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젊은 세대는 과거를 쫓고 있다. 1980년대 시티팝 열풍이 가져온 레트로 바이브는 흘러간 옛 가요와 중년의 옛 가수들을 다시 소환한다. 최근의 10대, 20대들에게 과거 가요의 열악한 완성도는 오히려 '멋진 낡음'으로 받아들여진다. 

각박하지 않은 여유로움과 통속적이되 진솔한 노랫말에 위로를 받고,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자발적인 '디깅(Digging)'과 플레이리스트로 취향을 공유한다. 지상파 방송국은 과거 콘텐츠를 편집해 업로드하고, 대중은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방송됐던 SBS <인기가요> 24시간 스트리밍 라이브를 즐기며 '온라인 탑골공원', '온라인 노인정'을 형성하고 있다.
 
 2011년 기린은 청청패션과 잘 넘긴 가르마 표지의 <그대여 이제>로 레트로가 익숙지 않던 시절 뉴 잭 스윙 스타일을 선보인 바 있다.

2011년 기린은 청청패션과 잘 넘긴 가르마 표지의 <그대여 이제>로 레트로가 익숙지 않던 시절 뉴 잭 스윙 스타일을 선보인 바 있다.ⓒ 비트볼뮤직

 
이런 복고의 흐름에서 기린은 가장 성공적인 '레트로 마니아'로 돋보인다. 그는 이미 2011년 청청 패션과 깔끔하게 넘긴 가르마의 1집 <그대여 이제>로 1990년대 뉴 잭 스윙 문화에 충성을 선언한 바 있다.

알앤비에 힙합 리듬을 더해 그루브를 강조한 '뉴 잭 스윙'은 1990년대 가이(Guy)와 테디 라일리(Teddy Riley), 듀스와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2010년대에는 이미 종결된 유행이었고 이따금씩 개그 코드로 소비되던 장르였다. 유브이(UV)의 코믹한 콘셉트와 '촌스러운 패션'으로 가끔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다. 

그러나 기린의 태도는 진지했다. 앨범 재킷부터 '히위고 나우'와 '난 외로움은 싫어'까지 확실하게 과거 문화에 헌사했다. 일회성 패러디와 개그는 애초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듯 묵묵히 작업에 정진한 그는 '너의 곁에', 'Jam', 'Summer holiday' 싱글과 두번째 정규 앨범 <사랑과 행복>을 연이어 발표했다. 
 
 기린은 최근 디제이 유누(YUNU)와 함께한 신곡 'Yay yay yay' 뮤직비디오에서 과거 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 '사랑의 스튜디오'를 패러디했다.

기린은 최근 디제이 유누(YUNU)와 함께한 신곡 'Yay yay yay' 뮤직비디오에서 과거 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 '사랑의 스튜디오'를 패러디했다.ⓒ 8 Ball Town 유튜브 캡쳐

 
언뜻 허허실실해 보이나 정교하게 세공된 결과물이었다. '난 외로움은 싫어', '요즘 세대 연애 방식', ´DJ에게'는 옛 가요의 정감 있는 노랫말을 재현했고, 'Jam'과 'City breeze', '8balltown'으로는 기성의 문법으로 현대의 멋을 들려줬다. 2014년 <사랑과 행복>을 두고 "기린의 뉴 잭 스윙은 패러디가 아니라 오마주다"라고 격찬한 선배 이현도의 감상은 결코 즉흥적인 것이 아니었다.

기린은 닿지 못한 과거의 멜로디와 비트로부터 흥과 혁신을 추출하려는 수많은 '21세기 레트로 마니아'들의 심리를 정확히 포착한다. '요즘 가장 느낌 있는 아지트인 합정역 브라운에 갔어(DJ에게)', '오늘 마지막 목적지 Every Damn Day(Yay yay yay)', '서대문구 신촌로 57-1 3층 존 프랭클(One Nation)' 등의 노랫말은 스토리텔링으로도 훌륭할 뿐 아니라 실제로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도심 속 공간을 조명하며 현실과의 접점을 만든다.

그의 음악이 더욱 즐거운 건 이와 같은 '연대'와 '함께하기'의 태도 덕이다. 이미 기린은 2015년 레이블 에잇볼타운(8 Ball Town)을 설립하며 '멋진 신세계' 아닌 '멋진 과거'를 함께 만들 동지들을 규합했다. DJ 플라스틱 키드(Plastic Kid)와 유누(Yunu), 색소포니스트 제이슨 리(Jason Lee)와 싱어송라이터 재규어 중사, 프로듀싱 팀 위키즈와 브론즈(Bronze)가 즐거운 레트로 여정에 힘을 보탰다. 

기린의 견고한 1990년대는 선명한 기본 모델 위 다양한 변주를 통해 함께하는 뮤지션들의 개성을 십분 끌어내며 멋진 결과를 만들어낸다. 올해는 그 정점의 해로, 지난 연말 수민(SUMIN)과의 < Club 33 >로 1990년대 소울/알앤비의 낭만을 옮겨온 데 이어 올 7월에는 박재범과 함께 여름을 맞이하는 쿨한 파티 EP < Baddest Nice Guys >를, 8월 26일 에잇볼타운 소속 DJ 유누(Yunu)와의 컬래버레이션 < YUNU In The House >를 발표했다.

"그럴 땐 듀스처럼 한 박자 쉬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 'Jam' 중에서.


"슬픈 노래는 듣고 싶지 않아
서울의 달은 유난히 오늘따라 더 밝아."
- '오늘밤엔' 중에서.

 
 기린은 'City breeze'로 과거 콜라보레이션 한 바 있던 박재범과 함께 새로운 EP <Baddest Nice Guys>를 발표하며 세련된 2019년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조명했다.

기린은 'City breeze'로 과거 콜라보레이션 한 바 있던 박재범과 함께 새로운 EP 를 발표하며 세련된 2019년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조명했다.ⓒ '오늘밤엔' 뮤직비디오 캡쳐


박재범과 함께한 들뜬 파티 튠 '오늘밤엔'으로 기린의 컬래버레이션 스타일을 살펴보자. 2014년 '요즘 세대 연애방식', 'Jam'으로 인연을 맺은 후디(Hoody)의 훅, 디제이 유누의 프로듀싱 위 어글리 덕이 김건모를 오마주하며 과거를 되살린다. AOMG와 에잇볼타운 소속 아티스트들을 비롯해 서울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총출동한 뮤직비디오로 앞서의 '함께하기' 의미를 재차 강조한다.

혁신을 위해 과거를 참조하는 이들에게 기린은 모범적이고도 왕성한, 현재진행형의 아티스트다. 옛것으로 취급받던 장르와 1990년대 문화를 즐기던 아티스트는 진지한 태도로 묵묵히 창작에 몰두하며 번득이는 결과물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파편적으로 소비되던 레트로가 젊은 세대의 선명한 경향으로 자리 잡은 지금, 기린과 에잇볼타운의 음악은 '사랑과 유행은 계속 바껴도 클래스는 영원(Pump up the yunu)'함을 증명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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