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공연 중 가장 뜬금없는 공연은 아마 지난주 성수동에서 열렸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지난 2일, '특별한 손님'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로 향했다.

바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원년 멤버인 존 폴 존스다. 존 폴 존스가 현대 음악 뮤지션인 첼리스트 안시 카르투넨과 함께 '선스 오브 치폴레'(Sons of Chipotle)라는 듀오를 결성하고 한국을 방문한 것.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 한 내한이었다. 공연은 무료로 진행되었고, 이메일을 통해 신청한 100여 명의 관객들만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레드 제플린은 비틀즈에 이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손꼽힌다. 1980년 드러머 존 본햄의 죽음으로 인해 해체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고, 3억 장의 앨범을 팔았다. 레드 제플린은 하드록, 메탈 등 록 음악의 문법을 새롭게 제시한 신화적 존재다. 보컬 로버트 플랜트와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 등 걸출한 스타들에 가려졌지만, 존 폴 존스 역시 레드 제플린의 전설을 견인한 존재다. 그는 베이시스트로서 제플린 음악의 중심을 잡아 주었다.

존 폴 존스는 동시에 키보드와 만돌린 등 다양한 악기에 능했던 최고의 세션 연주자다. 그의 솜씨는 제플린의 음악에 다양성을 부여했다. 'Kashmir'의 키보드 연주, 'Going To California'의 만돌린 연주 등 그가 빛난 순간은 많았다.

최근에는 푸 파이터스의 데이브 그롤(Dave Grohl), 퀸스오브더스톤에이지의 조쉬 하미와 함께 이 전설의 주인공을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몇이나 되겠는가. 공연이 열린 '플레이스비브'는 공연 장소를 겸하는 복합문화공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예상할 수 없는 장소였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만남
 
 지난 2일, 첫 내한 공연을 열었던 존 폴 존스

지난 2일, 첫 내한 공연을 열었던 존 폴 존스 ⓒ 이현파

 
저녁 8시쯤 되었을 때, 존 폴 존스가 안시 카르투넨과 함께 위층에서 내려왔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관객들이 아이처럼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커지자 존 폴 존스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대에 오른 존 폴 존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사운드를 조정했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이루어졌다. 존 폴 존스는 만돌린과 피아노를 연주했고, 끊임없이 노트북으로 사운드를 조정했다. 안시 카르투넨 역시 이펙터를 적용한, 공격적인 첼로 연주를 들려 주었다. 의도된 불협 화음로 점철된 공연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존 폴 존스는 손수 채를 들고 피아노 줄을 튕기거나, 피아노의 뚜껑을 두드리면서 예상 못 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록 공연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선곡이랄 것이 없고 '즉흥 연주'로만 진행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내받았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음악이었다. 존 폴 존스가 등장했을 때는 환호했으나, 졸음을 참지 못하는 관객들도 몇몇 보였다. 일반 음악 팬이 받아들이기에는 몹시 아방가르드한 음악이었다. 레드제플린의 팬들이 좋아하는 록이나 블루스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고민하는 거장의 모습만큼은 확실히 느껴졌다. 존 폴 존스는 50년 동안 수많은 악기를 만져온 전문 연주자이자, 상업적으로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도달한 방법론은 결국 '모든 틀로부터 자유로운 음악',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음악'을 하는 것일까.

난해한 즉흥 연주... 그러나 그는 개척자다
 
다른 세상에 존재할 것만 같았던 이와 호흡한 시간이었다. 팬들 사이에서 존 폴 존스는 레드 제플린의 멤버 중 가장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약물이나 남녀 관계 등 구설에 시달린 적도 거의 없다. 이번에 펼쳐진 짧은 공연 가운데에서도 그의 소탈한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차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고, 팬들이 던진 토끼 인형을 공연이 끝난 후에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팬들의 사인 요청에 흔쾌히 임했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전설과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비현실적인) 사실이 가슴을 벅차게 했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들려준 음악이었다. '신의 자리'를 체험해 보았던 그는 여전히 새로운 음악적 경지를 바라보는 개척자였다. 칠순 거장의 음악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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