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포스터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이미 연립주택이나 빌라는 아파트로 많이 대체됐지만 여전히 곳곳엔 수많은 주택들이 존재한다.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서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가면서 눈에 띄는 작은 구멍가게에 들어가 필요한 것들을 사서 집으로 향한다. 그 작은 골목들에는 많은 사람들의 추억들이 남겨져 있다.

사실 그냥 집으로 향하고, 집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저 그런 골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밤이면 왠지 조금은 위험해보이기도 하지만 낮에는 남녀노소가 부지런히 다니는 골목은 생동감이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저 평범한 그 골목은 왠지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남겨두었을 것 같은 정감있는 곳이다.

그런 작은 골목들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그 골목들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골목은 유명한 길이 되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한다. 경리단길이나 우사단길처럼 작은 골목에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사람을 끌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작은 골목에서 발견하는 의외의 무언가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발견 속에서 만들어가는 추억들은 평생 마음에 남아 아련한 감정을 전해준다. 지금도 여러 골목길들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감정들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작은 골목길에서 시작된 사랑이야기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장면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장면 ⓒ CGV아트하우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주인공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의 사랑이야기다. 특히나 그들이 만나고 사랑을 싹틔우는 공간은 그 작은 골목길 속이다. 영화는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조금씩 건너뛰면서 두 주인공이 만나고 헤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들이 처음 만난 곳은 동네 골목길의 빵집이다.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언니 은자(김국희)와 같이 빵집을 운영하며 일하던 미수는 우연히 그곳을 찾아온 현우를 만나게 되는데, 결국 현우까지 빵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된다. 그 날은 바로 라디오 프로그램 <유열의 음악앨범>이 시작된 날이었다. 

두 주인공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대부분 골목길에서 이루어진다. 골목길의 빵집, 골목길 위의 작은 월세방, 골목길의 만화방. 그리고 두 사람은 골목길에서부터 상대방을 찾아 뛰어간다. 이들이 하는 사랑의 모습은 모두 골목길에서 표현된다. 그들은 좁은 골목길을 나란히 걷고, 작은 빵집에서 서로 눈을 맞춘다. 그리고 작은 월세방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그들만의 시간을 보낸다. 그들이 함께 한 작은 공간들은 그 시절을 겪어낸 관객들이라면 많은 공감을 할 것 같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소통의 변화로 보여준다. 맨 처음에 서로 연락할 길이 없을 때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고, 시간이 지나면서 PC통신 전자메일로 연락을 시도하기도 한다. 또 다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폴더형 휴대폰으로 서로에게 연락을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소통 수단

영화에서 무엇보다 훌륭한 건 그런 수단들이 상대방에게 어떤 형태의 사랑으로 전달되는지 잘 묘사한다는 것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연을 보낼 때는 사연이 뽑힐지도 알 수 없고, 상대방이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그런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도하며 사연에 마음을 담아 전달한다.

PC통신을 이용한 메일을 보낼 때는 상대방이 읽을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 정도 있다. 물론 영화에서는 그걸 읽을 수 없게 하는 장치가 있지만, 메일은 적절히 사연을 대체한다. 구구절절히 주인공 미수의 사연이 상대방의 메일 계정으로 전달 된다. 그리고 휴대폰 시대가 되면 적절한 시간을 정해서 상대방에게 바로 전화를 건다. 점점 기다리는 시간은 줄어들지만, 미수와 현우의 사랑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또 다른 단절을 부른다. 

사실 영화 속 미수와 현우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은 어쩌면 우연의 연속이라고 느끼기 쉽다. 현우의 상황이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리고 몇 번의 헤어짐과 우연한 만남이 반복되면서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 담긴 그들의 감정선은 결코 작위적이지 않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그런 감정선을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들이 골목길에서 데이트를 할 때 흘러나오는 노래 강타의 '오늘 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나, 작은 방에서 그들의 만남과 이별이 담길 때 흘러나오는 노래 토이의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는 그 시절 두 남녀의 감정을 오롯이 전달한다. 이런 노래들은 그들이 함께하는 작은 골목길, 작은 방 공간과 너무도 딱 들어맞는다. 한때 골목길을 누비며 데이트를 하거나, 이어폰을 귀에 꼽고 골목길을 산책하던 사람들에게 그 감성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그렇게 전달된 그 감성은 두 주인공의 상황과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감성이 가득 담긴 영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장면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장면 ⓒ CGV아트하우스

 
영화 속에서 시간이 현대에 가까워지면서 골목길의 모습도 점점 변해간다. 어떤 골목은 대형 아파트 단지가 생겨 재개발이 되고, 어떤 골목은 젊은층이 가득찬 모습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두 주인공의 사랑이 정점에 있던 그 골목의 방은 시간의 흐름에도 그 모습 그대로 자리한다. 그들은 울적할 때 그 골목을 찾고 때로는 언니 은자가 일하는 작은 시장골목의 칼국수 집을 찾기도 한다. 

넓은 곳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다 결국 위로 받으려고 찾아가는 곳은 과거의 안락했던 그 공간들이다. 변하지 않는 월세방은 세월이 지나면서 변화는 환경 속에서도 그들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모습이 현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건, 그들이 함께한 그 월세방 뿐이다. 그래서 관객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확인할지를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 

한국 영화의 멜로 기근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된 일이다. 오랜 만에 멜로 영화를 들고 온 정지우 감독은 <유열의 음악앨범>을 통해 감성이 풍부한 영화를 선보였다. 영화 속 주인공을 연기한 김고은과 정해인은 부드러운 연기로 튀지 않고 좋은 케미를 보여준다. 다른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 때 그 시절의 골목길의 모습일 것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그 작은 골목길에서의 추억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선물처럼 다가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유열의음악앨범 골목길 김고은 정해인 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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