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975의 내한 공연

The 1975의 내한 공연ⓒ 이현파

 

맨체스터 출신 밴드 The 1975는 '힙스터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밴드다. 2013년 데뷔한 이후, 이들은 다양한 장르를 수렴시키는 재능으로 사랑받았다. 우울과 불안, 마약 등 어두운 영역을 시적인 가사로 쓰는 매티 힐리의 재능은 밴드의 음악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다. 밴드의 창작력은 3집 < A Brief Inquiry Into Online Relationships >에서 만개했다. 정보화 사회 속 인간 군상을 그린 이 앨범은 수많은 매체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며,  브릿 어워즈에서는 '올해의 영국 그룹상'과 '올해의 앨범상'을 석권했다.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급으로 성장한 이들을 두고, '가장 뜨거운 젊은 밴드'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9월 6일, The 1975의 내한공연이 열린 올림픽홀의 공기 역시 뜨거웠다. 3년만에 열리는 세번째 내한 공연이었는데, 5천여 석의 공연장이 완전 매진이었다. 올림픽홀의 스탠딩존은 발 디딜곳 없을만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공연장 안은 물론, 기념품을 기다리는 줄 역시 복잡했다. 팬덤의 규모가 놀라웠다.

The 1975는 신곡 'People'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내년 발매 예정인 앨범 < Notes on a Conditional Form >에 수록될 이 곡은 발표와 동시에 팬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밴드가 보여준 음악들과 달리, 강력한 디스토션 사운드와 스크리밍을 내세우는 펑크(Punk) 송이었기 때문이다. 강렬한 인사가 끝난 이후,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Give yourself try, TOOTIMETOOTIMETOOTIME 가 연달아 연주되었다. 매튜 힐리는 함께 무대에 오른 두 명의 댄서들과 함께 익살스럽게 춤을 추고 'She's American'에서는 기타를 잡으며 노래했다. 카멜레온처럼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들은 곡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훌륭한 연주력으로 구현해냈다. 곡의 분위기와 장르에 따라 조명과 LED의 색깔이 다채롭게 바뀌는 것 역시 공연의 생동감을 높였다. 무대 위에서 여유를 뽐내는 매튜 힐리의 모습도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I Like America & America Likes Me'를 부를 때 무대 밑으로 내려와 관객들과 함께 노래했다. 공연 도중 담배를 피우고 싶거나, 술을 마시고 싶다며 여과없이 말하는 모습은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들과 겹쳐 보였다. (일본 섬머소닉 페스티벌에서는 만취한 채로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관객들이 내뿜는 열기도 상당했다. 모든 곡의 가사를 따라 부르는 팬들이 있었다. 공연 중반쯤에는 지정석에 앉아 있던 관객들도 펑키한 리듬에 맞춰 일어났다. 스탠딩석과 지정석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Robbers'나 'I Couldn't Be More In Love' 등 서정적인 노래가 연주될 때도, 관객들은 팔을 흔들며 '떼창'을 이어 나갔다. 특히 브릿팝의 성격이 짙은 'I Always Wanna Die(Sometimes)에서는 장관이 펼쳐졌다. 5천여명의 관객이 이들의 노래를 부르고, 핸드폰의 플래시 라이트를 키며 흔든 것.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울먹이는 팬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The 1975

The 1975ⓒ The 1975 공식 인스타그램

 
"Modernity Has Failed Us!'
(현대성이 우리를 무너뜨렸어.)

- 'Love It It We Made It' 중

 
 
강력한 드럼 비트와 함께 'Love It If We Made It'이 연주될 때, 많은 팬들이 흥분했다.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던 이 밴드가,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영역을 바라보고 있음을 선포한 곡이다. 이 곡에서 밴드는 난민 문제, 도널드 트럼프의 인종 차별 등 다양한 이슈들을 음악과 일치시킨다. 이 곡이 연주되기 직전, 기후 변화에 대한 10대 활동가의 목소리를 삽입한 트랙이 울려퍼졌기에, 유기적인 구성이 주는 감흥도 컸다. 관객들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에 목소리를 내자'고 제안하는 매튜 힐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U2의 보노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곡은 모든 관객들을 춤추게 한 'The Sound'였다. 4집으로 돌아오겠다는 선언과 함께 THE 1975는 무대를 떠났다. 

공연 후반부, THE 1975는 'SEX'를 연주하면서 'Rock n' roll is dead God bless the 1975 '라는 문구를 화면에 띄웠다. 록 음악이 예전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지 못 한 슬픔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자신들의 음악을 '록'으로 한정하지 말라는 다소 오만한 선언일 수도 있다.

일렉트로니카, 알앤비, 신스팝, 가스펠,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 THE 1975는 라이브에서도 자신들의 미덕을 그대로 구현했다. 그 어떤 스타일의 곡을 연주해도, 결국 밴드 고유의 정서로 귀결되었다. 한국 공연 시장에서 올림픽홀은 상당한 티켓 파워가 있어야 하는 공연장이지만, The 1975에게 올림픽홀은 좁은 무대였다. 
 
'밴드'가 힙합,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등에 주도권을 내준 현재, 언론 매체들은 새로운 밴드 아이콘을 찾고자 애썼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팝 밴드'를 자처하는 The 1975 역시 그 후보군 중 하나였다.

3집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The 1975가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한꺼번에 받는 밴드라고 생각해왔다. '다음 시대의 주인공'을 운운하는 매스컴의 호들갑은 과했고, 어디까지나 '힙스터를 추구하는 괜찮은 팝밴드'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을 보고 나니, 이들을 '지금 세대의 가장 뜨거운 밴드'라고 말하는데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그 대답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90분이었다. (공연 직후 발생한 '태극기 논란'만 아니었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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