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동료선후배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동료선후배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이정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2012년 MBC 파업을 주도했던 이용마 MBC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 앞에서 시민사회장으로 열렸다. 

이날 영결식에는 이용마 기자의 오랜 동료들과 시민들, 언론 및 시민사회 관계자 500여 명이 참석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동료를 떠나보낸 이들은 건강했던 시절 또렷한 목소리로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라며 리포팅하는 그의 영상을 보며, 아직 아빠를 떠나보내기엔 너무 어린 두 아이를 보며 울음을 터트렸다.

추모 영상 속에서 이용마 기자는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라고 봤고, 길게 갈 싸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갖춘 상태다", "민주주의가 파괴된 독재의 시절을 겪었다. 공영방송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추운 겨울 촛불을 든 시민들의 마음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영방송 정상화, 언론 독립을 위해 싸운 그의 지난 기록들이다. 
 
이용마 기자가 존경하던 선배였다는 김중배 전 MBC 사장은 "남들은 100세를 산다는 시대에, 반백 세에 떠나버린 그대 앞에, 나 같은 시대의 공범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섰다"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던 그대의 소망은 그대의 것만이 아니다. 독립언론, 독립방송이라는 그의 꿈은 살아나야 할 불씨로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용마의 영혼을 가슴에 심어 그 씨앗을 살려내 그의 꿈을 가꾸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겠다는 것이 우리의 다짐이다. 그 길이 그대의 진정한 안식을 이루는 길임을 안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승호 "기자 이용마의 화두는 정의로운 세상이었다"
 
고 이용마 기자, 그대 잘가라!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동료선후배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동료선후배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이정민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김민식 PD가 추모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김민식 PD가 추모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정민

  
추모객 고 이묭마 MBC기자 시민사회장 영결식에 온 추모객들이다.

▲ 추모객고 이묭마 MBC기자 시민사회장 영결식에 온 추모객들이다.ⓒ 이기범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동료선후배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동료선후배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이정민

 
이용마 기자와 함께 해직됐던 최승호 MBC 사장은 "기자로서 이용마씨의 화두는 정의로운 세상이었다. 그를 위해 외압 권력과의 유착이 없어져야 했다. 그래서 이용마 기자의 또 다른 화두는 언론개혁일 수밖에 없었다"면서 "파업 당시 노조가 내걸었던 구호, '다시 국민의 품으로'는 이용마 국장의 작품이었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 언론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말고 국민의 눈치만 보아야 한다'던 그의 외침은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으로 뭉쳐 시민들과 함께 싸웠다"고 과거를 추억했다. 그는 이용마 기자에게 "이젠 근심 걱정 내려놓고 부디 편히 쉬시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그의 유지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용마 기자의 동료였던 김효엽 기자는 "용마 형은 사회부 막내 기자 시절부터 '힘 있는 사람들은 감출 것이 많으니 언론을 무서워하지만, 시민들은 언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은 힘 있는 자를 무서워하고, 힘없는 시민은 가르치려 든다. 기자는 시민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아닌, 시민들을 대신해 당당하게 질문하고 답을 받아내는 사람'이라고 말했었다"고 전했다. 

김 기자는 이어 "많은 사람이 세상은 바꿀 수 없다며 스스로를 바꿀 때에도, 용마 형은 끊임없이 싸우다 고꾸라지면서도 다시 일어섰다"면서 "용마 형은 하늘에 가서도 부당한 일이 벌어지진 않는지 살뜰히 챙기고 답을 찾을 사람이다. 슬퍼하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건 이용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도 통 크게 웃으며 그의 꿈을 나눠 갖자. 이제 아프지 말고, 편안한 곳에서 우리를 지켜봐 주시길 빌고 또 빌겠다"고 인사했다.  
 
이용마 기자의 아내인 김수영씨는 "결혼한 뒤 나는 이용마 기자의 열렬한, 최고의 팬이 됐다"면서 "암을 발견한 뒤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열심히 공부했고, 내게도 잘 가르쳐주었다. 잘 배웠고, 잘 준비했지만 마지막은 쉽지 않았다. 착하게, 자다 편안히 가셨다"고 전했다.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이 열리고 있다.

▲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이 열리고 있다.ⓒ 이정민

 
최승호 사장, 고 이용마 기자 유족 위로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최승호 사장 등이 조문객들이 유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최승호 사장 등이 조문객들이 유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이정민

 
이용마 기자는 지난 1969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및 동대학원을 거쳐 1996년 MBC 기자로 입사했다. 입사 후 MBC 보도국 사회부, 문화부, 외교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으며, 2011년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의 홍보국장을 맡아 2012년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에 맞선 170일 파업을 이끌었다. 

파업 패배 후 '사내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부당해고 됐으며, 해직 기간 중 발견된 '복막 중피종'으로 투병하다 지난 21일 오전 6시 44분, 가족들의 곁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50세. 유족으로는 아내 김수영씨와 쌍둥이 아들 현재와 경재가 있다. 장지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메모리얼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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