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 60일, 지정생존자>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이준혁.

tvN < 60일, 지정생존자>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이준혁. ⓒ 에이스팩토리

 
배우 이준혁에게 인터뷰는 '무서운 일'이다. 마지막 공식 인터뷰가 2012년 종영한 KBS 2TV <적도의 남자>였을 정도. 영화 <신과 함께>로 '쌍 천만' 배우가 되고도, 한국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tvN <비밀의 숲>에 출연하고도 하지 않았던 인터뷰였다. 

이준혁에게 7년 만에 인터뷰를 결심하게 만든 작품은 최근 종영한 tvN < 60일, 지정생존자 >다. 국회의사당 테러로 대통령을 포함한 국가 수뇌부 대부분이 사망하면서, 정치 감각이라고는 없는 환경부장관 박무진(지진희 분)이 60일간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정돼 테러의 배후를 추적하고 가족과 국가를 지키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이준혁은 극 중 테러 배후세력에게 차기 대통령으로 낙점된, 국회의사당 테러의 유일한 생존자 오영석 역을 맡았다. 백령해전을 승리로 이끈 장교이지만, 국가를 향한 부하들의 헌신이 철저히 외면받는 것을 보고 국가를 향한 복수심을 키우며 국회에 입성하게 된 인물이다.

7년 만의 인터뷰, 이준혁이 하고 싶었던 말
 
 tvN < 60일, 지정생존자>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이준혁.

tvN < 60일, 지정생존자>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이준혁. ⓒ 에이스팩토리

 
극 전체를 아우르는 갈등의 '키맨'이자, 박무진과 반목하며 그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캐릭터. 하지만 계획이 틀어진 뒤 군 반란 세력과 쿠데타를 도모하려다 그를 믿고 따르던 부하에게 죽임당한 오영석의 결말은 다소 갑작스러웠다. 갑작스러운 결말에 못다 한 말이 남아 인터뷰를 결심한 건 아니냐고 묻자, 그는 크게 웃으며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냥 지금까지는 여러 상황이 조금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는 매회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드라마라 그런지 작품 끝나고 리뷰나 분석이 너무 재미있더라. 한 번 같이 이야기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남들보다 일이 빨리 끝나기도 했고. (웃음)" 

- 오영석이라는 캐릭터의 무게나 비중으로 볼 때 마지막이 너무 허무했던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솔직히 병실에라도 며칠 누워있을 줄 알았다. 
"하하하. 떠나는 사람은 빨리 깔끔하게 가줘야 한다. 정리할 이야기가 많은데 내 이야기까지 질질 끌 필요는 없으니까." 

- 오영석은 백령해전을 승리로 이끈 해군 장교 출신의 국회의원이라는 것 말고는 개인 서사가 극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에 있던 부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영석에게 가족이 있을까? 난 없다고 생각한다. (원작에 있던) 부인은커녕, 부모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사람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행복함을 느낀 시간이 아마 군대에 있던 시기였을 거다. 그래서 백령해전은 그에게 모든 것을 앗아간 시기였을 거고, 그 순간 그의 모든 것이 멈췄을 거다. 난 오영석이 이미 그때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해야 할 시기에, 만약 오영석이 만난 사람이 박무진이었다면 그는 달랐겠지. 하지만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건 테러 배후 세력이었을 거고, 그때 이미 그의 불행한 결말이 결정된 거라 생각한다." 

-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초점을 맞춘 건, 실존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로 만들자는 거였다. 붕 떠 있는 느낌. 연령대도 그래서 더 젊게 설정하신 것 같다. 만약 리얼리즘이 중요한 캐릭터였다면 내가 아닌 50대 배우가 했어야 맞을 테니까. 나이도, 배경도, 모든 게 다 미스터리한 인물. 그래서 감독님이 나를 캐스팅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경력에 비해 미디어 노출이 많지 않으니까." 

