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예능 <캠핑클럽>의 한 장면

JTBC 예능 <캠핑클럽>의 한 장면ⓒ JTBC

 
핑클의 그녀는 청순했고 솔로가수의 그녀는 섹시했으며, 예능에서는 언제나 큰 웃음을 던져주던 타고난 연예인 이효리. 이효리는 나와 같은 1979년생이다. 너도 어리고 나도 어리던 20대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내게 이효리는 1979년생을 대표하는 상징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유는 딱히 모르겠다. 이효리는 어느새 '79년생 여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됐다. 같은 해에 태어나서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비슷한 속도로 (물론 이효리는 나보다 훨씬 느린 속도인 것 같지만)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빼면 그다지 비슷할 것도 없는데, 그녀는 왜 나에게 79년생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20살의 그녀는 예뻤다. 예뻐도 너무 예뻤다. 나와 다른 세상 속에서 반짝거리던 그녀는 질투와 동경 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던 연예인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다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된 건 서른 즈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청춘의 시기였건만, "섹시가수를 하기에 서른이 넘은 이효리는 너무 늙었다"는 누군가의 말에 결국 눈물을 흘리던 그녀를 보고는 나는 마음이 동했던 거 같다.
 
당시 나도 서른이라는 나이를 감당하지 못해, 뭘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을 때였다. "나이를 먹고 이제는 한 물갔다"는 한 마디가 마치 내게, 79년생들 모두에게 고하는 선고처럼 느껴졌다. '아, 이제 우리도 한물 간 세대인가?'
 
그때부터 이효리가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더 높은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주기를 바랐고, 응원했다. 지천명이 되어도 마돈나처럼 섹시한 옷차림으로 무대를 씹어 먹는 슈퍼스타로 남아주기를 바랐다. 그녀가 빛나는 것처럼 79년생인 나도 계속 빛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하지만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삶을 선택했다. 화려함 대신 소박하고 여유로운 자연인의 삶. 그래도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JTBC 예능 <캠핑클럽> 중 한 장면

JTBC 예능 <캠핑클럽> 중 한 장면ⓒ JTBC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JTBC 예능 프로그램 <캠핑클럽>을 보게 됐다. 핑클 멤버 4명이 모여 캠핑을 다니는 포맷이라 처음에는 또 '추억팔이'인가 싶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건 한 편의 성장 다큐멘터리다. "나이 들면서 눈물이 많아졌다"며 "갱년기 증상의 징조"인지 궁금해 하는 그녀를 보니 내가 보인다. "가장 찬란히 빛나던 시절에 우리는 그걸 왜 몰랐을까"라고 아쉬워 하는 그녀를 보니 그곳에도 내가 있다. "죽을 때까지 철이 들지 않을 것"이라며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그녀의 소망에도 나의 바람이 겹쳐 있다. 얼핏얼핏 그녀를 스쳐가는 쓸쓸함마저 나를 담고 있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그녀와 나였는데, 2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어느새 우리는 닮아 있었다.
 
어린 10대, 20대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왜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거냐"고 불평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희는 안 늙을 거 같지?' 싶다가도 금세 이해가 간다. 맞아, 나도 그랬어. 왜 나이가 들면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우는 거지? 의아했었다. 인생의 중반쯤 달려온 그녀들은 데뷔곡 '블루레인' 전주 한 소절에 울고, 옛 시절의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울고, 본인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울고, 또 연이 마음대로 날지 않는다며 울었다. 그걸 보며 나도 함께 울었다. 울고 있는 그녀들의 그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 알 것 같아 나도 울었다.
 
핑클은 청춘과 장년 그 중간쯤에서 마음만은 아직 어린, 철들지 않은 소녀들처럼 보였다. 여전히 깔깔 웃음도 많았고 또 남들은 왜 우는지 모를지언정 마음껏 눈물 흘렸다. 그녀들이 현직 요정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나도 세상을 씹어먹을 듯한 패기를 장착하고 있었고 세상은 핑크빛으로만 보였다. 영원히 싱그러운 청춘일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면 아직도 손에 잡힐 듯 한데 벌써 20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진작 요정에서 명예퇴직을 한 그녀들도, 호기로운 꿈을 꾸던 나도 이제는 과거를 추억으로 묻고 현재를 꿈꾸고 있다.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는 지금에야 미안함, 고마움과 아쉬움을 느낀다. 그리고 지나간 청춘에 대한 미련과 후회도 남는다. 무엇보다 가장 밝게 빛나던 화양연화, 그 찰나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의 크고 작은 고비를 넘기면서 이제는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캠핑클럽>에서는 그녀들과 나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감정들, 그 모든 게 느껴졌다.
 
 JTBC 예능 <캠핑클럽> 중 한 장면

JTBC 예능 <캠핑클럽> 중 한 장면ⓒ JTBC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어리고 서툴렀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계속 성장해가고 있다. 이효리는 방송에서 어린 시절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주었던 상처와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응어리를 풀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다. 이제 더이상 정상에 선 톱스타는 아니지만 그녀만의 속도에 맞춰 순리대로 살아가겠노라 말하는 모습에선 의연함이 보였다. 그녀는 예전의 그녀보다 조금 더 편안해 보였다. 

어쩌면 나는 그녀에게서 나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풀지 못하는 인생의 답을, 같은 나이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녀에게서 구할 수 있을까 내심 기대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효리도 정답을 모를 것이라는 결론만이 남았다. 혹여나 알고있다 해도 그녀라면 내게 알려주지 않을 것 같다. 그걸 알면 인생이 조금 더 재미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저 나도 그녀처럼 나만의 걸음걸이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 그녀에게 건네는 말인 듯, 나에게 다짐하는 말인 듯 조용히 되뇌어본다.

"지금까지 열심히 잘 살아왔어. 고생했어. 우리 더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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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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