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작 <욕창>(2019) 한 장면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작 <욕창>(2019) 한 장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작 <욕창>(2019, 심혜정 감독)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대강 이러하다. 퇴직 공무원 강창식(김종구)은 수 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누구의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거동조차 불편한 부인 나길순과 살고 있다. 그리고 불법체류자 간병인 유수옥(강애심)도 이들의 집에서 함께 지낸다.

강창식은 길순의 몸에 난 욕창이 매우 신경쓰인다. 길순의 욕창은 창식과 그녀를 돌보는 수옥뿐만 아니라, 따로 살고있는 자식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짐이 된다. 

영화에서 'OO엄마'로 불리는, 강창식 나길순 부부의 딸 강지수(김도영 분)은 남편과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엄마를 매우 안쓰럽게 생각하지만 그뿐이다. 사업에 실패하거나 삶에 의지를 잃어버린 무능력한 오빠들을 대신해 그는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것만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겐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버겁게만 느껴진다. 

<욕창>은 노환에 시달리는 부모와 봉양을 감당할 수 없는 자식의 흔한 갈등을 다루나 싶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다정다감하고 싹싹한 수옥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창식이 수옥과의 위장 결혼을 발표하면서 영화는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창식이 병든 아내를 버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딸 지수가 인정한 것처럼 창식은 길순이 쓰러진 이후 가까운 친구조차 만나지 않을 정도로 아내의 곁을 지키는 데 전념해왔다. 평소 길순에게 지극정성이었던 창식은 수옥과의 위장 결혼 발표 이후 길길이 날뛰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항변한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작 <욕창>(2019) 한 장면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작 <욕창>(2019) 한 장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 너네 엄마를 위해서야!"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씨받이를 들이거나 후처를 들이는 가부장제의 악습은 익숙하다. 하지만 병든 아내의 원활한 간호를 위해 평소 그녀를 성심성의껏 보살핀 간병인과 위장 결혼을 꿈꾸는 노년 남성의 결심은 정말 새롭게 다가온다. 관객들은 안다. 창식이 돌연 수옥과의 위장 결혼을 발표한 것은 순전히 아내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수옥을 향한 불순한 의도가 강하게 섞여 있음을 말이다. 그리고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좀 더 오래 한국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수옥은 창식의 기막힌 제안을 섣불리 거절하지 못한다.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파격적인 전개를 선사하는 <욕창>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한국 가족 문화의 악습과 잔재가 골고루 배어있다. 창식은 수옥 없이는 아내 병간호는 물론 자기 스스로 밥상 하나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남자다. 그는 평생 아내, 자식 위에 군림해왔지만 이제는 그들 도움 없이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퇴락한 가부장의 말로를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거나 가정에 소홀한 부모, 오빠, 남편, 아들을 대신해 가족을 돌보는 사람은 수옥, 지수, 지수 올케 등 오롯이 여성들의 몫이다. 쉽게 낫지 않는 길순의 욕창은 수십 년 동안 이 가족이 겹겹이 쌓아온 갈등과 응어리의 표상이다. 

하다 하다 이제는 간병인과의 위장 결혼 이야기까지 꺼내는 아버지에게 분노한 자식들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요양병원 보내시고, 아버지는 실버 타운 가시면 되잖아요!"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작 <욕창>(2019) 한 장면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작 <욕창>(2019) 한 장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도 욕정을 참지 못하고 동네 창피하게 만드는 창식의 노망만 탓하기엔 그가 처한 상황도 딱해 보인다. 자식들은 그간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토로하며 병든 부모에게 신경쓰는 것만으로 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한다. 간병인 순옥 역시 그간 창식과 길순을 거쳐 갔던 다른 간병인들에 비하면 성심성의껏 두 노인을 돌보지만 결국은 자신의 안위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자식들 또한 각자의 생활이 있고 그것조차 건강하게 유지할 여력이 없기에 이미 오래전 붕괴된 가족 공동체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해 보인다. 

이들에게 서로를 걱정하고 애쓰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어느 한 쪽의 완벽한 승리 없이 찜찜한 결말을 맞는다. 그런데 파국으로 치닫는 전형적인 비극 정도로 영화의 엔딩을 규정짓기에는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아른거린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작 <욕창>(2019) 한 장면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작 <욕창>(2019) 한 장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영화 <욕창>이 가진 최대의 미덕이 있다면, 어느 한 캐릭터도 함부로 단정 짓지 않고 대상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때 가장의 권위를 앞세워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창식은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뒷방 노인이 됐지만 그런 와중에도 들끓는 욕정을 참지 못한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들은 부모를 향한 양가적인 감정을 마구 분출해 내지만 그 모습들이 더럽고 추하고 측은하다기보다 그 자체로서 그들의 삶을 인정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하루하루가 불안한 불법 고용인 신분에도 때때로 낭만과 풍류를 즐기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주체성을 가진 수옥의 존재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이처럼 누구 하나 섣불리 미워할 수도 편들 수도 없는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을 통해 2시간여 러닝 타임 동안 관객들을 쥐락펴락 한다. 영화 <욕창>은 묻는다. 누가 감히 이 가족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막장 드라마에 혀를 끌끌차며 박장대소 하는 우리들도 그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그보다 더 낫다고 호언 장담할 수 없기에 함부로 안심할 수 없는 현실. 여전히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가부장제의 잔재를 통렬하게 비틀며 간담 서늘하게 웃기는 영화 <욕창>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