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하는 정갑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제처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김외숙 법제처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유성호

 
"아직 결혼 안 하셨죠?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 가장 큰 병폐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출산율입니다. 출산율이 결국 우리나라를 말아먹습니다. 후보자처럼 정말 훌륭한 분이 정말 그것까지 갖췄으면(출산했으면) 100점짜리 후보자라고 생각합니다.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주시기 바랍니다."
 
눈과 귀를 의심했다. 사적인 자리에서 들었어도 분노를 금치 못했을 무례한 말인데, 이런 말을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인 후보자 청문회에서 듣게 될 줄이야. 후보자가 미혼 남자였더라도 이런 질문을 했을까? 평생을 경제학자로 살아온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정갑윤 의원으로부터 맥락 없는 훈계를 들은 이유는 한 가지다. 여자이면서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어떤 목적을 가진 자리인지에 관계없이, 어떤 역할을 부여 받았는지에 관계없이 '그저 생물학적 여성'으로 치환되는 경험을 일상적으로 한다. 면접을 보러 가서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아야 하고, 직장에 나가면 '아이는 누가 보냐'는 말을 들어야 하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서 자질을 검증받는 자리에서도 '본인 출세보다는 출산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해 달라'는 훈계를 들어야 한다. 그 사람의 일이나 역할이 아닌 출산의 도구, 아이의 엄마, 애 보는 여성으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랩 실력 출중한 하선호는 왜 '번호 안 줘서 탈락한 여성'이 됐나
 
 tvN 예능 프로그램 <플레이어>에서 장동민이 래퍼 하선호에게 전화번호를 요구하고 있다.

tvN 예능 프로그램 <플레이어>에서 장동민이 래퍼 하선호에게 전화번호를 요구하고 있다.ⓒ tvN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대해서 논란이 된 사례가 최근에 또 있었다. tvN 예능프로그램 <플레이어> 속 한 장면이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 1일 <플레이어>에서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패러디한 '쇼미더플레이' 특집이 방송됐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장동민은 래퍼 하선호의 무대를 본 뒤 그에게 합격을 상징하는 목걸이를 들고 "원해요?"라고 물었다. 이에 하선호가 "(목걸이) 주세요"라고 답하자, 장동민은 "저도 전화번호 원해요"라고 말했다. 하선호가 "저 18살인데…"라고 난감해하자 장동민은 "탈락 드리겠습니다"라며 그를 경연에서 떨어뜨렸다. 제작진은 '하선호, 번호 안줘서 탈락'이라는 자막을 내보냈고, 방송이 끝난 후 공개한 클립 영상에서도 '하선호에게 번호 요청? 장동민 철컹철컹 MC 등극'이라는 제목으로 이 상황을 개그로 희화화했다.
 
이 방송으로 인해 장동민과 <플레이어> 제작진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지고 있고, 장동민 하차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하지만 장동민과 제작진은 현재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장동민과 제작진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의 설정이었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리 단순하게만 볼 사안은 아니다. 이번 논란은 여성을 성적대상화 했다는 점,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점, 범죄를 가볍게 웃음으로 소비하려 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웃기려 한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대상화해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은 개그가 아니라 희롱일 뿐이다. 실력을 검증받는 오디션장에서 하선호는 자신의 랩을 선보였지만, 돌아온 것은 '연락처를 달라'는 요구였다. 방송의 취지가 무엇이었건, 문제의 장면에서 하선호는 래퍼가 아닌 그저 어린 여성일 뿐이었던 듯하다. 누군가는 '웃기려는 설정이었다'라고 해명하겠지만, 남자 래퍼에게 이런 설정을 한 방송이 어디에 있었던가.
 
뿐만 아니라 합격과 불합격의 권력을 쥐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누가 봐도 어린 여성(미성년자이든 아니든)을 대상으로 이성적 접근을 했다가 거부당하자 '탈락' 시키는 이런 상황은 뉴스 사회면의 여러 사건들을 연상시킨다. 예능을 넘어 현실에서 데뷔를 빌미로 연예인 지망생을 유인해 성범죄를 일으킨 사건, 직장 내 상사에 의한 성희롱 등에서 너무도 쉽게 찾아볼 만한 상황이 아닌가.

