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방송된 KBS <시사기획 창>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 밀정 2부 임시정부를 파괴하라'편의 한 장면

20일 방송된 KBS <시사기획 창>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 밀정 2부 임시정부를 파괴하라'편의 한 장면ⓒ KBS

 
<백범일지>에 따르면 이봉창(1901~1932년) 의사가 독립운동을 해보겠다며 백범 김구를 찾아간 1931년 1월 당시, 이봉창은 어느 누구의 눈에도 독립운동과는 무관해 보였다.
 
그때까지 그가 낮에 하는 일은 점원·외판원·철공소 직원 등으로 수시로 바뀌었지만, 밤에 하는 활동은 일관성을 유지했다. 그는 밤에는 반드시 술집에 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처음 만난 김구(당시 55세)와 술잔을 기울일 때도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육신으로 인생 쾌락을 대강 맛보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25세나 많은 어른 앞에서 거침없이 그런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그는 그 분야의 '달인'이었다.
 
이봉창은 멋있는 남자였다. 올백 머리에 검은 코트를 입고 다닐 때가 많았다. 일본어도 원어민처럼 구사했다. 임시정부 청사에 들어갈 때도, 빈손으로 가지 않고 술과 안주를 사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나막신을 끌고 임시정부 문을 열 때도 있었다. 멋있지만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돈이 없었던 김구, 돈을 벌었던 이봉창

이봉창이 김구를 찾아간 시점으로부터, 김구가 그에게 히로히토 일왕(천황) 저격을 지시한 때까지 대략 1년 정도 소요됐다. 김구는 돈이 없었고 이봉창은 돈을 벌었으므로, 그 1년간 두 사람이 만나면 이봉창 주머니에서 술값이 지출될 수밖에 없었다.
 
김구가 술값도 없이 이봉창을 1년 정도 만나야 했던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를 지난 20일 밤 10시에 방영된 KBS 2TV <시사기획 창> '밀정 편' 제2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일본제국주의가 독립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밀정을 활용한 사실을 집중 조명했다. 프로그램 제작팀이 비밀 해제된 일본 기밀문서를 뒤적여 찾아낸 한국인 밀정만도 895명이나 된다. 더 뒤지면 더 나올 것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 일본 문서에 밀정으로 적혀 있다 해서 곧바로 밀정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중 스파이도 있을 수 있고, 기록 속에 거짓이나 부실이 담겼을 수도 있다. 일본인 작성자가 공적을 부풀리고자 상황을 과장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 화면에 표기된 895명 전원이 일본을 도운 밀정이라고 확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에 관해서는 프로그램 제작진의 신중이 요구된다. 프로그램에서 표출되는 제작진의 자신감이 좀 과도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점이 있다. 895명이 맞든 안 맞든 혹은 그 이상이든 간에, 적지 않은 수의 밀정이 일본을 위해 일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서글픈 것은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이다. 13일 방영된 '밀정 편' 제1부에서는 안중근 의사와 함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준비한 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은 우덕순 같은 인물도 일본 기밀문서 속에서 밀정으로 등장할 정도다.

밀정들에게 값비싼 향응을 제공하기도 했던 일본
 
일본은 밀정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활동비를 지급했다. 초급 공무원보다 나은 대우를 해줬다. '큰 건'이 있을 때는 별도로 거금을 챙겨주기도 했다. 이따금 값비싼 향응을 제공한 적도 있다. 생활이 곤궁한 해외 독립투사들에게 미끼가 될 수도 있는 일거리였던 것이다.
 
그런 밀정들이 김구 주변에도 당연히 있었다. 43세 나이로 임시정부에 합류할 당시인 1919년 10월, 김구는 경무국장에 임명됐다. 경무국장 직무 속에 밀정 색출도 있었다. 20명 정도의 청년들이 경호원 명의로 김구를 보조하면서 밀정 탐색을 전개했다. 그런데 그런 경호원들 중에도 밀정들이 암약하고 있었다. 방송이 23분을 경과한 시점에서 이런 내래이션이 나온다.
 
"그러나 밀정은 늘 가까운 곳에 숨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김구와 함께 밀정을 적발했던 경호원들 가운데서도 밀정은 존재했다. 김구와 7년을 동고동락했던 경호원 한태규가 바로 밀정이었다."
 

