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EBS 국제다큐영화제 2019 타이틀

EBS 국제다큐영화제 2019 타이틀ⓒ EIDF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미혼모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 분)와 6살 소녀 무니(브루클린 프린스 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무니는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는 동안 묵고 있는 모텔 주변의 폐허촌과 대형 마트 인근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야만 하고, 혼자된 시간도 그렇게 묵묵히 보내야만 한다. 오늘 이야기 할 다큐멘터리 속 아이들의 상황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가정과 사랑 속에서 자라지 못한다는 점이, 그 괴리를 스스로 채워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이었다. 평범할 수 없었다는 점이 말이다.

자클린 쥔트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가 있을 곳은>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여러 아이들의 말과 모습을 통해, 그 결과 남겨지게 되는 아이들이 어떤 마음과 생각을 키우며 자라게 되는지를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이혼으로 인해 부모가 갈라서고 가족이 해체되면서 한때는 하나라고 생각했던 울타리가 두 개의 세계가 되어 그 과도기에 멈춰버린 아이들에 대해 말이다. 어른들의 사정에 있어 결별이란 두 사람의 이별에 국한되는 것일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의 이혼은 자신이 속해 있던 삶이 반쪽이 되어버리는 것 이상의 충격이 된다고 이 다큐멘터리는 말한다.
 
 다큐멘터리 <우리가 있을 곳은> 스틸컷

다큐멘터리 <우리가 있을 곳은> 스틸컷ⓒ EIDF


02.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실제 아이들의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는 경우는 모두 제각각이다. 작품의 연출 기획 단계에서부터 의도적으로 다양한 경우를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를 통해 감독은 어른들의 시선이 아닌 철저히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 상황을 설명해 나간다. 서로의 외도를 의심하다 불화로 이어져 결별한 부모도 있고,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의 태도로 인해 어머니가 집을 도망쳐버린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여행을 가는 것처럼 아이들의 눈을 속이고 집을 나가 1년이 넘게 돌아오지 않는 부모도 있었으니 어떤 방식으로 부모가 헤어지게 되었는가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함일 뿐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우리가 있을 곳은>이 주목하는 지점은 부모 가운데 어느 쪽에 책임이 더 크게 전가되는지 혹은 결과적으로 누가 아이들의 곁을 떠나게 되는지 따위가 아니라 어쨌든 누군가는 아이들의 곁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부모의 별거 혹은 이혼이라는 상황 자체가 가져오는 2차적인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지에 대한 것보다는 그 상황에 노출되는 것은 정작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부모의 이혼과 이별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그 상황을 자신의 존재로 받아들이고 이유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다거나 걱정시키지 않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착한 아이가 되면 이 상황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에.

03.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주어진 상황 이후에 보이는 부모와 아이들의 태도가 완전히 반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의 붕괴가 일어난 다음에 아이들이 보이는 가장 두드러지는 태도는 양쪽의 부모에게 자신의 존재가 동일한 행복이 될 수 있도록 균형감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양쪽에 균일하게 주고자 하는 감정적 노력은 물론, 동일한 시간을 양쪽 부모 모두와 나누고 싶어하는 물리적 노력도 기울이고자 한다. 반면, 이혼이라는 결과는 야기한 부모는 그 이후에도 자녀들에게 폭력을 가하곤 하는데 가령,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앞만 바라보라'는 식의 주문이었다.

작품 속 아이들의 인터뷰 속에서 드러나는 균열이 일어난 뒤의 가정 폭력은 그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세뇌시키고 조종하고, 회유하려는 모습들이 부모로부터 끊임없이 지속되고, 때로는 자식의 특정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전 배우자의 탓을 하는 부모도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넌 누굴 닮아서 그래'라고 핀잔을 주는 식이다. 자신들이 서로 이야기를 섞지 않는다고 집에서 어느 한 쪽의 부모를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정도 있었으니,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상황적 스트레스뿐만이 아니라, 부모 자신들이 갖고 있던 부정적 감정까지 모두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어졌다.
 
 다큐멘터리 <우리가 있을 곳은> 스틸컷

다큐멘터리 <우리가 있을 곳은> 스틸컷ⓒ EIDF


04.

가정 외에서 겪게 되는 이혼 가정 아이들의 어려움도 이 작품에서는 비교적 명확히 그려진다. 별거 가정에서 자란다는 이유 하나로 동네 또래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는 한 아이는 그때마다 분노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는 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고 밝힌다. 무력감이다. 이 감정은 그의 삶 전반에 학습되고 스며들어 삶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는 그의 경우만이 아니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10대 소녀는 다소 격앙된 모습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길에서 어떤 가족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어요. 가족이 다 같이요. 전 속으로 생각했죠. '우리 가족한텐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부모님한테 화나는 게 있다면 우리 가족이 평범하지 않다는 거겠죠. 평범. 그게 대체 뭐죠? 평범! 그걸 어떻게 측정하죠? 저울이라도 있나요? 그렇다면 보여주세요. 제가 부숴버리게요. 저한테 평범함은 세 군데에서 산다는 거예요. 다른 애들한테 평범함이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거죠. '평범함'은 사람마다 다른 거에요.

이 역시 앞서 동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던 아이가 느낀 무력함과 비슷한 감정이다. 어쩐지 '평범함'이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고 강변하는 모습 자체가 그 '평범함'이 다른 것이기에 인정할 수 있다는 쪽보다는 그 '평범함'을 나 역시 갖고 싶었다 쪽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05.

다큐멘터리 <우리가 있을 곳은>은 구조적으로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다양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짜임새를 이루고 있지만 러닝타임에 따라 점차 성인에 가까워지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는 순으로 인터뷰를 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독은 이를 통해 아이가 어떤 시기에 놓여있는가에 따라 감정의 변화를 보고 싶어했던 것 같고 그 의도는 정확히 표현된다. 비교적 어린 아이들은 죄책감을 크게 느끼는 반면, 성장할수록 체념 혹은 무력함에 가까워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등장하는 아이들의 순서를 명확히 구분 짓거나 인터뷰에 앞서 특정 인물의 신상을 굳이 명시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이 작품의 특징이다. 특히, 내용이 전환되는 기점마다 등장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모두 섞어 콜라주 형식으로 섞어내는 영상이 인상적인데. 이를 통해 감독은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부모의 이혼'이 아닌 다른 변수들을 최대한 제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타고난 것이나 환경과 같은 변수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관객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유도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이 작품 속 아이들이 다른 무엇보다 '부모의 이혼'이라는 변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설정을 최대한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된다.
 
 다큐멘터리 <우리가 있을 곳은> 스틸컷

다큐멘터리 <우리가 있을 곳은> 스틸컷ⓒ EIDF


06.

이런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의 경향이 수치 자료를 통해 사실이나 인과 관계를 파헤치려고 든다는 점이 평소에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런 방향의 분석이 가지는 의미보다는 실제로 해당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의 살아있는 말과 행동, 생각이 조금 더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클린 쥔트 감독이 이 작품을 표현하고자 했던 방식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아이들의 현실 가까이에 다가가 그들이 실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 또 그 속에서 어떤 상황들을 이겨내며 나아가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하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가해졌던 다양한 폭력들로 인해 아이들이 연약하고 무기력하기만 한 존재로 성장했을 것만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에 의미를 더한다. 물론 위태롭고 안타까운 순간들도 있지만, 용감하고 똑똑하게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부터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절로 주어지지 못한 안정과 평화를 부모를 대신해 직접 만들어 가는 그들의 모습을 응원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EBS의 온라인 VOD 서비스 플랫폼 'D-Box'에서 오는 29일까지 무료로 시청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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