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 격투기에서 파이터는 단순히 강해서만은 인기를 얻을 수 없다. 본질은 성적 좋은 파이터가 무조건 위에 서는 게 맞아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기량 자체는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큼 출중함에도 이른바 흥행성에서 아쉬움을 드러내며 실력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K-1 월드 그랑프리 제왕 '격투 로봇' 세미 슐트, 전 UFC 웰터급 챔피언 '선택받은 자(The Chosen One)' 타이론 우들리, 현 UFC 헤비급 챔피언 '스톤콜드' 스티페 미오치치 등이 대표적이다.

정상급에서 꾸준히 경쟁해온 기량, 성적만 놓고 보면 흥행의 최전선에서 단체를 이끌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인기나 상품성에서는 자신보다 랭킹이 낮거나 맞대결에서 이겼던 선수에게 밀렸다. 프로무대에서 인기는 곧 돈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아쉬움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다수의 파이터들은 시크한 차도남 이미지부터 장난꾸러기, 4차원 콘셉트 등 본인의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실제로 본인의 성격, 성향 등이 그대로 투영된 인물이 있는가하면 노력이라도 해서 관심을 받으려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이는 국내단체, 파이터들 역시 마찬가지다. 해당 선수의 전직이나 현재 직업을 강조하는가하면 다소 오글거리는 별명도 과감하게 쓰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코리안좀비' 정찬성처럼 기량과 화끈한 파이팅 스타일을 내세워 삽시간에 국제무대서 스타로 등극하는 케이스도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물다. 격투기 자체가 아직은 마니아 성향이 강한지라 싫든 좋든 뜨기 위해서는 홍보가 필요하다. 
 
 UFC 역사상 최고의 상품성을 자랑하는 선수중 한명인 코너 맥그리거는 명석한 머리와 뛰어난 연기력, 화끈한 파이팅 스타일 등을 두루 갖춘 전천후 캐릭터다.

UFC 역사상 최고의 상품성을 자랑하는 선수중 한명인 코너 맥그리거는 명석한 머리와 뛰어난 연기력, 화끈한 파이팅 스타일 등을 두루 갖춘 전천후 캐릭터다.ⓒ UFC 아시아 제공

 
악동자처, 어설픈 히어로보다 잘나가는 빌런 선택!
 
현재 세계종합격투기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는 UFC는 그야말로 악동 천하다. 어설픈 히어로보다 화끈한 빌런이 더 빠르게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지라 너도나도 악동을 자처하고 있다. 경기장 밖에서부터 각종 신경전을 벌이고 독설을 주고받으며 기대치를 끌어올린 후 매치업을 가진다.

혹은 자신이 관심 있는 선수를 도발하며 시합을 성사시키기도 한다. 실전과 각본의 차이만 있을 뿐 미국 프로레슬링 단체 WWE와 진행 방식이 닮아있다는 평가가 과언이 아니게 느껴질 정도다.

티토 오티즈와 차엘 소넨 등은 파이팅 스타일 자체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압박형 레슬러였다. 보통 이런 유형의 파이터는 인기를 끌기가 쉽지 않지만 오티즈와 소넨은 달랐다. 유려한 말솜씨에 경기장 안팎에서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앞세워 높은 인기를 누렸다. 잘나가는 스타 파이터를 자극해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내는 솜씨도 훌륭했다. 뛰어난 격투가이자 배우였다는 평가가 붙는 이유다.

최근 이러한 부분의 정점에 서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악명 높은(Notorious)' 코너 맥그리거(31·아일랜드)를 들 수 있다. UFC 역사상 최고의 상품성을 자랑하는 선수 중 한 명인 그는 명석한 머리와 뛰어난 연기력, 화끈한 파이팅 스타일 등을 두루 갖춘 전천후 캐릭터다.

SNS와 언론 등을 활용해 분위기를 한껏 띄워놓은 후 경기장에서 재미있는 승부까지 펼치는지라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아일랜드 팬들의 적극적 지지를 받고 있어 주최측에서도 거물급으로 대접받고 있다.

명성이 높아지는 것과 달리 일반인 폭행 등 불미스런 사건을 연달아 일으키며 주변을 실망시키고 있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관심도는 어지간한 타 인기파이터 그룹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네이트 디아즈는 성적을 뛰어넘는 독특한 캐릭터를 갖추고 있다.

