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포스터.ⓒ 넷플릭스

 
1989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트리샤 메일리는 조깅을 하던 중 무차별 폭행 및 강간을 당한다. 사건 발생 4시간 후 매우 처참한 상태로 발견된 그녀는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녀는 치료 끝에 12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에 매우 큰 불편을 겪으며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사건 당시 상황, 특히 범인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경찰은 사건 당시 센트럴파크를 배회하던 10대 흑인과 히스패닉계 5명을 무작위로 선별해 범인으로 몰아 체포한다.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경찰에 의해 무차별 폭언과 협박과 폭행을 당한 10대 아이들은 그저 집에 가고 싶어서 마지못해 범행을 자백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10대 아이들의 범행도 자백한다. 소년들은 곧 재판에 넘겨졌다. 그들이 범인이라는 입증 자료는 강요에 의한 자백뿐, 피해자에게서 채취한 정액이 5명 아이들 중 누구의 DNA와도 일치하지 않는 등 결정적 증거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포된 이들은 각각 8~12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한다. 

억울한 누명을 쓴 것도 모자라 그들에겐 '센트럴파크 파이브'라는 별칭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흑인과 히스패닉계 10대 5명이 20대 백인 여성 1명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강간한 사건인 만큼, '악질 중에서도 악질'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체포된 그들 모두 사건 전후로 180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특히, 막 16살이 되어 소년원 아닌 교도소에 들어가 가장 오래 복역한 코리 와이즈는 다른 4명 아이들과 차원이 다른 복역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2년 사건의 진범이 자백을 했고, 누명을 쓰고 복역한 '피해자'들은 뉴욕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뉴욕시는 그들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센트럴파크 파이브' 사건, 드라마로 제작되다 

1989년 센트럴파크 강간·살인미수 사건(또는 '센트럴파크 파이브' 사건)의 실화를 다큐멘터리 아닌 드라마 형식으로 가져와 인종차별을 정면으로 다룬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가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됐다. 출시 한 달 동안 2300만 명이 시청하는 등 대중의 큰 호응을 받았고, 미국 방송계 최대 시상식인 에미상 1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2019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중 가장 큰 평단의 호평을 이끌었다.

아마도 올해가 사건 3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그에 맞춰 제작해 내보였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미들 오브 노웨어> <셀마> <미국 수정헌법 13조> 등으로 유명한 에바 듀버네이 감독의 신작이라는 측면에서는 '낼 만한 때 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녀는 거의 매년 쉬지 않고 영화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걸로도 유명하지 않은가. 그것도 대부분 올바르면서 좋은 작품들을 말이다.  

주지했듯 인종차별을 정면으로 다루어 충분히 도발적이고 문제적인 작품이기에 쉽게 접하기 힘들 것이라는 편견이 작용할 만한데, 이 드라마에는 그것을 상쇄시키는 가열찬 '드라마'가 담겨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너무나도 유명한 이 실화를, 이미 지난 2012년에 뉴욕 출신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제작자 켄 번스에 의해 <센트럴 파크 파이브>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가 존재함에도 굳이 드라마로 만들어 내놓을 이유가 있었을까.

인종차별과 증오

드라마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를 보며 즐거움에 기초한 극적 재미와 희망을 담은 극적 감동을 얻긴 힘들 것이다. 대신 답답하고 억울하고 치가 떨리고 결국엔 분노에 가득 찬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그들'이 아닌 '우리'에 전적으로 이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가장 파렴치한 행위 중 하나가 아닌가.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는 그 자체로도 더할 나위 없는 극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더 넣거나 빼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가해자로 지목된 피해자들과 그들의 가족들, 정의를 구현한다는 기치로 거짓을 만들어낸 가해자들에 방점을 찍어 드라마의 주요 요소 중 캐릭터에 키포인트를 두는 한편 노선을 분명히 하였다. 반면, 사건의 당면한 가해자와 피해자는 조연에 불과했다. 

드라마는 말한다. 이 사건의 궁극적 가해자는 뉴욕시와 뉴욕시 경찰, 나아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고 말이다. 또한 당시 5명 아이들을 범인으로 몰아간 여론에 큰 힘을 보탠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다. 당시에 그는 앞장 서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상대로 차별-증오를 선동하며 큰 돈을 써서 사형제를 지지하는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30년 전과 지금을 이어주는 단편적이고 직설적인 장면이다. 인종차별 등의 문제에 있어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근본적으로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1980년대말 미국 시대상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드라마는 1980년대 말 미국 시대상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사건이 일어나던 1989년 4월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막 물러나고 이어 같은 공화당 출신이자 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100일 정도 되던 때였다. 드라마에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지는 않지만, 보수 정당 출신으로서 '사회 정의'를 공고히 하려는 신임 대통령의 강력한 비전이 뉴욕시의 경찰과 검찰에까지 내려온 게 아니냐고 짐작할 만한 부분이다. 

비단 그런 비전을 공유했던 건 대통령 이하 미국 정부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여전히 차별과 증오와 선동을 행하고 또 거기에 휘둘리기 쉬웠던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강자인 '그들'이 약자인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했고,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드라마의 내용을 보자면 제목의 '그들'은 뉴욕시 경찰과 검찰이고, '우리'가 뜻하는 건 5명의 아이들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구도의 전부일까. 그보다 근본적이고 근원적이며 광범위한 구도가 참으로 오래전부터 오랜 후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건 이후 줄거리는 5명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천착하며 '흑인'과 '히스패닉계'로서 차별과 누명을 겪은 인생을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사실 우리가 공감하는 건 인종차별을 담은 외적 요소보다 드라마적인 내적 요소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에서는 죄 없는 이가 어떤 식으로 재판을 받고, 파렴치한 죄를 저질렀다고 공표되었는지를 세밀하게 다룬다. 그리고 감옥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수감 후 세상에 나와서도 보편적인 궤적을 따를 수 없었다는 것도 보여준다. 힘들고 고생스러운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끝내 이런 생각이 뒤따른다. 그들에겐 잘못이 없다. 그들은 죄가 없다. 그들은 살아갈 권리가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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