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도, SNS도 없었던 20여 년 전에도 젊은이들은 사랑을 했다. 우연한 만남은 그래서 더 애틋했고 이별은 더 아쉬웠으리라. 늦여름 관객을 찾아온 멜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1990년대를 살았던 두 청춘의 모습을 통해 그 시절 첫사랑을 다시 되짚는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우연히 빵집에서 만난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가 오랜 시간 엇갈리고 마주하길 반복하면서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나가는 과정을 그린 멜로 영화다. 극중에서 미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빵집을 가족같은 언니 은자(김숙희)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빵집의 아르바이트생이 된 현우는 점점 이들과 가까워지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빵집을 떠나게 된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CGV아트하우스

 
영화 <봄날은 간다>,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을 쓴 이숙연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그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유열의 음악앨범'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영화는 '유열의 음악앨범'이 첫 방송된 1994년 10월 1일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현우와 미수의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처럼 잔잔하게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1994년부터 2005년까지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에는 당시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소품이나 설정들이 즐비하다. 빵집에는 항상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두 주인공은 천리안 PC통신으로 메일을 주고 받는다. 또한 문자나 SNS도 없는 시절이라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연락할 방법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한 PC 메신저 프로그램이 등장하는데, 미수가 사용하는 과거의 인터넷 용어도 추억을 자극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당시 시대상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빵집이 문을 닫고 미수가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등 인물들이 놓인 상황과 대사들로 IMF의 여파 때문이겠거니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대신 영화는 이들의 로맨스에 집중한다.

정지우 감독은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으로 흔들리는 두 청춘의 내면을 밀도 있게 포착해낸다. 극 중에서 현우는 자꾸만 잊고 싶은 과거에 발목 잡히고 미수의 현실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이 있지만 여러 번 엇갈린다. 그 과정은 억지스럽지 않게 그려져 관객이 두 사람의 상황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CGV아트하우스

 
현우와 미수가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장면들의 배경을 채우는, 흘러간 유행가들은 영화의 감성을 증폭시킨다. 핑클의 '영원한 사랑', 토이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 유열 '처음 사랑' 등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노래들은 그때 그 시절 우리 각자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특히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콜드 플레이의 'Fix you'는 한국 영화 최초로 OST에 삽입돼 중요한 장면에서 관객을 더욱 뭉클하게 만든다.

두 사람이 가진 각자의 불안과 트라우마는 전개를 이어가는 중요한 설정이지만 영화 속에서 친절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대신 영화는 서사의 빈 자리를 김고은과 정해인 두 배우의 매력으로 채운다. 잔잔한 일상을 그대로 담은 멜로물이니만큼 두 주인공들은 극적이기보다는 진짜 우리 곁에 있을 법한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김고은은 힘겨운 시대를 사는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표현하며 사실감을 더했다. <밥 잘 사주는 누나> <봄밤> 등을 통해 인상적인 멜로 연기를 펼친 정해인 역시 방황하는 청춘을 현실적으로 표현해 눈길을 끈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CGV아트하우스

 
최근 몇년째 충무로의 멜로영화 기근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웰메이드 멜로물을 기다려 온 영화 팬들에게는 반가운 작품이 될 듯하다. 28일 개봉.

한 줄 평: 늦여름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 정지우표 멜로 영화
별점: ★★★★(4/5)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관련 정보

감독: 정지우
출연: 김고은, 정해인, 박해준, 김국희, 정유진
제작: 무비락 , 필름봉옥 , 정지우필름
배급: CGV 아트하우스
러닝타임: 122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19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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