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영화 <프라이멀 피어> 포스터

영화 <프라이멀 피어> 포스터 ⓒ Paramount Pictures

 
인간은 누구나 앙면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순수와 악의 양 극단을 오고가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천사의 가면을 쓰고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악마들 앞에서 우리는 경계심을 무장해제한 채 그들의 재물이 되어 버린다.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시선을 떨구는, 어리숙하고 여리여리한 외모 속에 숨겨진 잔혹한 살인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미국 시카고에 있는 로마 카톨릭 성당에서 대주교 러쉬맨이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성당에서 복사로 있던 19살 소년, 애런 스탬플러(에드워드 노튼)가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애런은 경찰을 피해 도망가지만 이내 경찰에 의해서 체포되고, 그의 도주 과정은 뉴스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이를 tv로 보던 변호사 마틴 베일(리차드 기어)은 이 사건이 가진 화제성을 예감하고, 애런에게 무료 변론을 제안한다. 범죄자를 대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그이지만 실력만큼은 시카고 최고이기에 검찰 측에서는 그에 대적할 수 있는 자넷(로라 리니)을 담당 검사로 내세운다. 

체포 당시 러쉬맨 대주교의 피로 범벅이던 애런의 상태, 현장 바닥에 찍힌 애런의 신발 자국 등등 증거들이 애런을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애런은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 있기는 했으나 제3의 인물이 있었다고, 자신은 살해당한 대주교를 보고 기절을 해버려 범인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고, 깨고 나서는 아무런 기억도 없다고. 애런의 주장에 의지해서 변론 준비를 할 만큼 마틴은 순진한 변호사가 아니기에 애런이 진짜 살인자인지 아닌지, 그것은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애런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건 그의 말이 아니라 사람은커녕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그의 외모와 태도 덕분일 것이다.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한 장면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한 장면 ⓒ Paramount Pictures

 
마틴은 애런에게 범죄 동기가 있지는 않았는지 조사하는 한 편, 그가 이전에도 기절을 하고, 이후 기억을 잃은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정신감정도 함께 진행한다. 범죄동기를 찾던 과정에서 마틴은 알렉스와 린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들이 러쉬맨 대주교의 성범죄 피해자임 또한 알게 된다. 대주교가 이들에게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하고 이 모습을 비디오로 찍은 것이다. 강력한 범죄동기가 드러났고, 이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화가 난 마틴은 이 사실을 숨긴, 더 나아가 러쉬맨 대주교를 훌륭한 분이고, 아버님과 같은 분이며 자신은 그 분을 사랑한다고까지 말했던 애런을 몰아세운다. 갑작스런 압박에 애런은 발작을 일으키고 이때 그의 또 다른 자아 로이가 등장한다. 소심한 애런과 달리 로이는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마틴을 공격하면서 애런이 아닌 자신이 대주교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발작에서 깨어난 애런은 로이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

애런은 다중인격 장애 판정을 받는다. 무죄 선고의 결정적 증거가 되어줄 수 있는 판정이지만 재판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변론 방향을 바꿔 정신이상자 주장을 할 수는 없기에 마틴은 애런을 증인석에 세우고 검찰 측에서 애런을 자극하도록, 그래서 로이가 튀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의 예상대로 자넷은 (범죄동기도 밝혀졌으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애런을 몰아세우기 시작하고, 이를 견디지 못한 애런은 발작을 일으킨다. 로이가 등장한 순간 법정은 충격에 휩싸이고, 마틴은 쾌재의 미소를 짓는다.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한 장면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한 장면 ⓒ Paramount Pictures

 
유죄가 분명해 보였던 애런의 1급 살인죄 판결을 피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 했던 마틴의 목표는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서 초과 달성했다. 애런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사회로 돌아갈 것이다. 기뻐하는 애런의 모습을 보며 마틴은 자신이 무고한 인생을 구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 순간은 잠시일 뿐, 곧 충격적인 진실이 그를 비웃으며 조롱한다. 

소심하고 말더듬는 순수한 소년 애런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발작이니 기억상실이니 이 모든 것은 그가 만들어낸 거짓 설정이 뿐이고, 사악한 로이가 원래의 인격이었다는 사실에 마틴은 물론이고 관객 또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한 장면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한 장면 ⓒ Paramount Pictures

 
<프라이멀 피어>는 전형적인 스릴러물로 관객들은 이야기에 쉽게 몰입된다. 부패한 종교와 권력의 유착관계, 그들의 위선을 자연스럽게 녹아내면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지만 구성과 개연성이 그리 촘촘한 영화는 아니다. 에드워드 노튼의 설득력 있는 연기가 아니었다면 소름끼치는 마지막 반전의 충격은 감소되고 이로서 영화는 싱거운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1996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너도나도 에드워드 노튼이 누군지 궁금해 했다. 도대체 이 배우는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이런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는 걸까?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그의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이 영화로 그는 각종 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수상까지 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다중인격자의 여러 모습을 본 적 없다하더라도 그의 연기를 보면서 '다중인격'이란 저런 거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물론, 실제 다중인격자들의 모습이 그의 연기와 다를 수 있지만 재밌는 것은 전혀 모르는 세계,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의 설득력이 배우의 연기에 의해 많이 의지한다는 점이다.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한 장면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한 장면 ⓒ Paramount Pictures

 
<프라이멀 피어>를 촬영하는 중에 오디션을 통해 우디 앨런 감독의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에 캐스팅 된 그는 바로 이어서 밀로스 포먼 감독의 <래리 플린트>에 출연하고 <아메리칸 히스토리 X>(1998)에서 다시 한 번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며 헐리우드의 기대주로 승승장구한다. 

그의 첫 영화 <프라이멀 피어>는 말 할 것도 없고,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1999)에서 수개월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다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낸 평범한 샐러리 맨 잭, 2008년 <인크레더블 헐크>에서의 헐크(흥분하면 헐크로 변하는 브루스 배너 등 그가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극단의 양면성을 부각하는 캐릭터들이 특히 눈에 띈다. 그의 평범하고도 연약해 보이는 외형과 섬세하고도 폭발적인 연기력이 만나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의 필모그래피는 조금 느슨해졌다. 물론 좋은 감독들과 좋은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으나 그 안에서 그의 존재감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가 각본을 쓰고, 연기, 연출, 제작까지 맡은 영화 <머더리스 브루클린>이 2019년 겨울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의 두 번째 연출작(첫 연출작은 2000년에 개봉한 <키핑 더 페이스>다.)이기도 한 이 영화에서 그는 투렛 증후군을 앓고 있는 탐정을 연기한다. 과연 이 영화가 그 동안의 아쉬움을 해소해 줄지 기대가 크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프라이멀 피어 에드워드 노튼 리차드 기어 법정 스릴러 영화 리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