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우연히 접한 모닝구무스메부터 시작해 소녀시대 팬클럽 S♡NE 1기를 거쳐 아이돌에 대해 뜨듯미지근한 관심을 10여년 간 이어온 필자가 조금씩 아이돌에 관한 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팬덤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인사이트지만, 또 하나의 팬이 보내는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시면 좋겠습니다. - 기자 주

최근 Mnet '프로듀스 X 101' 득표수 조작 논란으로 인해 덩달에 이름이 오르내린 그룹이 있다. 바로 'fromis_9'(이하 프로미스나인). 2017년 같은 방송국의 프로그램 '아이돌학교'를 통해 데뷔한 그룹이다.

'아이돌학교'는 '프로듀스101' 시즌1의 성공에 힘입어 엠넷에서 준비한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프로듀서'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 참가자에게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육성회원'(방송 시청자)들이 9명의 멤버를 뽑아 새로운 걸그룹을 데뷔시키는 프로그램이다.
 
 Mnet '아이돌학교' 포스터

Mnet '아이돌학교' 포스터ⓒ CJ ENM

 
엠넷은 프로듀스 시리즈와의 차별점을 만들기 위해 아이돌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일본 아이돌의 성장방식을 답습했다. '학교'라는 이름 아래 교장(이순재)과 담임교사(김희철) 등을 기용했고 양평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했다.

또 열정과 노력만을 가진 아이돌이 팬들의 응원과 격려 속에서 함께 성장한다는 컨셉을 따라가기 위해 현재 소속사가 없고 데뷔한 적 없는 신인들만 출연할 수 있었으며 이들은 학생이란 이름 하에 전원 교복이나 일본식 부르마에 가까운 체육복을 입은 채 등장해(여지 없이 성상품화 논란 등이 잇따랐다) 여러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돌학교'는 '프로듀스' 시리즈에 비해 흥행과 인지도 모두 심각하게 무너졌다. 애초에 K-POP에게 밀려 현지에서도 낡은 것으로 평가받는 성장형, 육성형 아이돌을 만들겠다는 시도는 무리한 설정과 연출, '악마의 편집'으로 이어졌고 덕분에 프로젝트성 그룹이 아닌 정식 걸그룹으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음에도 '국프'님들과는 달리 '육성회원'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아이돌학교'는 최종화조차 1%가 안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이에게 잊혀진 프로그램이 됐다.

그러나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는 별개로 프로미스나인은 '아이돌학교'에서 말하는 의미의 성장을 넘어 아티스트의 하나로 성장해갔다. 정식 데뷔 후 채 2년이 걸리기 전에 멤버 중 박지원, 송하영이 작사작곡한 'Fly High'를 싱글 'Fun Factory'에 수록했고 아이돌로서의 파워를 보여주는 가온차트 앨범판매량 역시 초동 3만, 누적 5만 장을 돌파하며 2018년 이후 데뷔한 그룹들 중에선 '아이즈원'과 'ITZY' 다음 가는 성적을 기록했다.

대중성과 인지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오디션 프로그램 중 다소 흥행에 성공적이지 못했던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걸그룹이 어떻게 여기까지 일어날 수 있었을까?
 
 프로미스나인 싱글 1집 'FUN FACTORY' 공식 이미지

프로미스나인 싱글 1집 'FUN FACTORY' 공식 이미지ⓒ 오프더레코드 엔터테인먼트

 
우선 첫 번째 요인은 멤버들의 실력에 있다. 엠넷에서 '아이돌학교'를 통해 처음 노린 방식은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던 참가자가 점점 성장해가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따라하고 싶었던 일본의 그 방식은 사실 성장보다는 방치에 가까우며 길게는 몇 년 이상 바라보며 우리나라로 치면 연습생 정도의 위치에서 라이브 무대를 서게 하며 단련시키는 방식이다.