- 그보다는 오영석의 주요 캐릭터 설정 중 하나가 '꽃미남'이라서가 아닐까?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인 배우에게는 칭찬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 유독 외모에 대한 칭찬이 많았다. 
"캐릭터 설정에 외모에 대한 부분이 있다. 스토리 안에서도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사가 있고. 날렵한 느낌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시청자분들이 세뇌당하신 게 아닐까? 스토리 속에서 계속 '오영석 잘 생겼다'는 내용을 주입하니까. 하하하. 이번 작품에서 유독 외모에 대한 칭찬이 많다는 건 우리 헤어팀과 의상팀에게 감사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의 외모가 갑자기 달라졌을 리는 없으니까. 나 개인에 대한 칭찬이라기보다 우리 팀의 성과인 것 같다." 
 
 < 60일, 지정생존자 >

tvN < 60일, 지정생존자 > 스틸 사진. ⓒ tvN

 
- < 60일, 지정생존자>는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이다. '폭탄 테러'라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했지만 현실 정치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대사와 설정이 등장하는데, 오영석은 공감받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국가에 헌신하려다 그릇된 신념을 쫓는 오영석의 선택에 얼마나 공감했나. 
"현대 사회의 좋은 점 중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간접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 아니겠나. 드라마, TV. 소설, 영화... 여러 매체를 통해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오영석을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가 오영석과 같은 상황에 놓였더라도 그런 선택을 하진 않았을 거다. 내겐 오영석과 달리 많은 위로의 장치들이 있고, 친구들도 있으니까. 힘들면 혼자 힘들고 말아야지 오영석처럼 테러를 공모하고 그럼 안 되지 않나. 물론 오영석만큼 능력자도 아니지만. (웃음)" 

<비숲>과 <신과 함께>... 이준혁은 달라지지 않았다

- 2007년 데뷔해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배우 이준혁'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2017년이 어떤 기점이 된 느낌이다. <비밀의 숲>도, <신과 함께>도 모두 2017년이었으니까. 본인도 그 차이를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일 끝나고 집에 가고, 늘 하던 대로 비슷한 삶을 산다.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 일상이 불편해지거나 하지도 않았고. 작품을 마친 뒤 내가 느낀 만족감도 다른 작품들과 그 두 작품이 크게 다르지도 않다. 그래도 작품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고 나면 좋은 부분은 분명히 있다. 많은 사람이 함께 고생하는데, 성과가 없으면 다들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 모습을 보면 나까지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작품이 잘됐으면 싶고, 잘되고 나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tvN < 60일, 지정생존자>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이준혁.

tvN < 60일, 지정생존자>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이준혁. ⓒ 에이스팩토리

 
- 연기하지 않을 때는 주로 뭘 하며 시간을 보내나. 
"집에만 있다. 운동은 진짜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다. (지정생존자 촬영을 앞두고) 너무 열심히 해서 당분간은 하고 싶지 않다.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집에 누워있다. 예전엔 요리도 가끔씩 했는데 요즘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 사고가 정지된 기분을 즐긴다." 

- 그림을 잘 그려서 그림 그리기가 취미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그리긴 하지만 취미는 아니다. 취미를 꼽자면 영화 보는 거? 영화를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니까. 그게 제일 좋고 기분이 좋다. 다른 일은 취미로 시작해도 결국 일의 연장 같은 느낌이 드는데, 영화는 다르다. 장르에 상관없이 잘 만든 작품은 다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미드소마>를 굉장히 좋게 봤다. 이런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모든 피로가 다 잊힌다." 

- 원래 꿈은 배우가 아니라 감독이었다고 들었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나. 배우를 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하는 케이스도 적지 않은데.  
"내가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할 수 있는 일부터 잘하자는 주의인데, 지금 하는 배우 일만으로도 사실 버거워 다른 꿈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배우로서 하나하나 해나가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분들을 보면 타고난 에너지가 너무 부럽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나무늘보 같은 스타일이다."  

- 이야기를 나눠보니 나무늘보 보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본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걸 어려워한다는 느낌도 들고. 예능 출연이나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이유도 이런 성격 때문일까? 
"음... 그런 것보다 나 자신에 대해 내놓을 만한 게 없다. 만약 내가 예능에 출연한다면 다들 수신료 아깝다고 할 거다. 평상시 내가 내 모습을 아는데, 내가 나오는 예능이 어떻게 재미있을 수가 있겠나." 