한태규가 밀정이라는 사실은,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발생한 한국인 피살 사건을 계기로 우연히 발각됐다. <백범일지>에 이 사건이 소개돼 있다. 이때는 김구가 경무국장 직을 떠난 뒤였다.
 
"계원(桂園) 노백린 형이 어느 날 아침 일찍 나의 집에 와서 '뒷 길가에 어떤 젊은 여자 하나의 시체가 있는데, 중국인들이 한인이라고 떠드니, 백범 어서 나가봅시다' 하는 것이었다. 계원과 함께 가서 보니 명주의 시체였다."
 

김구가 아는 여자였던 것이다. <백범일지>에는 성 없이 명주란 이름으로만 나온다. 김구는 명주의 시신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살해 수법이, 자신이 부하들에게 가르친 방식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김구는 자기 부하 중 하나가 범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 그런 예단을 갖고 명주의 최근 행적을 탐문하던 중에 맞딱트린 용의자가 바로 한태규다. 김구가 확인한 한태규의 살인 동기는 이랬다. <백범일지>의 한 대목이다.
 
"한(韓)은 내가 경무국장을 그만둔 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왜놈에게 매수되었는데, 밀탐을 하며 명주와 비밀 동거하던 중 왜의 주구인 것이 명주에게 알려졌다. 명주는 배운 것 없는 무식한 하류 여자이나, 애국심이 두텁고 나 김구를 극히 경애하니 반드시 고발할 태세여서 흔적을 없애기 위해 암살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밀정이란 사실이 김구에게 알려질까봐 명주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방송이 25분을 경과한 시점에서 <시사기획 창>은 "가장 믿었던 후배가 일제의 밀정이었다는 사실에 김구는 큰 충격을 받았다"는 내래이션을 내보낸 뒤 "그런 악한을 절대 신임했던 나야말로 세상에 머리를 들기 어렵다는 자괴감이 들었다"라는 김구의 회고담을 소개했다.
 
세 차례나 전개된 김구에 암살 공작

김구 주변의 밀정이 한태규 한 사람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이 히로히토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졌다가 미수로 끝나고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이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일본군 지도부에 폭탄을 투척한 일을 계기로, 두 사건을 기획한 김구는 국제적 인물로 급부상했다. 그러자 일제는 김구 암살을 목표로 밀정 조직을 가동했다. 국가기관원을 동원하는 일반적 방법으로는 김구와 임시정부를 파괴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방송이 29분을 경과한 시점에서 내래이션이 나온다. "일제는 김구 선생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다"면서 "암살 시도가 본격화됐다. 어김없이 밀정이 동원됐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김구에 대한 특종 공작(암살 공작)'이었다. 이 공작은 세 차례나 전개됐다.
 
1차 때는 밀정 오대근이 발각돼 숨지는 바람에 실패했고, 2차 때는 포섭 대상인 독립투사 정화암이 걸려들지 않는 바람에 실패했고, 3차 때는 밀정에 포섭된 독립투사 이운환이 김구의 심장을 저격했지만 중상을 입히는 데 그치는 바람에 실패했다.
 
해방 4년 뒤인 1949년, 김구는 밀정이나 다름없는 안두희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밀정에 의한 암살 위협을 평생 느끼며 살다가 결국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파란만장한 인생역 정을 걸었던 것이다.
 
독립투사들 주변에 득실댄 밀정

이처럼 김구를 포함한 독립투사들 주변에는 언제나 밀정들이 득실댔다.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던지, 일본 국가기관이 김구·김좌진·김원봉 같은 주요 지도자들의 신체적·성격적 특징까지 일일이 꿰고 있었을 정도다.
 
독립운동을 해보겠다며 자신을 찾아온 이봉창을 김구는 1년 가까이 지켜봤다. 그는 자신이 술값을 내기 힘든 상황 속에서 이봉창을 자주 만나며 친분을 쌓았다. 그러는 사이에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김구가 시간을 지연시킨 것은 정세를 분석하고 거사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가 봐도 독립운동과 무관해보이는 올백 머리의 멋쟁이 청년을 알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독립운동 진영 내에 밀정이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낯선 이봉창을 충분히 관찰하며 신뢰를 쌓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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