제작진도 이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클립 영상의 제목을 '장동민 철컹철컹 MC 등극'으로 붙인 것으로 보인다. 분명 잘못된 행동임을 알면서도 이를 희화화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범죄를 희화화하는 것은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조롱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웃자고 만든 프로그램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더군다나 어린 여성에게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는 역할을 코미디언 장동민이 수행했다. 여기에는 문제가 없을까. 장동민은 유세윤, 유상무와 함께 2015년, 팟캐스트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에서 삼풍백화점 피해 생존자, 장애인, 코디, 군대 후임 등에 대한 혐오발언을 한 것 때문에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한 바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016년에 tvN <코미디빅리그>에서 노인 비하, 한부모 가정, 아동 성추행 희화화로 방송통신심위위원회로부터 법정 제재인 경고를 받기도 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올해에는 tvN <씬의 퀴즈> 제작 발표회에서 PD와 출연자들에게 '이 XX'라며 욕설을 해서 논란이 됐다.
  
옹달샘 장동민, 입 굳게 다물고 침통  개그 트리오 옹달샘의 장동민이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의 한 호텔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인터넷방송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의 '삼풍백화점 생존자 비하', '여성 비하 발언' 등에 대해 사과의 입장을 발표하며 침통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개그 트리오 옹달샘의 장동민이 지난 2015년 4월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의 한 호텔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인터넷방송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의 '삼풍백화점 생존자 비하', '여성 비하 발언' 등에 대해 사과의 입장을 발표하며 침통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정민

 
이런 화려한(?) 이력을 가진, 약자혐오 발언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미성년자에게 연락처를 물어보는 상황은, 그것이 설정이든 애드리브든 매우 문제가 된다. 아무런 제지 없이 '철컹철컹'이란 자막으로 꾸며져 버젓이 방송된 것도 마찬가지로 문제다. 장동민은 자신의 문제 발언으로 인해 출연 자체가 자주 논란이 되는 연예인이다. 이미 사과 기자회견을 한 본인도 이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고, 섭외한 제작진도 그럴 것이며, 시청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방송에서 부적절한 상황을 연출한다는 것은 지난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다.
 
'웃자고 만든 프로그램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미디어를 통해 생산되는 이미지, 인식 등은 전혀 사소하지 않으며, 때로는 죽자고 달려들어야 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tvN <플레이어> 속 장동민이 보여준 짧은 말과 행동은 여러 가지 이미지와 인식을 생산할 수 있기에 더욱 문제적이다.

그 이미지란 첫째, 여성은 어떤 직업을 가지든 어떤 일을 하든 그저 남성에게 전화번호를 제공하는 걸 거부하지 말아야 할 이성이라는 것. 둘째,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힘을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마음대로 이용해도 된다는 것. 셋째, 재미만 있으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줘도 상관없다는 것. 넷째, 범죄를 웃음으로 소비해도 된다는 것. 다섯째, 약자 혐오 발언으로 지속적으로 논란을 일으켜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약자 혐오는 사소하다는 것.
 
지금껏 우리가 일상에서, 방송에서, 공적인 자리에서 누군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들지 않았기 때문에 2019년 현재에도 이와 같은 청문회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느 국회의원이 여성 국회의원에게 '집에 가서 다른 일 하는 게 낫다'는 발언을 했을 때, 우리는 더 죽자고 달려들었어야 했다. 장동민이 팟캐스트에서 약자에 대한 온갖 막말을 쏟아냈을 때, 어느 래퍼가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고 했을 때, 더 죽자고 달려 들었어야 했다. 그렇게 못했기에 우리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늘 비슷한 논란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성차별이 사라졌다며 한쪽에서는 '역차별'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논란들을 보면 도대체 뭐가 구체적으로 나아졌는지 말하기 어렵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식으로 비슷한 논란은 반복되고, 당사자들은 형식적인 사과 또는 무대응으로 별 문제 없이 자신의 활동을 이어간다. 우리는 언제까지 똑같은 논란을 보고 분노해야 하는가.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다'는 똑같은 사과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비슷한 논란들을 이만큼 반복했으면 이제는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동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아직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 장동민과 <플레이어> 제작진은 '사과한다'는 말에 그치지 말고, 달라진 말과 행동을 통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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