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전양준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전양준 집행위원장ⓒ 부산영화제

 
"올해처럼 쉽게 개·폐막작을 정한 적은 없었고, 최근 부산영화제가 3~4년 동안 좋은 작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뉴커런츠'의 편수도 올해 안정적으로 14편을 수급했다."
 
4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전양준 집행위원장이 밝힌 올해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전 위원장은 "아시아 영화 중 40%가 신인 감독들의 영화고, 화제작들과 걸작들의 격차가 줄면서 아시아 전 지역의 수작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전 위원장은 올해 전 세계로 출장을 다니며 영화 선정을 진두지휘했고, 아시아 영화 선정에는 직접 뛰어들어 프로그래머의 역할을 수행했다.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의 부재를 대신 채운 것이다.
 
카자흐스탄 영화의 저력
 
85개국 303편. 올해 부산영화제의 상영작 규모다. 지난해 324편에 비해 조금 줄었으나, 가장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규모로, 300편의 영화는 평균 수준이다. 카자흐스탄 영화 <말도둑들. 시간의 길>과 한국영화 <윤희에게>가 올해 부산영화제의 막을 올리고 내리는 역할을 맡았다.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초원 위로 수십 마리의 말을 몰아가는 스펙터클과 긴박감을 조성하는 말도둑들과의 결투가 더해져 카자흐스탄 버전의 '서부극'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만한 영화다. 2015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이 리사 타케바 감독과 공동연출했다.

카자흐스탄 영화의 개막작은 2008년 <스탈린의 선물> 이후 11년 만인데, 엣 소련의 영향을 받은 중앙아시아 영화 강국의 저력을 보여줄 예정이다.
 
 2019년 부산영화제 개막작 카자흐스탄 영화 <말도둑들. 시간의 길>

2019년 부산영화제 개막작 카자흐스탄 영화 <말도둑들. 시간의 길>ⓒ 부산영화제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감은 올해 부산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면면에서 드러난다. 97편의 장편영화가 부산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월드프리미어로 상영된다는 것 자체가 전 위원장이 강조하는 올해 프로그램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거장들의 작품을 모아 놓은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올해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넷플릭스 영화 <더 킹: 헨리 5세>, 웨인 왕 감독의 <커밍 홈 어게인>, 프랑스 로베르 게디기앙 감독의 <글로리아 먼디> 등 4편이 상영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가족 구성원들의 강한 감정적 갈등을 그린 영화로 일본을 벗어나 만든 작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베 정권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감독이기도 한데, 지난해 그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아베 총리는 축전도 보내지 않았다.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 그의 작품 상영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커 보인다.
 
올해 신설된 아이콘은 거장들의 작품을 따로 모아 놨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예전에는 대륙에 따라 '아시아영화의 창'이나 '월드시네마'에 포진했을 영화들인데 올해부터는 이들을 따로 예우하기 시작했다. 상당수의 영화가 칸과 베를린, 베니스 등 유럽의 대표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작품들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비롯해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쏘리 위 미스드 유>,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마티아스와 막심> 등이 상영되며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의 <마르게와 엄마>는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신인감독 약진한 아시아영화
 
 태국의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이 급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동굴에 갇힌 실제사건을 그린 영화 <동굴>

태국의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이 급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동굴에 갇힌 실제사건을 그린 영화 <동굴>ⓒ 부산영화제

 
아시아 영화는 다양한 장르에서 신인 감독들이 약진이 돋보인다. 올해 중화권 영화 중 중국 본토 영화는 현 시대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섬세하게 그린 <푸춘산의 삶> 그리고 19년 동안 살인자를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인 <추격자들> 등 완성도 높은 데뷔작들이 눈에 띈다.
 
대만 영화는 남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대로 살아가려는 여성을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담아낸 <갈망>, 그리고 한국 게임 유저들에게도 이미 잘 알려진 호러 게임 <반교: 디텐션>의 영화판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홍콩 욘 판 감독의 애니메이션 < 7번가 이야기 >와 티벳 출신 페마 체덴 감독의 <풍선>도 소개된다.
 