네이트 디아즈는 성적을 뛰어넘는 독특한 캐릭터를 갖추고 있다.ⓒ UFC 홈페이지 캡쳐

 
돌아온 디아즈, UFC 대표 개성파 빌런
 
네이트 디아즈(34·미국) 역시 개성파 빌런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다. 통산 20승 11패로 썩 빼어난 성적도 아니며 최근 들어 입맛에 맞는 경기를 고집하는 것은 물론 공백 기간 또한 길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상품성이 줄기는커녕 더 높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2016년 맥그리거와의 2연전을 마지막으로 잠정 휴식기를 가졌던 그는 지난 18일 'UFC 241' 대회를 통해 복귀전을 가졌다. 상대는 '쇼타임(showtime)' 앤소니 페티스(32·미국), 퐁당퐁당 전적으로 인해 '전성기에서 내려온 것 아니냐'는 혹평이 있었으나 직전 경기서 '원더보이' 스티븐 톰슨(36·미국)을 KO로 잡아내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기세가 올라온 상대였다. 반면 디아즈는 오랜 공백기로 인해 컨디션을 장담하기 힘들었다.

물론 둘의 경기는 진작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매치업이 잡히는 순간부터 많은 팬과 관계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승부다. 빠르고 다채로운 하이, 미들, 로우킥에 송곳같은 펀치 거기에 각종 창의적인 콤비네이션 등 다양한 타격 옵션에 서브미션 결정력까지 갖춘 '전천후 폭격기'와 전진압박형 좀비의 대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차고 넘쳤다.

페티스가 화려한 테크닉으로 유명하다면 디아즈는 화끈한 파이팅 스타일과 악동캐릭터로 인기가 높다. 둘다 공격지향적인 선수들인지라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매치업이었다.

당초 예상대로 디아즈는 전진스탭을 밟았고, 페티스는 백스탭, 사이드스탭을 활용하며 외곽을 돌았다. 디아즈는 페티스를 케이지 구석에 가둔 채 클린치 싸움을 벌였으나 페티스는 이내 뿌리치고 빠져나가며 자신의 흐름을 만들어나갔다. 거리 싸움에서 힘겹다고 느낀 디아즈는 상대를 펜스에 묶어놓고 싸우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페티스는 디아즈가 들어오는 타이밍에서 카운터니킥을 노리는 등 적극적으로 맞대응했다. 상대가 디아즈라도 기세에서 밀리고 싶지 않은 투지가 느껴졌다. 오랜 공백 기간 탓이었을까. 디아즈는 스탠딩 싸움보다 그래플링 공방전을 노렸다. 1라운드 막판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탑, 백포지션을 오가며 페티스를 압박했다. 나름대로 맞춤형 전략을 들고 나온 듯 보였다.

2라운드에서도 양 선수는 치열하게 맞붙었다. 스피드에서 앞서는 페티스가 유효타 싸움에서 앞섰으나 디아즈는 언제나 그렇듯 흐느적거린 채 걸어 나오며 거리를 좁히는데 집중했다. 스탭으로 따라가기는 쉽지 않은지라 잡아놓고 때리는 패턴을 노렸다.

클린치 싸움을 벌이던 디아즈는 중반께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몸을 일으키는 페티스에게 빰클린치 후 니킥공격을 퍼부었다. 기습적으로 들어가는 팔꿈치 공격도 위협적이었다. 페티스 역시 펀치와 엘보우를 섞어주며 강하게 맞대응했다. 하지만 이는 디아즈에게 좋은 흐름이었다. 난타전은 디아즈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2라운드 진흙탕 싸움의 영향이었을까. 3라운드에 접어들자 페티스의 스탭은 눈에 띄게 무디어져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디아즈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디아즈는 페티스를 케이지에 밀어붙인 후 좀비복싱 가속 기어를 한껏 끌어올렸다. 넘어진 페티스에게 파운딩 연타를 쏟아 부었고, 그라운드에서 백 포지션을 잡은 채 서브미션까지 노렸다.