총 11회의 방송에서 만들어질 수 없었던 그림이었고 결국에는 데뷔 멤버 대부분이 이미 실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크고 작은 기획사의 연습생 출신이었다. '식스틴'에 출연하며 '트와이스' 멤버가 될 수도 있었던 JYP엔터 출신 박지원이나 '리틀 2NE1'으로 불렸던 YG엔터 출신 이서연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성장형 아이돌을 지향하지만, 역설적으로 K-POP 아이돌로서의 기반이 어느 정도 잡힌 채 출발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두 번째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오디션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멤버들의 개성이 뚜렷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특정 회사에서 새롭게 기획하는 아이돌그룹이라면 으레 요구되는 조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해외진출을 고려해서 외국어 능력자, 혹은 해당지역 출신 멤버를 선발하는 경우고 그외에도 프로듀서의 취향이나 방침이 분명히 반영되는 편이다. 또 일반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 특별히 모나거나 대중의 미움을 사지 않는 '대중픽'에 우선적으로 뽑혀야만 이후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프로미스나인 멤버 9명은 이런 일반적인 공식에서 벗어났다. 데뷔 센터를 차지한 노지선이 대표적으로, 대중들이 통상적으로 나이어린 걸그룹 센터 멤버에게 요구하는 스타일과는 상당히 다른 편이다. 이런 프로미스나인만의 개성은 '대중픽' 혹은 명확한 '컨셉돌'이 활약하는 요즘 걸그룹 상황에서 틈새시장을 창조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회사의 프로듀싱 방향이 유의미하게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미스나인의 방향성은 크게 소속사가 바뀌는 두 가지 시점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유리구두'와 'To heart', '두근두근(DKDK)'은 스톤뮤직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여자친구'에게서 보여지던 '파워청순'한 느낌에 일본식 성장형 아이돌의 모습을 덧댄 모습이었다. 특히 '두근두근'은 뮤직비디오에서 일본식 서브컬쳐의 느낌을 잘 녹여내며 K-POP이 바라보는 일본 아이돌 느낌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성과였다. 
 
 'LOVE BOMB' 활동 당시 프로미스나인.

'LOVE BOMB' 활동 당시 프로미스나인.ⓒ 서정준

 
그리고 오프더레코드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변경된 후에는 'LOVE BOMB'과 'FUN!' 모두 K-POP 아이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인 경쾌함과 발랄함, 튀는 모습을 담아냈다. 오프더레코드 엔터테인먼트는 후배그룹인 '아이즈원' 역시 데뷔 후 줄곧 타이틀곡의 음악적인 성향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며 그룹의 인지도를 높였는데, 프로미스나인 역시 유사한 방향으로 프로듀싱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수록곡인 'LOVE RUMPUMPUM'이 대표적인 예로 음악방송 활동곡이 되며 음반에 수록된 곡보다 템포를 올린 점이 그렇다. 이렇게 프로미스나인은 음악적인 완성도에서 허술한 면을 보이지 않으며 '노래가 가수의 본질'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활동한 게 효과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대중성을 높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체 제작 컨텐츠를 꾸준히 활용하는 점도 긍정적인 모양새다. 가벼운 방송 비하인드 정도를 넘어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할 법한 퀴즈, 미션, 여행 등을 담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온라인으로 공개하며 K-POP 아이돌의 성공공식인 '활발한 온라인 소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들이 제작, 출연한 컨텐츠는 데뷔 1년 반 만에 1천 개를 돌파했다.

물론 이들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아이돌학교' 조작 의혹 등 방송 관련된 논란은 이들이 데뷔 이후 걸어온 길과 관계 없이, 혹은 더 유명해질수록 계속해서 드리워질 그늘이고, 그룹 컨셉트가 에너지, 건강함을 우선시하며 섹시함, 시크함, 카리스마 등 멤버들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제대로 선보이지 못하고 있는 점도 그렇다(아마도 미성년자 멤버인 백지헌이 성인이 되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며칠 전 지민이 '꽃이 되고 싶지 않아'라며 시작한 AOA의 '퀸덤' 무대가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하지만 프로미스나인은 아직 철저하게 프로그램과 회사의 의도 속에서 만들어진 꽃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보다도 멋지게 피어난 꽃이다. 이들 역시 선배 걸그룹들처럼 오래오래 살아남아 자신들의 목소리를 더욱더 멋지게, 당당히 펼쳐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정답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프로미스나인과 플로버(프로미스나인 팬클럽)들이 함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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