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턴트맨은 '영화나 TV에서 위험한 장면에만 전문으로 출연하는 특수한 훈련을 받은 단역배우'를 일컫는다. 영화에서 그저 멋지게만 보이는 장면을 위해 수없이 몸을 날리고 목숨을 거는 배우들. 영화와 TV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이 바로 스턴트맨이다.

지난 9월 1일 방송한 <SBS 스페셜>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은 자타공인 스턴트 연기의 장인 정두홍을 조명했다. 무술감독 정두홍의 역사는 곧 한국 액션 영화의 역사이자 스턴트맨의 역사라고 평가 받는다. 그는 한국 액션 영화와 스턴트맨 역사에 어떤 족적을 남겼을까?

악바리 정신
 
<SBS 스페셜>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정두홍은 1966년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무술을 배우며 액션 배우의 꿈을 키우던 그는 1989년 <포졸 형래와 벌레 삼총사>에 출연하며 액션 배우로 첫 발을 디뎠다. 하지만, 액션을 주고받는 '합'을 맞춰본 경험이 없었던 터라 연달아 실수를 저지른 끝에 현장에서 쫓겨나고 만다.

좌절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은 채로 현장에 복귀한 정두홍은 잡일을 도맡으며 눈동냥과 귀동냥으로 액션의 합을 하나씩 배웠다. 절치부심하던 그는 <장군의 아들>(1990)에서 배우 이일재의 액션 대역을 맡으면서 충무로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장군의 아들 2>(1991)에선 단역이나마 배역과 함께 짧은 대사까지 주어졌다.

"제가 최연소 무술감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장군의 아들>에서 (역할을) 맡고 대역을 하면서 (부터에요).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고 대역을 하다 보니까 전체적으로 많이 알게 되더라고요."
 
<SBS 스페셜>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정두홍은 1992년 <시라소니>로 무술감독으로 데뷔한다. 이후 정두홍과 한국 액션 영화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한다. <쉬리>, <반칙왕>, <태극기 휘날리며>, <아라한 장풍대작전>, <바람의 파이터>, <짝패>, <무사>, <놈놈놈>, <베테랑> 등 100여 편이 넘는 영화에서 배우와 무술 감독으로 활약했다. 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무인시대>, <다모> 등도 그의 손을 거쳤다.

2013년엔 <지.아이.조 2>에 이병헌 배우가 맡은 '스톰 쉐도우'의 '스턴트 더블'로 참여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제7기사단>(2015)에선 스턴트 액션을 오롯이 맡아 화제를 모았다. <런 어웨이>(1995)에서 만나 25년째 인연을 이어가는 이병헌 배우는 정두홍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얘기로 악바리에요.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할 만큼 그 정신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사실 (정두홍 무술감독은) 몸이 성한 곳이 없어요."

뼈아픈 경험, 그리고 체계를 잡다
 
<SBS 스페셜>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정두홍은 오늘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었다. 줄 하나에 의지하여 온몸을 날리는 스턴트맨에겐 크고 작은 부상의 위험이 도사린다. 정두홍은 <베테랑>(2015)을 촬영하다가 권지훈 감독이 큰 사고를 당했을 때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2007년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지중현 감독이 촬영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을 적에 느낀 슬픔을 떠올렸다.

정두홍은 슬픔에 머물진 않았다. 과거 스턴트 배우들은 '으악'하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진다고 해서 '으악새'로 취급받을 정도로 천대를 받았다. 최고가 되어 이 판을 한 번 바꾸어보겠노라 다짐한 정두홍은 스턴트 배우들의 권익 보호와 처우 개선에 앞장섰다. 2012년 11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어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스턴트 배우들도 가입이 가능해졌다.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제대로 된 대우와 보상을 받으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길 바라기에 아직 자신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정두홍은 말한다.

"스턴트 하다가 사고로 죽어가면서 스턴트 등급이란 게 만들어졌고, 또 사건이나 사고로 인해서 조금씩 개선해가는 거잖아요. 근데 그런 부분들이 쉽게 되지 않아요. 쉽게 환경이 변하지 않아요. 그런 부분들 때문에 제가 많이 싸워왔죠."
 
