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포스터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지금껏 많은 멜로, 로맨스 영화들이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 본 작품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멜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바로 <건축학개론>이었다. 비록 극장에서 만나지는 않았지만, 뒤늦게라도 보게 된 <건축학개론>은 영화의 음악과 배우들이 정말 좋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 풋풋한 사랑을 시작하는 떨림, 그 감성의 묘사였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그때처럼 티끌 하나 없이 맑고 순수한 감성이 느껴지는 영화를 만났다. 바로 <유열의 음악앨범>이다. 

사실 멜로나 로맨스 영화는 그 흐름이 비슷하다.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알게 되고, 가까워진다. 사랑에 빠져서 행복한 순간도 만나지만, 그 사랑이 흔들리는 위기도 찾아온다. 위기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갈등이 잘 봉합되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해피 엔딩이거나, 갈등은 해결하나 현실적으로 각자의 길을 가거나(<라라랜드>처럼)이거나 혹은 비극(<위대한 개츠비>라든가)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끝이 어떻게 되든 남녀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의 결과 둘의 변화가 얼마나 잘 전달되느냐가 멜로 영화의 핵심일 것이다. 사실 많은 멜로 영화가 이러한 정서의 변화를 드러내기 위해, 그리고 관객들의 감정적인 면을 건드리기 위해 자극적인 스토리나 과한 연출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유열의 음악앨범>은 그렇지 않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컷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컷ⓒ CGV 아트하우스

 
<유열의 음악앨범>은 서두르지 않는, 느린 호흡과 담담한 태도로 미수와 현우의 변화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의 느린 호흡이 답답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인물들의 쑥스러움과 조심스러운 태도를 강조해주며 의외의 긴장감을 조성하기까지 한다. 정해인과 김고은, 두 주연 배우의 연기와 잘 어우러지면서 인물들의 순수함이 한껏 살아나는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반복되는 우연과 우연을 빙자한 운명 둘 사이 애매한 경계, 그 어딘가를 넘나드는 사랑과 이별의 안타까움과 시작의 설렘이 자연스럽게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또 영화의 담담한 태도는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의 관계나 스토리의 전개가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감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힘을 발한다. 극 중 사랑을 처음으로 표현하는 극적인 순간에도 스크린에는 새벽 시간대의 서늘한 햇빛이 그대로 느껴지는 파란색 느낌의 조명. 결정적인 스토리의 곡변점에서 강렬한 음악이 나오는 대신에 인물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연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순간 두 인물의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차분히 담아내는 카메라까지. 물론 <유열의 음악앨범>에도 스토리 상 막장의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차분한 태도 덕분에 영화 전체의 감성을 해치지 않은 수준에서 잘 조화를 이룬다. 

더불어 라디오를 통해 영화의 시작과 끝을 만드는 연출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해 맑고 깨끗한 이 영화의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라디오와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 나는 연필 삽화로 시작한 영화가 천리마, 디카폰을 거쳐 보이는 라디오로 끝나는 전개. 아마 거의 모든 관객들이(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차치하고서) 인생의 어느 한순간은 떠올리지 않았을까. <건축학개론>을 볼 때처럼. 

하지만 맑은 감성이 촉촉하게 드러나고 과거의 향수가 눈과 귀를 간지럽히는 것과는 별개로, 영화 전체의 완성도에는 의문이 생긴다. 모든 영화에는 우연이라는 영화적 허용이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우주의 운명을 바꾼 쥐 한 마리처럼. 그리고 우리의 인생 또한 생각보다 우연의 연속일지도 모르고.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CGV아트하우스

 
그러나 서로 다른 스토리를 최소한의 개연성이 존재하도록 이어가야 하는 영화에서, 작품 중후반부까지 우연이 반복된다는 것은 극을 전개시킬 의지나 동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들이 계속해서 우연히 재회하는 부분이 특히 아쉬웠다. 그 우연조차도 사랑이라는 운명이라고 말한다면 이해 못 할 부분도 아니지만, 여전히 너무 쉬운 방식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우연이 알고 보니 현우 혹은 미수의 꾸준한 노력이 이룬 결과였다는 식의 짤막한 묘사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기도 하고.

또 영화가 에피소드마다, 장면마다 끊기는 듯한 느낌도 저버리기 힘들다. 단적인 예시로 현우의 개인사도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애매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짙다. 이로부터 비롯된 갈등이 해소되고 결말을 맞이하는 과정에서도 영화 초반부와는 달리 두 인물의 감정 묘사가 지나치게 짧고 단편적이었던 것 같은 느낌도 있고. 물론 긴 시간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제한된 러닝타임 내에 풀어내야 하니 필연적으로 발생한 문제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럼에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스케치에 비해 완성된 작품이 기대만 못한 아쉬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스쳐 지나가는 우연을 만나고, 우연이 인연이 되고, 그 인연이 사랑으로 자라나기까지 두 사람은 그들을 둘러싼 바깥세상에 너무나도 많이 흔들린다. 두 사람 각자의 내면 세상은 사랑까지의 긴 시간을 함께하기에는,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생각 이상으로 약할지도 모른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사랑의 어려움과 역경을 회피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레 포기하지도 않는다.  10여 년간 두 주인공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와 동행하며 사랑을 키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가졌던 그 순수한 떨림, 긴장감. 그 시작을 믿으라고. 기억하라고. 그리고 노력하라고. 엇갈리면 다시 쫓아가고, 엉망일 때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라고. 그게 사랑이라고. 그렇게 이 영화는 우리에게 힘이 된다.

마지막 순간 영화관을 가득 채우는 노래, 'Coldplay'의 <Fix you>가 감동적이었다면 분명 이 영화의 위로와 격려가 전해진 것이겠지.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컷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컷ⓒ CGV 아트하우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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