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예능 프로그램 <플레이어> 중 일부.

tvN 예능 프로그램 <플레이어> 중 일부.ⓒ tvN

 
또 장동민이다. 장동민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SNS가 한 차례 부글거렸다. 지난 1일 tvN 예능프로그램 <플레이어>에서 <쇼미더머니>를 패러디한 '쇼미더플레이' 특집이 방송됐는데, 거기서 문제적 상황이 발생한 것.

심사위원으로 등장한 장동민이 래퍼 하선호의 무대가 끝난 뒤 '합격' 목걸이를 들고 "원해요?"라고 묻자 하선호가 "주세요"라고 답했다. 장동민이 "저도 전화번호 원해요"라 말했지만 하선호가 연락처를 주길 거부하자, "탈락 드리겠습니다"라며 장동민은 하선호를 탈락시켰다. 당시 화면 아래에는 '하선호, 번호 안 줘서 탈락'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이제는 많은 이가 알게 됐다. 이것은 <쇼미더머니>를 패러디한 장면이고, 연출된 상황임을. 연출된 예능 속 장면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의 규칙을 굳이 적용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문제는 저런 상황이 '개그'로 소비되도록 연출하는 사회적 맥락이다. 많은 이들이 장동민의 언행을 비판하면서 미성년자와 성인 간에, 합격과 탈락을 좌우하는 이와 지망자 사이에 불균형한 관계 권력이 작동하고 있으며, 그러한 위계 상에서 폭력이 행사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이번 일에서 조금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 음악계에서 '여성 래퍼'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한국에서 여성 래퍼로 살아남는 일
 
 tvN <플레이어> 방송 중 일부.

tvN <플레이어> 방송 중 일부.ⓒ tvN

 
한국에서 여성 래퍼로 살아남는 건 참 험난한 일이다. 물론 몇 년 사이 몇몇 여성 래퍼들이 인기를 얻고는 있지만, 지난 십수 년간 '여성 래퍼'를 말할 때 대명사처럼 떠오르는 인물로는 윤미래가 유일하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이 때문에 '여성 래퍼 TOP 3: 1위 윤미래, 2위 T, 3위 조단 엄마'라는 말이 농담처럼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참고로 저 두 가지 이름은 윤미래를 칭하는 다른 이름이다. 

'래퍼'의 기본값은 '남성'이기에, '여성' 래퍼는 언제나 품평의 대상이 된다. 여성 래퍼의 외모가 출중하면 '예쁜데 랩도 잘한다'고 평가받아야 하고, 혹여나 가사를 틀리게 부르는 실수라도 하면 '여자라서 랩을 잘 못하네'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랩을 잘하면 '남자만큼 랩을 잘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는 미성년자 여성 래퍼 하선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등래퍼>에 출연해서 실력을 인정받을 만큼 활약했음에도 제작진은 다른 남자 출연자와 어떻게 하면 '러브라인'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현재 <플레이어> 장동민 발언 논란을 설명하면서 한 언론은 하선호를 소개하며 '<고등래퍼3> 남자 출연자와 러브라인도 있었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한국사회는 여성 래퍼의 외모에 비해 랩 실력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 같다. 
 
 Ment <고등래퍼3> 방송 중 일부.

Ment <고등래퍼3> 방송 중 일부.ⓒ Mnet

 
<고등래퍼3>에서는 여성 래퍼 이영지가 프로그램 사상 여성 출연자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었는데, 이때도 뒷말이 많았다. 그가 좋은 실력의 랩을 선보였음에도, 결승전에서 경연 시작 몇 초 만에 고득점을 획득했다는 이유로 "인기 투표로 이긴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또 해당 경연에서 이영지의 곡에 참여한 래퍼 창모와 우원재 덕분에 우승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고등래퍼>나 <쇼미더머니>는 래퍼들의 실력에 많이 좌우되는 프로그램이지만, 래퍼 개인의 매력이나 대중적인 인지도, 혹은 피처링 가수의 유무가 승부에 큰 변수로 작용해 왔던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성이 우승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우승 배경이 실력이 아닌 인기투표, 곡 참여진 탓으로 몰아간다면 이는 명백히 성차별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엔 실력 좋은 여성 래퍼가 없다고? 정말 그럴까

한국에서 힙합이 자리잡은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성 래퍼의 '표준형'으로 윤미래가 호출되며, 여성 래퍼들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이유에는 한국사회의 책임이 꽤 크다. 여성의 직업은 언제나 실제보다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흔했고, 직업의 이름에 '여(女)'자가 붙는 순간 성별만 달라졌을 뿐인데 전문성이나 실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인식되곤 하지 않았나. 여성 래퍼에 대한 불합리한 대우는 힙합씬 내부의 독특한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인식의 반영인 셈이다. 

래퍼 겸 유튜버인 맥랩(McRap)의 개인 방송에 하선호가 출연했을 때, 시청자 채팅창에 성희롱성 댓글이 달린 적이 있다. 사실 생방송 중이었어서 그걸 필터링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갔을 때에도 그 부분은 편집 없이 그대로 방송됐고, 급기야 하선호가 시청자 반응을 보려고 댓글을 읽다가 해당 문장을 읽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진행자는 이런 발언을 그저 '실 없는 소리'로 생각했던 걸까? 이런 일을 드물지 않게 겪는 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여성 래퍼들의 현실이다. 언제 어디서건 품평 당하고 성희롱 당하는 일들 말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베드 랩> 중 일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베드 랩> 중 일부.ⓒ Netflix

 
미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아시안 래퍼들에 대해 조명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베드 랩>(Bad Rap, 2016)에는 중국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이민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 래퍼 아콰피나(Awkwafina)가 등장한다. 그는 시장논리적인 측면에서는 여성 래퍼가 남성 래퍼보다 마케팅하기 더 쉽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즉, 남성 래퍼보다 여성 래퍼가 성상품화하기 더 쉽다는 것이다. 

"가슴이 엄청나게 크고 잘 꾸민 얼굴에다가 긴 머리를 가진, 예쁘게 꾸민 여자"라면 마케팅 포인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콰피나는 본인이 예쁘지도 키가 크지도 않은 '덕분에' 음악으로 승부를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은 국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성 래퍼가 랩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성들의 품평과 성희롱을 마치 하나의 관문처럼 이겨내야만 한다.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의 바뀌지 않는 단면들 중 하나다. 

이번 장동민 사건을 보면서 과거 그가 속한 코미디 크루 '옹달샘' 발언 논란이나 tvN <코미디빅리그> 논란을 재차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나도 해당 발언에 대한 자정작용 없는 한국 코미디가 참 문제라고 생각하고, 여전히 성찰 없는 남성 연예인을 방송 프로그램에서 부르는 행태가 불만족스럽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여성 래퍼가 대우받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곡을 들을 만한 여성 래퍼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실력 있는 여성 래퍼가 나왔을 때 인정하는 데 인색하게 구는 건 아닐까. 2019년에도 여전히 여성 래퍼가 실력만으로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는 게 한국 힙합계의 현실 아닐까. 이번 장동민 발언 논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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