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렉 센초프 감독이 우크라이나 키에브시 외곽에 위치한 보리스필국제공항에 도착해 딸을 포옹하고 있다.

올렉 센초프 감독이 우크라이나 키에브시 외곽에 위치한 보리스필국제공항에 도착해 딸을 포옹하고 있다. ⓒ Christopher Miller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7일(현지시간)  자국 내 억류 중이던 상대국 인사 35명씩을 맞교환하는 가운데,  2014년 이래 러시아 교도소에 수감됐던 우크라이나의 저명한 영화감독 올렉 센초프(Oleg Sentsov)도 고국으로 돌아왔다. 
     
최근 양국의 정치범 교환 협상은 다수 외신이 꾸준히 그 가능성을 보도해 왔다. 센초프 감독이 최근 모스크바 교도소로 이송되자 세계 영화계 역시 조심스레 희망을 점치기도 했다. 이런 희망은 지난 8월 28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중국적을 보유했고 반역죄로 구속되었던 러시아의 키릴 비신스키 (Kirill Vyshinsky) 기자가 풀려나면서 보다 확실해졌다.

세계 영화계의 연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긴장관계는 지난 2014년 이후 고조되기 시작했다. 크림반도 불법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선 1만 3000여 명이 사망하는 전쟁이 발발했다. 크림반도 출신인 올렉 센초프 감독은 그간 러시아의 크림반도 불법 점령에 저항하며 당시 현지에서 포위되었던 우크라이나 병사들에게 의료와 음식을 제공하며 활동가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2014년 우크라이나혁명 이전에 집권했던 친 러시아 성향의 정부를 비판하고, 반정부 집회에도 참여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을 "피에 굶주렸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4년 5월 10일 밤, 옛 소련 정보기관인 KGB의 후신, 러시아 연방안보국(FSB)에 의해 갑작스레 자택에서 체포된다. 그는 테러리스트 혐의로 군사 법정에서 20년형을 받고 최근까지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감내해왔다.

이후 올렉 센초프 감독과 그의 변호사는 러시아 정부가 물증도 없이 두 명의 허위증언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조사 중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센초프 감독이 테러를 지시했다고 증언했던 증인 중 한 명은 경찰의 고문과 협박에 못 이겨 거짓 증언을 했으며 센초프 감독을 만난 적이 없다고 자신의 증언을 번복하기도 했다.
  
2015년 8월 25일 재판 당시, 국제앰네스티는 그의 구속과 수감에 대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에 반대하는 그의 활동 때문에 부당한 재판을 받았다"며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스탈린시대 쇼 재판을 상기시킨다"고 평가했다.  

수감생활 중 올렉 센초프 감독은 "신념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신념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러시아 내 우크라이나 정치범 64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가운데 4개월간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유럽의회는 2018년 12월 12일, 인권과 자유 수호에 큰 공헌을 한 개인과 단체에게 수여하는 사하로프 '사상의 자유상 (Freedom of Thought)'을 그에게 수여하기도 했다.

그동안 올렉 센초프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왔던 유럽 영화계는 그의 석방 소식에 뜨거운 환영 입장을 밝혔다.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벌여왔던 우크라이나 오데사국제영화제의 율리아 신케비치 (Julia Sinkevich) 집행위원장은 "전혀 불가능할 것 같았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며 "눈물을 참기 어렵다"고 감정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 5년간 수많은 지지 활동을 하며 절망하던 순간들도 많았다"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충실했던 센초프 감독은 이제 사랑하는 그의 가족과 친구의 곁으로 돌아왔다"고 기뻐했다. 또한, "앞으로도 러시아에 남은 80여명의 정치범들의 자유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좋은 영화작업을 선보일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올렉 센초프 및 세르게이 로즈니차 감독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데니스 이바노브 대표 (영화사 Arthouse Traffic)는 <오마이뉴스>에 "큰 위안이 되는 반가운 소식"이라고 전했다. 그는 "올렉 센초프 감독은 이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견뎌왔다"며 "지난 5년간 세계의 많은 영화인, 외교관, 인권활동가들이 애써준 덕이다"고 평했다.
 
실제로 유럽의 대표적인 정치인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 및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그의 수감에 관심을 보였고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앰네스티 이외에도 국제인권감시기구 (Human Rights Watch), 러시아의 인권단체 메모리얼 (Memorial)도 그를 정치범으로 규정하고 석방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다.

각 기구들 즉각 환영 입장 밝혀

유럽 영화인들의 대표적인 기구인 유럽필름아케데미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고위 정부 관료들에게 서한을 보내 올렉 센초프 사건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촉구하며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켄 로치, 벨라 타, 빔 벤더스, 아그니에슈카 홀란드, 크쥐쉬도프 자누시, 아키 카우리스마키 등 다수의 감독들과 프로듀서, 배우들이 이 공개서한에 연명으로 참여했다. 독일필름아카데미 역시 러시아 정부에 그의 석방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고, 파티 아킨, 탐 티커 감독 등이 연명하기도 했다. 

그의 석방 소식에 당일 성명서를 낸 유럽필름아케데미의 마이크 다우니 부회장은 "해피엔딩은 영화 이외에는 현실에서 아주 드물기 마련이다"면서도 "센초프 감독은 수용소에서 오랜 단식투쟁 및 힘든 고통을 마주하며 고달픈 승리를 얻어내는 과정에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영화계는 앞으로도 영화인들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정권이 있을 것이니 잘 준비해 그때마다 적절한 대응과 캠페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다우니 부회장은 미얀마 인간존엄영화연구소 창립자이자, 미얀마 인권존엄국제영화제를 만든 인물로 SNS에서 군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감 중인 민 틴 꼬꼬 기(Min Htin Ko Ko Gyi) 감독, 장기간 가택 연금 중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 그와 함께  반체제적인 영화를 만들려 했다는 이유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던 모하메드 라술로프 감독도 언급하며, "영화인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유럽영화아카데미는 항상 연대할 것"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한편, 올렉 센초프 감독은 비디오게임에 관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첫 장편영화 <게이머>로 로테르담영화제에서 데뷔한 후, 다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첫 작품의 성공으로 두 번째 장편작품 <리노>도 예산 마련이 됐으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후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진 않다. 올렉 센초프 감독은 수감 중에도 우크라이나 영화인들과 10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계속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정부 간 정치범 교환 협상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센초프 감독 외에도 11명의 정치범과  2명의 국가정보요원,  작년 케르치해협에서 우크라이나 군함이 러시아에 나포될 당시 체포되었던 선원 24명이 석방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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