페티스도 만만치 않았다. 디아즈의 빈틈을 틈타 포지션을 역전시켰다. 하지만 디아즈는 하위에서 수비를 탄탄히 한 채 다시금 백포지션을 장악했다. 페티스는 남은 힘을 한껏 짜내 격렬하게 저항했고 치열한 그라운드 공방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종료공이 울렸다. 결국 승부는 그라운드 싸움서 우위를 점한 디아즈의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케이지 갱스터로 불리는 악동의 성공적 귀환이었다.
 
스스로의 가치를 올릴 줄 아는 영악한 악동
 
흥분했다 싶으면 케이지 밖에서는 물론 경기장에서도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는 등 다혈질적인 감추지 못하는 성향의 디아즈는 얼핏보면 무척 단순해 보인다. 허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디아즈는 무척 영악한 악동이다. 미국 현지 격투 팬들이 좋아하는 성향을 알고 거기에 맞게 자신의 캐릭터를 활용할 줄 아는 지능파 빌런이다.

사실 디아즈는 파이터로서 이룬 것에 비해 지나치게 고평가 받고 있는 부분도 있다. 통산 승률은 상위 클래스 선수로 보기에 많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며 이름값 좀 있는 상대와의 진검승부에서도 많은 고배를 마셨다.

파이터 생활 내내 전진 압박형 좀비복싱+주짓수 조합을 고집했는데 패턴 자체가 뻔한지라 전략수행 능력이 빼어난 선수들은 어렵지 않게 이를 깨부수었다. 맷집과 체력을 앞세운 디아즈의 압박은 무시무시하다. 어지간한 선수들은 알면서도 당하기 일쑤지만 디아즈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상대들을 맞아서는 통하지 않았다.

기동성과 화력을 겸비한 타격가들은 케이지를 넓게 쓰면서 치고 빠지다가 빈틈에 카운터를 치는 전략으로 디아즈를 상대했다. 그래플러같은 경우 레슬링이 약한 디아즈의 약점을 노려 테이크다운 이후 포지션 싸움으로 압박했다. 코리안파이터 김동현 역시 장기인 그라운드 플레이를 살려 디아즈를 잡아낸 바 있다.

진흙탕 타격전에 강한 디아즈는 스탠딩 싸움을 선호하는 유형과 맞붙어야 제대로된 그림이 나온다. 디아즈 본인은 물론 주최측에서도 이를 잘 알고 있는지라 최근 경기를 보면 그러한 특성을 살려 매치업이 만들어지는 모습이다.

까다롭고 개성 넘치는 악동 캐릭터 정도로 평가받던 디아즈는 2015년 마이클 존슨과의 경기를 바탕으로 파이터 운이 확 피기 시작한다. 디아즈는 UFC 최고 흥행카드 맥그리거를 겨냥했다. 당시 디아즈는 존슨을 이긴 직후 가진 장내 인터뷰에서 당황한 진행자가 급하게 마이크를 빼앗을 정도로 욕설을 섞어 강도 높게 맥그리거에게 독설을 쏟아냈다.

이후 맥그리거와 맞붙기로한 하파엘 도스 안요스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낙마하자 대타가 필요한 상황에서 트위터를 통해 "맥그리거는 (나와 싸우려면)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한다"는 등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로 일관했다.

당시 디아즈의 인지도를 봤을 때 어찌보면 황당하기까지 했는데 데이나 화이트 회장은 이러한 디아즈 특유의 끝도 없는 자신감을 높이 샀다. 흥행카드로서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결국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맥그리거와 맞붙게된 디아즈는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전 세계 격투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비록 2차전에서 아쉽게 판정패했으나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며 어느새 맥그리거와 라이벌 관계(?)까지 형성해버린다.

이후 자존감이 높아진 디아즈는 2016년 이후 잠정 휴업 시기를 가진 채 마치 자신이 맥그리거급 거물이라도 된양 마음에 드는 상대가 아니면 싸우지 않겠다는 행보를 이어간다. 그리고 얼마전 페티스를 잡아내며 오랜만의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그야말로 순탄하기 그지없는 최근 행보다.

현재 디아즈는 흥행카드로서 가치가 상당한지라 주최측에서도 그에 걸맞은 상대를 내세워 빅매치업을 고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거기에 맥그리거가 복귀전 희망 상대로 그를 거론함에 따라 다시 한번 돈벼락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 하나로 파이터 인생 말년이 빛나고 있는 디아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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