일본영화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지구의 끝까지>, 일본 농촌 사회의 폐쇄성을 다루고 있는 를제제 다카히사 감독이 <약속의 땅>, 현대화에 따른 소중한 가치의 상실을 안타까워하는 오다기리조 감독의 <도이치 이야기>,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무성 영화와 무성 영화 시대에 보내는 러브레터인 <변사> 등이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다.
 
서남아시아에서는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먼저 인도 영화들 중에서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주목 받았던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 <봄베이의 장미>, 빈곤과 소외의 문제를 사랑스럽게 그려낸 <낯선가족>과 <여행자들>, 젠더 문제를 세련된 형식으로 풀어낸 <내 이름은 키티>, <방랑의 로마> 등이 주목할 만하다.
 
오스카상에 빛나는 세계적 뮤지션 라흐만이 음악을 담당한 음악영화 < 99개의 노래 >는 오픈 시네마에서 상영된다. 엄격한 종교 사회에서 자신의 은밀한 즐거움을 찾은 노년의 투쟁을 다룬 파키스탄 영화 <인생의 곡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의원 선거에 출마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완벽한 후보자>, 영화 찍기를 자기 반영적으로 그린 이란 영화 <시네마 동키> 등도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영화로는 필리핀 거장 라브 디아즈의 <중지>와 인도네시아의 야심찬 신예 요셉 앙기 노엔이 연출한 <공상의 과학>, 태국 유소년 축구팀 동굴 조난 사건을 다룬 재연 드라마 <동굴>이 화제가 될 전망이다.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카자흐스탄 영화로는 의문의 죽음을 둘러싸고 권력과의 진실게임을 다룬 <다크-다크 맨>, 꾸밈없는 연출로 뒤통수를 가격하며 반전을 선사하는 <마리암> 등을 프로그래머들이 추천하고 있다.
 
이상호 감독 <대통령의 7시간> 공개
 
 이상호 감독 <대통령의 7시간>

이상호 감독 <대통령의 7시간>ⓒ 부산영화제

 
한국영화는 뉴커런츠에 3편이 포진했는데, 봉준영 감독의 <럭키 몬스터>는 지난 2년 연속 뉴커런츠 상을 휩쓴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작품이다. 한국영화의 오늘 작품 중에서는 <스틸 플라워> <재꽃> 등을 연출한 박석영 감독의 신작 <바람의 언덕>이 눈에 띈다. 강원도 태백 등에서 촬영된 영화는 부산영화제 배우상을 수상한 장선 배우와 아역 장해금 배우, 김태희 배우 등이 출연한다.
 
전계수 감독의 <버티고>는 천우희 배우와 유태오, 정재광 배우가 나서는 나오는 작품이다. 지난 8월 <파고>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박정범 감독은 <이 세상에 없는>, 신수원 감독의 <젊은이의 양지>, 이성강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프린세스 아야>도 주목할 작품이다. 2017년 <밤치기>로 감독상을 수상한 정가영 감독은 <하트>로 다시 부산을 찾는다.
 
다큐멘터리는 부산과 여성감독들이 돋보인다. 다큐 경쟁에는 5명의 감독 중 부산 감독이 2명이고 여성 감독이 3명이다. <그림자들의 섬>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김정근 감독의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을 예민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관찰한 영화다.

주현숙 감독은 <당신의 사월>을 통해 세월호를 오래 애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를 담았다. 장윤미 감독은 <깃발, 창공, 파티>를 통해 금속 노조 여성노동자들의 끈끈한 관계와 집요한 말의 투쟁을 흥겹고 친밀한 시선으로 다뤘다.
 
2014년 <다이빙벨>로 처음 부산에 발을 디뎠던 이상호 감독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촛불 정국까지를 되짚은 <대통령의 7시간>을 공개한다. 2014년 부산영화제 사태의 시발점이었던 <다이빙벨> 이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되는 영화다.
 
이외에 진보정당 선거 낙선기를 유쾌하게 스케치한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2>와 탁월한 기술적 완성도와 독특한 소재로 이목을 집중시킬 두 편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스네일맨>과 <제사>도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영화 중에는 홍상수 감독의 <강변호텔>도 포함됐다. 올해 3월 개봉한 영화라고는 해도 지난해 8월 개최된 로카르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을 시작으로 아시아와 미주 유럽 등 다양한 영화제를 거친 작품이다. 이번 부산영화제 초대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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