<SBS 스페셜>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정두홍은 연습할 곳이 없어 운동장에서 액션훈련을 하다가 다리가 부러진 후배를 보고 1998년 한국체육진흥회의 도움을 받아 보라매공원에 액션스쿨을 세웠다. 지금은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액션스쿨은 지난 20년간 300~400명의 액션 배우와 무술감독을 배출하며 명실공히 한국 액션 영화의 중심으로 기능했다.

과거 한 방송에서 정두홍은 액션스쿨을 "이렇게 체계적인 액션 배우 전문 양성소는 전 세계에서 한 곳"이라며 "고공 액션 장비, 와이어 장비 등 모두 액션 훈련에 필요한 용도로 설계됐다"고 소개했다. 격투 중심의 현대 액션, 검술 등 사극 액션, 체력 훈련, 체조 등으로 짜인 6개월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테스트까지 통과해야 비로소 전문 스턴트맨으로 활동할 수 있다.

액션스쿨은 여타 기관과 다른 운영을 보여준다. 하나는 교육생 전부 100% 무료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두홍의 과거 경험에 기인한다. 어릴 적 액션 배우의 꿈을 키우던 정두홍은 태권도장을 다니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관비를 낼 수 없었다고 한다. 이각수 태권도 스승은 돈을 받지 않으며 정두홍의 꿈을 지켜주었다. 스승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액션스쿨의 운영 방침에 반영한 것이다.

"제가 정말로 돈이 없어 봤잖아요. (돈이) 없는 사람은 무언가 배운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

'으악새'에서 액션 장인 되기까지
 
<SBS 스페셜>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액션스쿨은 각자의 회비 일부를 걷는, 일종의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된다. 소속 스턴트맨들은 수입 일부를 액션스쿨에 투자하고 그만큼의 지분을 갖는다. 정두홍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닌, 모두가 주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교육생의 교육부터 액션스쿨의 운영까지 액션스쿨과 관련한 모든 것을 후배들에게 내려놓았다. 대표는 2년 주기로 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재선은 허용치 않는다.

정두홍은 한국 액션 영화의 이전과 이후를 구분할 수 있는 무술감독이란 평가를 얻었다. 그는 단순히 스턴트맨을 관리하고 액션의 합을 짜주던 이전의 무술감독에서 벗어나 액션의 구상부터, 촬영, 편집까지 관여하는 오늘날의 진정한 '무술감독'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가 최초로 도입한 디지털 콘티(작품에 쓰일 장면을 액션 동작, 쵤영, 편집을 통해 영상으로 구현한 것)는 한국 영화 산업에 일반화가 되었다, 정두홍은 이제 동영상 편집을 하지 못하면 무술감독을 못 한다고 단언한다. 액션 연기뿐만 아니라 액션 장면 촬영 현장의 모든 것을 주도하는 무술감독 정두홍을 여러 영화를 함께 작업한 곽경택 감독은 이렇게 평가한다.

"무술감독의 위상, 현장에서의 위상을 정두홍 감독이 많이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SBS 스페셜>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오늘도 나는 싸운다 무술감독 정두홍'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정두홍은 액션스쿨 외에도 한국무술연기자협회 회장,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 액션연기과 특임교수, 더블에이치 멀티짐 대표로 활동 중이다. 2013년엔 제1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 기술상, 제2회 대전드라마페스티벌 공로상을 수상했다. 영화 전문 관계자들이 뽑은 '1980년대 이후 우리 영화사를 빛낸 33인'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젠 액션 장인으로 대접을 받지만, 정두홍은 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세계 액션 영화의 트렌드를 연구하며 분석한다. 이제는 누군가의 대역을 하지 않아도 될 위치가 아니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른 장인의 태도는 달랐다.

"저는 '내가 배우 했는데', '내가 무술감독인데' 이런 거 없어요. 대역 하는 게 너무 좋고 대사 없이 출연해서, 카메오로 출연해서 '막 싸우다가 한 방에 가라' 그것도 너무 행복하고. 70살이 되든, 80살이 되든 발차기를 하고 칼도 쓰고. 그때까지 대역을 하고. 그냥 이것저것 다 하면서 살고 싶어요. 지금은 제가 영화를 하도록 버티는 힘이 하나하나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죠. 지금 남아있는 한 작품, 한 작품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점을 하나씩 딱딱 찍고 사라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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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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