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이용마 기자를 만나기 위해 전북 진안을 찾았다. 해직 이후 복막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위해 만덕산 인근 요양원에 머물고 있던 때였다. 그는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과 복잡한 세상사와 멀찍이 떨어져, 두 아들 현재와 경재에게 유언처럼 남길 책을 쓰고 있었다(관련 기사 : 망가진 MBC, 미래가 있을까? 투병중인 해직기자 이용마에게 묻다 http://omn.kr/nhus). 

나는 굳이 그 먼 곳까지 찾아가, 명상과 산책, 글쓰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그를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촛불로 대통령이 바뀐 직후였고, MBC 막내기자들의 반성문과 징계, 선배들의 연대 경위서가 쏟아지면서 MBC에 다시 투쟁의 기운이 몰아치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언론 자유와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해 잘 이야기해줄 사람은 없었다.

진안에서 만난 그는, 생각보다 더 야위어 있었고, 생각보다 더 힘든 상태였지만, '언론 정상화'에 대한 질문에 답할 때만큼은 눈빛을 빛내며 힘주어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금와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그날의 모습은, 아버지 이용마의 모습이다. 가족과 떨어져 요양원에 머물던 그는, 얼마 전 다녀간 아이들의 이야기를 했다. 함께 밥을 먹다 문득, 큰아들에게 '아빠가 없으면 네가 엄마도 보살피고 동생도 잘 보살펴야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큰아들이 울음을 터트렸다는 거였다. 아빠의 죽음이 걱정되고 무서워 우는 줄 알고 괜한 얘기를 했다는 생각에 미안해하던 그를 향해, 아들은 '나는 아직 어린데 왜 나한테 그런 거 시키느냐. 나 그런 거 못 한다'며 울었단다. 이용마 기자는 "아빠가 죽는 것보다 아빠 역할 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컸던 거다"하며 하하하 웃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무 슬픈 이야기라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 같은데, 정작 당사자인 그가 너무 밝게, 너무 귀엽지 않느냐며 이야기하고 있어 눈물을 흘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참느라 입안으로 볼을 깨물고 눈에 힘을 주어야 했다. 그토록 어린 두 아이를 두고 떠날 준비를 하며 책을 쓰던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언론노조 MBC본부의 홍보국장 이용마
 
 지난해 MBC 파업 당시 이용마 기자

지난해 MBC 파업 당시 이용마 기자ⓒ MBC 노동조합

 
이용마 기자는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의 폐해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기자였다. 모두가 꺼리던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를 끈질기게 취재해 보도했고,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감사과정을 취재하는 등 다수의 특종 기사를 썼다.

그는 성역 없는 취재를 통해 정의로운 세상을 꿈꿨고, 그를 위해서는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잠식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업과 사측의 징계가 예고된 2011년 언론노조 MBC본부의 집행부가 되는 일은, 어쩌면 그의 숙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용마 기자는 그렇게 언론노조 MBC본부의 홍보국장이 됐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에 맞서 맹렬하게 싸웠고, 가장 치열하게 '언론자유'와 '공정방송 사수'를 외쳤다. 하지만 그와, 그의 동지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함께한 170일의 파업은 끝내 패배했다. 그리고 그는 MBC에서 해고됐다. '사내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였다. 가장 기자다운 기자였고 자타공인 훌륭한 언론인이었던 그가, '해직기자 이용마'가 된 것이다.

그는 해고 뒤에도 인터넷 방송과 연구, 강의, 저술 활동 등을 이어가며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언론 정상화를 위한 집회마다 참석해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호소했고, 2016년 복막암 판정을 받는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들에게 '공영방송을 지켜야 한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소망하는 시민들과 MBC 조합원들의 구심점이었다.  
  
"해고된 그 날부터 단 한 번도 오늘이 올 거라고 의심한 적이 없어요. 왜냐면 우리는 정당한 싸움을 했고, 정의를 위한 싸움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2017년 12월 11일, 해고 5년 9개월 만에 복직돼 MBC에 다시 출근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긴 싸움 끝에 '해직기자 이용마'는 드디어 다시 'MBC 이용마 기자'가 됐다. 친구 김민식 PD가 미는 휠체어에 의지해 복직 세레모니에 참석한 그는, 자신을 걱정하는 후배들을 향해 "여러 선후배들을 보니 힘이 난다, 반드시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날은 그의 복직 후 첫 출근일이자, 마지막 출근일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라는 목소리도, 특유의 날카롭고 정의로운 시선으로 취재한 그의 뉴스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5년 만에 첫 출근하는 MBC 복직자  지난 2012년 MBC 파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복직한 이용마 기자와 최승호 신임 사장, 강지웅 PD, 박성제 기자, 박성호 기자, 정영하 기술 감독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구성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첫 출근하고 있다.

▲ 5년 만에 첫 출근하는 MBC 복직자 지난 2012년 MBC 파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복직한 이용마 기자와 최승호 신임 사장, 강지웅 PD, 박성제 기자, 박성호 기자, 정영하 기술 감독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구성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첫 출근하고 있다.ⓒ 유성호

 
"돌이켜보면 권력에 대한 날 세운 비판은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약자를 위한 대변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기자들 사이에서는 흔히 '센 놈을 조져야 센 기자'라고 해요. 스스로 '센 기자'가 되기 위해서 더 강한 권력을 비판하려는 경향이 있죠. 저도 권력을 쫓아다니는 행태를 자주 보였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많이 잊혔죠. 굉장한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2017년 여름, 진안에서 만난 이 기자의 말이다. 모두가 '참 언론인'이었다고 칭찬하는 자신의 기자 생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복직해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된다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떠났고, 그의 바람은 남은 자들의 몫이 됐다.

"우리 싸움의 의미요? 저는 기록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적어도 이런 암흑의 시기에 침묵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봐요. 물론 십 여 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싸웠던 많은 사람들의 청춘, 인생, 그거 다 날아갔어요. 뭐 그거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봐요. 저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적어도 그 기간에 우리가 침묵하지 않았다…"
 
최승호 MBC 사장이 <한겨레>에 기고한 추모글을 통해 전한 이용마 기자의 말이다. 영화 <공범자들>을 만들 당시, 최 사장이 "우리 싸움의 의미가 뭐였나"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비극을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암흑의 시기에 침묵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싸움이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용마는 늘 이렇게 의연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아픈 자신보다 아픈 자신을 보고 걱정할 주변 사람들을 더 생각했다. 인터뷰 때도 "기사가 나가면 사람들이 걱정할 것 같다"며 아파보이지 않는 사진으로 골라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본인이 당한 해고에는 의연했지만, 노조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해 징계 받은 평노조원들의 징계에는 가슴 아파했다.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    
 
고 이용마 기자, 영원한 참 언론인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동료선후배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열린 <참 언론인 고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동료선후배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이정민

 
그는 좋은 기자였고, 좋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과의 황망한 이별을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 향년 50세. 이대로 삶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다. 아직 초등학생인 그의 두 아들도 아빠를 잃기엔 너무 어리다. 언론 자유 투쟁의 맨 앞줄에 서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비극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주저앉아 울고만 있기엔, 그가 남긴 숙제가 많다. 이용마 기자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남긴 책 제목처럼, 세상은 바꿀 수 있으니까.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은, 그의 뜻과 바람을 이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의 두 아이들이, 그가 꿈꾸던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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