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예능 <캠핑클럽>의 한 장면

JTBC 예능 <캠핑클럽>의 한 장면ⓒ JTBC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울었다. 지난 1일 JTBC에서 방영된 <캠핑클럽>에서 7일간의 캠핑 마지막날, 이효리와 성유리가 나누는 대화 장면에 울컥해 버린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핑클은 요정 이미지였다. 본인들도 그렇게 포지셔닝했고, 요정 이미지에 충실했다. 4명이 있으면 다 똑같이 뜰 수는 없는 법. 이미 이효리는 본투비 연예인으로서 독보적으로 돋보였고, 메인 보컬 옥주현은 노래를 너무 잘해서 눈에 띄었다.

상대적으로 이진과 성유리가 약해보였는데, 딱 보기에도 두 사람은 좋게 말해서 연예계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바른' 이미지였다. 거칠게 말하자면, 어떻게든 튀어야 하는 연예계 생태계상 살아남기에는 끼가 없어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핑클이 해체되고 나서 이효리는 날개를 단 듯이 순식간에 슈퍼스타가 되었다. 뭘 해도 히트를 쳤고, 뭘 해도 이슈가 되었다. 이효리 개인으로서는 빨리 핑클에서 벗어나는 게 다행이었다 싶을 정도로.

캠핑 마지막날, 눈물을 쏟으며 고백한 성유리   
 
 JTBC 예능 <캠핑클럽>의 한 장면

JTBC 예능 <캠핑클럽>의 한 장면ⓒ JTBC

  한 팀이었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뒤처져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도 한번쯤은 "다른 멤버들은 뭐 하나?"하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난다. 그러다 보니 당시 뮤지컬 디바로 활약하던 옥주현도 <캠핑클럽> 촬영 중에 잘 나가던 이효리를 질투했다고 한다. 그나마 자리를 빨리 잡은 옥주현이 그 정도였으니 다른 멤버들이야 오죽했으랴. <캠핑클럽> 내내 의연한 막내 모습을 보였던 성유리는 캠핑 마지막날, 눈물을 쏟으며 고백했다.

"언니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 빼고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질투도 나고, 엄청 방황했다. 슬프기도 하고 나만 제일 못한다는 콤플렉스가 심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외면하고 일부러 핑클의 추억을 안 봤다."

가까운 누군가의 찬란한 성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건, 좋은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냥 축하해줄 수만은 없는 갈등과 고통이기도 하다. 내가 아무리 기를 써도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봤을 땐 더하다.

분명 같이 출발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쭉쭉 달려 나가고 나 혼자 뒤쳐져서 앞선 사람들을 보며, 그저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흔들림 없이 산다는 건, 나이를 먹어도 어려운 일이라 20, 30대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연예인으로서 느꼈던 박탈감과 불안, 그리고 재능 있는 사람을 보며 가졌던 부러움과 질투. 그런 감정들을 고백하는 성유리를 보며 함께 운 이유는 내 20대가 생각나서다.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 그게 정글에서의 첫 시작
 
 JTBC 예능 <캠핑클럽>의 한 장면

JTBC 예능 <캠핑클럽>의 한 장면ⓒ JTBC


내가 어릴 때 아이들의 꿈은 의사, 선생님 같은 직종이 인기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대학 입학 때문에 자연스럽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두고 생각을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분명했다. 방송작가였다.

우리 시대 때 방영한 <인간시대>라는 TV 다큐멘터리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그 프로그램에 매료돼서 저런 프로그램의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국문과는 가지 못했다. 문창과는 그때 없었고, 국문과를 지원하기엔 내 점수가 되지 않았던 탓이다. 그래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졸업반 때 방송국 지인을 통해서 방송작가 막내 자리를 소개받고 난 꿈에 그리던 방송작가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꿈을 꾸면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싶었다. 그게 정글에서의 첫 시작이라는 걸 몰랐다.

막내 작가는 원고 쓰는 일보다는 보통 잡일을 많이 한다. 언젠가는 메인 작가가 될 날을 꿈꾸며 열심히 바닥을 기고 있을 때, 급하게 다른 프로그램에서 막내 작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득 당시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던 한 친한 친구가 생각났다. 당연히 오케이였다. 대학 친구가 직장에서도 같이 일할 수 있으니 든든하고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그러나 상황은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센스도 있고, 머리 회전도 빠르고, 성격도 좋은 친구는 방송국에 잘 적응하더니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주변머리 없고 센스도 별로 없는 느린 나보다 피디들과도 훨씬 빨리 친해지고, 순발력도 좋아서 원고도 잘 써냈다. 결국 나중에 나는 잘리고 그녀는 메인 작가까지 올랐고 꽤 유명한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하며 괜찮은 커리어를 쌓았다. 그녀가 잘 나가는 동안 나는 꽤 오래 방황했고, 결국 다른 일들을 전전하다가 잡지사 쪽에 취직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사는 게 약이었던 시절 
 
 JTBC 예능 <캠핑클럽>의 한 장면

JTBC 예능 <캠핑클럽>의 한 장면ⓒ JTBC


인생의 아이러니를 그때 처음 경험했다. 그녀는 방송작가가 꿈도 아니었고, 나는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는데 말이다. 좋아한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나한테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뼈아픈 시기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하지도 못했고, 부럽다고 이야기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대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는데, 내가 방송국에서 나오면서 그 친구와는 그 전처럼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서로 생활이 달라져서이기도 했지만, 나도 어쩐지 연락이 쉽지 않았고, 그 친구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싸우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핑클의 해체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그 친구를 부러워하고 질투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땐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못나서 그런 걸 어떻게 하나 싶은 자책과 나만 뒤처지는 것에 대한 불안, 이러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주저앉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 등 모든 게 복합적이어서 그저 못 본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사는 게 약이었던 시절이다.
 
지난 방송에서 이효리는 연을 날리려 애를 썼다. 핑클의 재결합을 두고 비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성공을 기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마 핑클 자체와 더불어 그때 챙기지 못한 동생들의 비상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바람과 달리 연은 끝까지 날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제 40대에 들어선 핑클이 예전처럼 하늘 높이 비상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만들어낼 핑클의 재결합 무대가 기대된다. 그 무대가 그들 각자에게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특히 부족한 끼와 재능에도 불구하고 잘 견디고 있어서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성유리는 이효리가 될 수 없지만, 40, 50대까지 좋은 연기자로 오래오래 일했으면 좋겠다. 슈퍼스타가 아니면 어떤가.

계속되는 인생의 아이러니
 
인생의 아이러니는 계속된다. 어찌어찌 돌고 돌아 난 다시 방송작가를 하고 있다. 여전히 재능이 없음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대신 이제는 그런 나를 편안하게 인정한다. 반면 잘 나가던 친구는 남편의 직장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방송국 일을 그만두고 지방에 내려가 살고 있다.

인생은 길고 삶은 다양하게 변주된다. 삶의 여정 속에서 누군가 나를 훅~ 앞서갈 때, 여전히 흠칫 놀란다. 당연히 질투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가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김은숙 같은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오래 하는 것이 재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또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길은 언제나 열린다는 것도. 성유리의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는 이유다. 20대의 나에게 꼭 해주고 싶은 위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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