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벌새>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벌새> 포스터.

영화 <벌새> 포스터.ⓒ 엣나인필름


"야!" 언니는 오빠에게서 이렇게 불렸다.
 
부모님이 지어준 번듯한 이름이 있었건만 언니는 오빠에게서 언제나 "야!"로 불렸다. 이름을 모르는 것처럼. 혹은 부를 만한 이름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언니는 시시때때로 오빠에게서 두들겨 맞았다. 맞아서 부어오른 얼굴은 이튿날이면 푸르뎅뎅하다 이내 보라색으로 변하곤 했다. 멍든 얼굴을 가리기 위해 언니는 안대를 하거나 마스크를 껴야 했다.

15살, 위태로운 '은희'들
 
<벌새>에서 '은희'(박지후 분)는 오빠에게 수틀리면 얻어맞는다. 그날도 고작 방문을 닫지 않았다고 두드려 맞았다. 맞는 '은희'를 보며 어느새 주먹을 불끈 말아 쥐고 있는 내 손. 폭력을 맞설 수 없는 무력한 은희가 되자, 가슴에 불기둥 같은 것이 솟구쳐 정수리를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왜 맞는지 모르겠기에, 이유가 있다면 이해받을 폭력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때리는 이유가 그럴싸하기라도 하다면 맞아도 덜 아프기라도 한 것처럼, 폭력의 이유를 찾고 있을 '은희'가 되자, 저렇게 맞았을 언니가 되자, 분노로 몸이 달구어졌다.
 
은희는 오빠 '대훈'(손상연 분)의 말도 안 되는 폭력 앞에 "그저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 조그만 손을 꼭 쥐는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을 은희. 언니도 그랬겠지. 왜 때리는지 묻지도 못했겠지. 누구에게서 부여받았는지 모르지만 이미 승인된 폭력이었으니. 맞는 걸 보면서 막아서주지 않는 엄마를 언니는 은희처럼 애타게 불렀을까.
 
언니는 엄마에게 물었다. 그때 그렇게 맞을 때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변명의 자격이 성립되지 않는 엄마의 대답은 고작, "말린다고 나한테 달려들면 어떻하니"였다. 은희가 대훈에게 맞고 그 사실을 폭로하자, 은희 엄마의 반응 또한 고작, "니네, 싸우지 좀 마"다. 싸운 게 아닌데. 일방적으로 맞았는데. 폭력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이가 아무도 없는 '은희'들은 그렇게 가장 안전할 것 같은 집에서 오빠와 아버지에게서 맞으며 자랐다.
 
은희의 단짝 '지숙'(박서윤) 역시 오빠의 폭력 앞에 무기력하다. 학원에 마스크를 하고 나타난 지숙의 입가는 멍들어 있다. 주먹, 죽도, 골프채 등 "다양한" 폭력에 찌든 15살의 소녀들. 이들의 삶에 그나마 살아있다는 심장 쫄깃함을 주는 순간은 귀여운 도둑질의 시간. 하지만 볼펜을 훔치다 발각돼 위기에 처하자, 지숙은 은희를 상처 주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든다. 문구점 주인이 '딱 걸렸다'고 벼르는 으름장에 오빠의 폭력이 대비된 지숙은, "그 아저씨가 때릴 것 같아서" 친구를 낙망시킨다. 폭력은 사람의 마음을 왜곡시킨다.
 
괜찮다고 안심시키는 유일한 어른, '영지' 
 
 영화 <벌새> 스틸컷

영화 <벌새> 스틸컷ⓒ 엣나인필름


은희는 무수한 폭력 앞에 놓여있다. 은희가 학업에 심드렁하자, '저렇게 공부 못하면 우리 집 파출부가 될 거'라고 조롱하는 학교 아이들. 쪽지를 나눠주며 누가 담배를 피우는지, 누가 연애를 하는지, 급우들끼리 서로를 고자질하라고 부추기는 교사. 수틀리면 주먹을 휘두르는 오빠.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어 낙담하는 딸을 향해 '집안 망신이나 시키는 기집애'라고 욕설을 퍼붓는 아버지...
 
일상이 폭력으로 채워지는 은희 앞에 문득 나타난 사람, '영지'(김새벽).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 버거운 영지는 슬픔을 간직한 채 은희 앞에 나타난다. 상처는 상처를 준 사람에게서 치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던가. 뜻밖의 사람에게서,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전해지던 위로. 그래서 백가지 슬픈 일이 있어도 단 한 번의 기쁨으로 나머지 아흔아홉 가지의 슬픔을 견디고 살지 않던가.
 
