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블하는 이강인 5일 오후(한국시간) 터키 이스탄불 파티흐 테림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조지아의 평가전.

이강인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드리블하는 이강인5일 오후(한국시간) 터키 이스탄불 파티흐 테림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조지아의 평가전. 이강인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축구의 미래 이강인이 드디어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강인은 5일 오후 10시 30분(한국시간)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바샥세히르 파티흐 테림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조지아의 평가전에 선발 출전해 71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익숙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이강인은 특유의 탈압박과 정확한 킥을 선보였다. 후반 6분 골대를 강타한 왼발 프리킥은 이강인의 킥 능력이 성인 무대에서도 충분히 유효함을 방증하는 장면이었다.

다만 약점도 노출했다. 팀이 전체적으로 무너진 점을 감안해도, 이강인 개인의 턴오버가 너무 잦았다. 꾸준히 단점으로 지적받던 속도와 수비적인 측면에서도 합격점을 주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첫 걸음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도 데뷔전을 치른 이강인에 대해 "아직 어린 선수라 데뷔전 자체에 의미가 있다. 당장의 평가는 의미가 없다"며 조급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다.

데뷔전을 소화했을 뿐이다. 많은 선수들이 데뷔 경기에서는 고전하기 마련이다. 이날 경기에서 이강인에게 아낌없이 조언을 해줬을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대표팀의 빠질 수 없는 기둥으로 성장한 주축 선수들의 데뷔전을 다시 돌아본다.

손흥민 - 빠른 발과 과감한 슈팅(vs시리아, 2010년 12월 30일)
 
손흥민, "승리는 국민의 응원 덕분"  한국 축구대표팀이 11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1대 0으로 승리하자, 손흥민이 손을 들어보이며 팬들에게 화답하고 있다.

과거 한국 축구대표팀 당시 손흥민의 모습(자료사진)ⓒ 유성호

 
벤투호의 '캡틴' 손흥민의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은 이강인과 상당히 유사했다. 이강인 정도의 관심은 아니었지만, 당시 독일 무대에서 깜짝 등장한 손흥민은 축구 팬들의 기대주로서 국가대표에 데뷔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지동원 대신 경기에 나선 손흥민은 빠른 발을 활용해 시리아의 측면을 두드렸다. 왼쪽 측면 공격수로 나선 손흥민의 과감한 돌파에 시리아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는 고전했다. 거리와 각도를 가리지 않는 과감한 슈팅도 구사하며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물론 단점도 명확했다. 공간이 넓을 때는 위협적이었지만, 좁은 공간에서 상대 수비의 견제가 들어오면 위력이 떨어졌다.

시리아전을 통해 데뷔한 손흥민은 이후 열린 2011 AFC 아시안컵에서 조커로 활약하며 인도와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는 등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김진수 - 안정적인 수비와 롱스로인(vs호주, 2013년 7월 20일)
 
 대표팀의 핵심이었던 김진수가 K리그로 돌아온다.

과거 축구대표팀 당시 김진수의 모습(자료사진)ⓒ 대한축구협회 KFA

 
홍철과 왼쪽 측면 수비수 주전을 놓고 경쟁 중인 김진수의 대표팀 데뷔전은 무난했다. 2013년 7월 당시 새롭게 출범한 홍명보호의 일원으로 2013 EAFF 동아시안컵 대회에 참가해 가능성을 점검받았다.

안정적인 수비가 돋보였다. 경기 내용이 한국이 시종일관 공격을 하는 흐름이기는 했지만, 수비 상황에서 모난 데 없는 수비력을 보여줬다. 후반 막판 0-0 상황에서 롱스로인을 뿌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호주전을 통해 김진수는 이영표 은퇴 이후 골머리를 앓던 대표팀의 왼쪽 풀백 자리에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홍명보 감독의 굳은 신뢰 아래 김진수는 순항했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 정작 본선에는 참가하지 못하며 눈물을 흘렸다.

권창훈 - 저돌적인 질주와 날카로운 왼발(vs중국, 2015년 8월 2일)
 
    (브라질리아=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리우올림픽 축구대표팀 권창훈이 10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브라질리아 마네 가힌샤 경기장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축구 C조 조별리그 3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8강으로 향하는 결승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2016.8.11

과거 축구대표팀 당시 권창훈의 모습(자료사진)ⓒ 연합뉴스

 
이번 일정에서 이강인의 룸메이트로 함께 생활하고 있는 권창훈의 데뷔전은 호평 일색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아래에서 처음으로 기회를 잡은 권창훈은 중국의 '공한증(恐韓症)' 부활에 선봉장 역할을 했다.

이날 선발 풀타임 활약한 권창훈은 K리그에서 보여줬던 저돌적인 돌파를 그대로 재연했다. 측면이 아닌 중앙에서 공을 직접 잡고 전진하는 권창훈의 퍼포먼스에 중국의 중원은 쉽게 균열됐다. 패널티 박스 근처에서는 날카로운 왼발로 상대를 놀라게 한 권창훈이다.

나름 화려했던 데뷔에 성공한 권창훈은 빠르게 대표팀에 주축으로 안착하며 승승장구했다. 권창훈은 주전 미드필더로 분류되며 2018 러시아 월드컵 출전이 유력했지만, 대회 직전 큰 부상을 당하며 아쉽게 낙마했다.

파울루 벤투 - 데뷔전 자체의 의미(vs스페인, 1992년 1월 15일)
 
생각에 잠긴 벤투 감독 7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호주와의 평가전. 파울루 벤투 감독이 생각에 잠겨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모습(자료사진)ⓒ 연합뉴스

 
그렇다면 대표팀의 수장 벤투 감독의 '선수 데뷔전'을 어땠을까. 당시 포르투갈 리그 비토리아 데 기마랑스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 중이었던 벤투는 만 23세의 나이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후반 28분 교체 투입된 벤투는 스페인의 파상공세를 막는데 일조하며 0-0 무승부에 힘을 보탰다. 참고로 벤투를 데뷔 시킨 감독은 현 콜롬비아 대표팀 감독인 카를로스 케이로스다.

그러나 1989년과 1991년 연달아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현 U-20 월드컵)를 우승한 포르투갈에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넘쳐났고, 벤투의 자리는 없었다. 데뷔 후 4년 뒤인 1996년부터 대표팀의 정기적인 부름을 받기 시작한 벤투는 화려했던 포르투갈 '황금세대'의 뒤를 묵묵히 받치며 헌신했다.

유로 2000에서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르투갈의 준결승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운 벤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벤투는 자신의 35번째 경기였던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일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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