 봄> 등은 불과 2년 전 제5공화국 시절이었다면 수입 개봉 자체가 불가능 했을 법한 작품들이다.

반면 그해 추석을 노린 한국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열세였다. 월드스타 강수연 주연의 <그 후로도 오랫동안>,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던 <우담바라>, <불의 나라> 등이 개봉됐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1988년 4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아 그 해 한국 영화 흥행 1위에 올랐던 에로영화 <매춘>의 속편인 <매춘2>도 같은 기간 선보였지만 10만 명 수준(당시 추정치)에 그치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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