제 앞가림도 순조로워 보이지 않던 영지에게서 은희는 발견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벌새'가 상처받고 쓰러져 있는 것을. 영지는 자신의 지나간 혹은 현재하는 벌새를 마주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그냥 무심히 벌새의 아픔을 지나쳤을 어느 시절의 자신이 생각나서였을까. 명지는 벌새를 가만가만 들어 올려 어디가 다쳤는지 들여다본다. 자신의 관찰이 치료의 시작임을 확신하지 못해도, 상처받은 생명을 세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영지는 위로를 아는 사람이다. 다툼으로 어색해진 은희와 지숙의 다친 마음을 도닥일 줄 아는 이다. 철거당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함부로 동정해선 안 된다고, 사려 깊지 않은 동정은 모욕의 다른 이름이라고 나직이 일러주는 이다. 폭력을 가하는 자가 누구든 절대 물러서지 말고 맞서라고 처음으로 알려준 이다. 자신에게도 빛나는 삶이 있을지 두려운 은희에게 그 삶을 날갯짓으로 채워보라고 여백 가득한 스케치북을 선물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누구에게 영지가 되어본 적이 있을까?
 
상처받고 울고 있는 은희에게 영지가 따뜻한 우롱차를 끓여주자 은희는, 차 이름이 웃긴다며 수줍게 웃는다. 가득한 폭력에 우롱당하는 사람들의 쓰라린 마음을 위로해 주는 차 이름이 '우롱'이라는 아이러니. 우롱당하면서도 그 뜨거운 '우롱'을 목울대로 넘기며 살아가는 은희들.
 
결코 녹록지 않은 은희의 15살을 살아가게 한 건, 폭력과 위선으로 가득한 삶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날갯짓 하게 한 건, 영지가 건넨 말처럼, "나쁜 일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때문일까.
 
15살도 욕망을 감추지 않아도 돼 
 
 영화 <벌새> 스틸컷

영화 <벌새> 스틸컷ⓒ 엣나인필름


15살 은희는 욕망에 눈뜨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실험 중이다. 흔히 무성적으로 그려지는 순진무구한 여학생은 잠시 잊으라. 수줍지만 당돌하게 은희는 자신의 욕망을 마주한다.

남자친구인 '지완'(정윤서)에게 키스해보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은희다. 또한 은희는 레즈비언적 설렘도 밀어내지 않는다. 은희는 후배 '유리'(설혜인)로부터 X 언니가 돼달라는 프러포즈를 받는다. 같은 학교에서 마주치는 은희의 모습을 쫓았을 유리의 점도 높은 눈길. 대담하게 고백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유리와 은희는 아슬아슬한 유희를 즐긴다. 마음을 담은 선물을 전하고 입맞춤으로 애정을 확인한다.
 
'아, 여기까지만'이기에 안도했던 관객은 나 하나였나? 은희와 유리의 서툰 레즈비언 서사는 결코 그 선을 넘지 않음으로써 안전한 통과의례를 보여준다. '나도 저런 감정 아는데' 했을 관객의 심정은 어떤 걸까. 선을 넘지 않았음에 안심했을까. 아니면 더 나아가기를 기대했을까.
 
자기를 계속 실망시키는 남자친구에게서 은희가 "너를 좋아한 적이 없"다고 결연히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자기를 바라봐 준 사람들에게서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영지처럼 내색하지 않고 기다리며 지켜봐 주던 그 따뜻한 눈길을 은희는 이제 마음에 담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 어떤 이에겐 사건이 아니라 고통으로 단절된 기억

어떤 이에게는 그저 큰 사건으로 기억되는 일이, 이런 일이 반복되는 나라에 사는 불행으로, 어떤 이에게는 고통 없이 떠올릴 수 없는 악몽이 되기도 한다. 결코 '사고'로 묻힐 수 없는, 사회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사건'들. 그러나 적실히 해석되지 못한 사건들은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들을 사건 안에 가두고 괴롭힌다. 마치 정밀 타격이라도 맞은 듯이 잘려져 나간 성수대교의 절단면처럼, 어떤 이에겐 한 사건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시공간이 된다.
 
다리가 무너지며 강으로 낙하하는 차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 무너진 백화점이 잔해에서 생과 사를 오간 사람들. 가라앉는 배 속에서 정말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스러진 사람들. 멀쩡히 판매된 독극물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하고 시름시름 앓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이 어이없는 죽음들을 목도한 수많은 사람들. 사람들은 '참사'라 호명되는 사건들을 이해하거나 해석할 수 있을까.
 
일상의 죽음이 전쟁의 그것보다 더 극적이고 빈번해져 이제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는 세상에서, 1994년 15살이었던 은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혹시 이제는 날갯짓을 접은 채 살고 있을까? < 82년생 김지영 >을 곁에 두고 비탄에 젖어 있을까.
 
그래도 이대로 끝이 아니기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인 은희의 벌새도, 언니의 벌새도, 나의 벌새도 모두 안녕하기를. 고단해도 날갯짓을 포기하지 말기를. 여전히 "세상은 신기하고 아름답다"는 영지의 말을 버리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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