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클의 캠핑이 끝이 났다. 아직 프로그램은 끝나지 않았지만, 지난 1일 이들의 여행은 끝났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캠핑클럽>은 핑클의 멤버 4명이 14년 만에 다시 만나 6박 7일간 캠핑을 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잔잔하게 담아낸 프로그램이다. 20대 때 가수로서 전성기를 함께 한 이들이 40대 전후가 되어 다시 만난 모습은 비슷한 나이를 살고 있는 내게 뭉클하면서도 애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핑클 멤버들이 경이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나눈 대화들은 중년의 문턱에서 느낄 수 있는 삶과 나이 듦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었다. 인생의 중반기에 접어든 핑클이 캠핑을 하며 나눈 이야기들 속에 담긴 심리학적 의미를 곱씹어 본다.
 
 중년에 이른 핑클멤버들이 함께 캠핑하는 모습을 담은 <캠핑클럽>의 포스터

중년에 이른 핑클멤버들이 함께 캠핑하는 모습을 담은 <캠핑클럽>의 포스터ⓒ JTBC

 
예전의 내가 아니야

캠핑 초반, 이들의 대화는 '달라진 모습'을 고백하는 것에 집중됐다. 아마도 20대를 함께 보낸 멤버들과의 오랜만의 만남은 멤버들 각자에게 예전과는 다른 나의 모습을 자각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2회에 이들은 대인관계에서의 변화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관심사가 점점 좁아져." (효리)
"나는 자꾸 좋은 사람이 만나져. 전에는 좋은 사람 있어도 잘 안 만났는데." (유리)


3회에서 유리는 줄곧 화를 참고 살아왔는데 요즘엔 화를 잘 내게 됐다며 이렇게 말한다.

"이젠 (화) 내. (남편이) 넌 맨날 참다가 나 만나고 화만 내니 이래." (유리)

젊은 시절 술을 많이 마시고 자주 취했었다는 효리는 요즘엔 술을 취할 만큼 마시지 않는다며 "오빤(남편) 나 술취한 거 두 번 밖에 못 봤어"라고 말한다. 이들의 대화는 중년이 되어 통합되어 가는 사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저명한 정신분석가 융에 따르면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미지에 맞추어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하지만 중년에 이르면 그동안 가면 속에 감추어 두었던 자신의 모습을 되살려 보다 온전한 나로 통합되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융은 이를 '개별화'라고 했다. 때문에 이것저것 관심이 많았던 효리는 관심의 폭이 좁아지고, 술도 적게 먹게 된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던 걸 꺼리던 유리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참기만 했던 화도 잘 내는 보다 건강한 모습을 갖게 됐다. 이처럼 핑클은 그동안 억눌러두었던 자신들의 또 다른 모습을 수용해 온전한 한 개인으로 '개별화'되어 가고 있었다.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돼

4회 핑클은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눈다. "남들이 안 알아줘도 내가 내 자신이 기특하게 보이는 순간이 많을수록 자존감이 높아져"라는 효리의 말을 시작으로 이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타인에게 의존해왔던 시절의 모습들을 하나씩 들춰본다. "이거 우리 직업병 아니야?"라며 힘들었던 기억들을 공유한다.

특히 유리는 "난 남들에게 욕 안 먹으려고 20년을 산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뭘 원하는지를 몰라. 욕 안 먹을 짓만 해"라고 타인의 평가에 의존해 왔던 지난 날에 대한 후회를 털어 놓는다.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대중들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스타'로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 40대가 된 이들은 서로에게 "우리끼리 있을 땐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돼"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게 됐다.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날 때 사람은 보다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게 된다.

8회에서 효리는 이런 깨달음을 이렇게 요약한다.

"그거에 연연하면서 살아가기에는 이제는 너무 피곤해.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야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고 이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심리적 성장의 핵심기제 중 하나다. 이들은 이렇게 성장하며, 보다 '나다운 나'가 되기를 갈망하는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핑클 멤버들은 서로 다른 삶의 방식들을 존중하며 캠핑을 한다.

핑클 멤버들은 서로 다른 삶의 방식들을 존중하며 캠핑을 한다.ⓒ JTBC


비교하는 마음을 버려

캠핑을 하는 동안 눈에 띄었던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이들의 완전히 다른 생활패턴이었다. 아침형 인간인 효리, 진과 올빼미형인 유리와 주현은 어쩌면 함께 여행하기 힘든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생활패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효리와 진은 매일 아침 다른 멤버들이 깨지 않도록 배려한다. 물론, 낮에는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적절히 배치해 각자의 개별성을 존중한다.

7회에 효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개개인은 다 멀쩡한 사람이야. 문제가 없어. 근데 넷이 모이니까 비교가 되잖아. 너는 그냥 원래 그 시간에 일어나는데 늦게 일어나는 애가 돼버리잖아. 그리고 너는 원래 네 속도가 있는데 느린 애가 되고. 나는 성질 급한 애가 되고. 그게 우리의 문제였어. 비교."

프로그램에선 가볍게 넘긴 대목이었지만, 다양성 존중에 대한 성찰이 담긴 대사였다. 결국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고 함께 지낸 이들은 일주일 동안 속 마음을 내보이며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됐다.

이렇게 이들의 캠핑은 '다름'을 수용하며 끝났다. 평소 잘 울지 않던 이진이 캠핑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터뜨릴 때 나 역시 아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따뜻한 마음이 밀려왔다. 이들이 시간과 함께 변해가는 모습은 좋아보였다. 핑클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의 다양한 면들을 통합해내고, 다른 이들의 다름을 수용해가는 과정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과 허용의 폭이 넓어진 만큼 다른 멤버들을 더 넓은 마음으로 품어낼 수 있었다. 

중년의 문턱을 넘고 있는 나 역시 이런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이라면, 나이 드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이 듦'을 긍정하고 나니, 매 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느끼던 서운함이 올해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핑클의 캠핑이 내게 특별했던 이유다.

덧)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부분은 결혼한 핑클 멤버들의 가족을 걱정하는 장면이었다. 8회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멤버들이 콘서트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진은 공연 준비기간 동안 멀리 미국 뉴욕에 혼자 남을 남편을 마음에 걸려했고, 효리 역시 "괜찮다고 해도 신경 쓰이고 미안하고 그러지"라고 말한다. 혼자만의 삶이 아닌 가족의 삶을 함께 생각하는 모습이 애틋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으로서 동병상련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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