- 가끔 브이앱을 통해서는 소통하지 않나. 
"그건 불특정 다수인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보고 싶어하는 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거니까. 물론 브이앱도 부담스럽지만, 나는 SNS도 안 하다 보니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창구가 없다. 편지를 받아도 답장을 할 수도 없고. 세상이 발전해서 브이앱이나 유튜브를 통해 소통할 수 있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데뷔 12년... 여전히 마주하기 어려운 것들 
 
 tvN < 60일, 지정생존자>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이준혁.

tvN < 60일, 지정생존자>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이준혁. ⓒ 에이스팩토리

 
- 본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맞닥뜨리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나 보다. 
"이 일을 하면서 제일 힘든 게 내 연기를 모니터하는 거다. 자기가 출연한 작품을 재밌게 보셨다는 분들 보면 너무 대단하다. 이런 표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싫다. 드라마는 그나마 낫지만, 영화는 정말 너무 힘들다. 그 큰 스크린에 가득 찬 내 얼굴을 마주하는 게 너무 힘들다. 그래도 일이니까 한다. 일이니까. 대중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반응을 봐야 나를 더 발전시킬 수 있으니까 살펴본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 그래도 이번 작품은 작품에 대한 평가도, 이준혁에 대한 평가도 모두 좋았다. 힘들지만 기뻤을 것도 같은데. 
"좋은 사람들과 연기한 기억이 너무 좋아 객관적인 판단은 어렵다. 다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많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는 걸 보면 썩 나쁘진 않았나보다 싶다." 

- <비밀의 숲>도 그렇고, < 60일, 지정생존자 >도 그렇고,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있나.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는 드라마고, 영화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때그때 흐름에 따라 작품을 택하지, '어떤 걸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일하진 않는다. 예를 들면, 지금 먹고 싶은 것, 지금 입고 싶은 것이 그때그때 달라지지 않나. 유행의 흐름일 수도 있고. 예전에는 정치 드라마가 흔하지 않았으니 그런 장르에 매력을 느꼈고, 지금은 무거운 이야기가 많으니 가벼운 로맨스나 멜로가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오늘 먹은 음식을 내일 또 먹고 싶진 않지 않나. 그런 느낌으로 작품을 택한다." 

-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엔 묵직한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었으니 다음 작품은 가벼운 로코가 될 가능성이 높겠다. 
"무거운 메인 메뉴를 먹었으니 가벼운 디저트가 먹고 싶은 느낌? 장르에 상관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10년 뒤 목표? "과학기술에 대체되지 않는 배우 되고 싶다" 
 
 tvN < 60일, 지정생존자>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이준혁.

tvN < 60일, 지정생존자>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이준혁. ⓒ 에이스팩토리

 
- 데뷔 때 꿈꾼 본인의 목표에, 지금 얼마나 도달해있다고 생각하나. 
"그때 기대치에 비하면 엄청나게 잘 됐지. 연기학원 다닐 땐 우리 중 누군가 TV에 나오면 그 사람은 바로 우리들의 신이었다. 그땐 TV에 나올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꿈을 이뤘으니 이미 데뷔 때 목표치는 이룬 셈이다." 

- 과거에는 TV나 영화에 출연하는 것, 연기로 밥벌이할 수 있는 것이 꿈이었다면 지금의 목표와 꿈은 다르지 않을까? 지금은 이준혁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 
"얼마 전에 <라이언 킹>을 봤다. 그래픽이 정말 놀랍더라. 문득 10년 뒤에도 배우라는 직업이 유지될 수 있을까 걱정되더라. 영화 <시몬>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CG로 만든 배우가 실제 배우를 대체한다는 건데,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 10년 뒤에는 지금보다 더 발달한 과학기술로 편안한 삶을 영위하실 바란다. 그 기술로 인해 대체되지 않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 이런 답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2019년으로 돌아와서, < 60일, 지정생존자>가 배우 이준혁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올바른 사람들이 모여, 올바른 에너지를 지치지 않고 쏟아 만든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에너지가 시청자분들께도 잘 전달돼 좋은 반응을 얻고, 그 반응을 통해 즐거움도 얻었다. 정말 쉽지 않은 경험이다. 너무 뜻깊은 시간이었다. 작품을 마치고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이준혁 오영석 지정생존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