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막을 내린 tvN 월화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는 지난 2016년 미국 ABC 방송국에서 제작한 <지정생존자>의 리메이크작이다(미국판은 2017~2018년 시즌2에 이어 올해 시즌3까지 제작됐다). 국회의사당 테러로 대통령 및 행정부 각료들이 모두 사망해 정치경력 6개월의 환경부장관 박무진(지진희 분)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정치 드라마다. 

< 60일, 지정생존자 >는 원작에 가깝게 연출하려는 노력이 엿보였지만 한국과 미국이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한국에 맞는 각색이 불가피했다. 특히 테러범의 배후를 추적하는 게 주요 스토리였던 원작과 달리 60일 안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한국 상황에 맞게 대선을 준비하는 인물들의 고뇌와 갈등이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졌다. 지진희는 물론이고 손석구, 최윤영, 이무생, 박근록 등 청와대 직원들을 연기한 배우들도 기대 이상의 호연을 펼쳤다.

하지만 지진희와 허준호 정도를 제외하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청와대 직원들을 연기한 배우들이 시청자들에게 다소 낯선 얼굴들이었다는 점은 < 60일, 지정생존자 >에서 다소 의아한 부분이었다. 대신 제작진은 박무진 권한대행과 대립(혹은 협력)하는 배우들 쪽에 무게감을 더했다. 차기 유력 대선후보이자 선진공화당 대표 윤찬경을 연기한 배종옥과 이관묵 합동참모의장 역을 맡은 최재성이 그 주인공이다.

대배우의 관록으로 표현한 박무진 권한대행의 라이벌 겸 국정운영 파트너
 
 배종옥이 연기한 윤찬경 대표는 많은 오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정치인이다.

배종옥이 연기한 윤찬경 대표는 많은 오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정치인이다.ⓒ tvN 화면캡처

 
연극영화학 석사이자 언론학 박사, 그리고 모교인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배종옥은 사실 연기 쪽에서는 이미 '달인'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표현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다가 1985년 KBS 특채 탤런트로 데뷔한 배종옥은 데뷔 초부터 안정된 연기력을 인정 받으며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 나갔다. 

박중훈의 출세작인 영화 <칠수와 만수>에서 지나 역,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젊은 날의 초상>에서 점숙을 연기한 배종옥은 1992년 영화 <걸어서 하늘까지>를 통해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배종옥은 90년대 초반까지 자신의 출연작들을 연기경험을 쌓기 위한 '습작'같은 작품들이었다고 밝혔다('습작'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배종옥의 위엄).

배종옥은 강수연이나 고 최진실, 채시라 같은 배우들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된 적은 없지만 어떤 배역을 맡아도 자신의 색깔을 입혀 척척 소화해 내는 배우로 명성이 자자하다. 특히 '노희경 작가의 페르소나'로 불릴 정도로 노희경 작가와는 매우 인연이 깊다. 실제로 배종옥은 1998년 <거짓말>을 시작으로 <바보 같은 사랑> <꽃보다 아름다워> <굿바이 솔로> <그들이 사는 세상>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라이브>까지 노희경 작가와 7개의 작품을 함께 했다.

불과 1년 전 작품인 <라이브>에서도 주연 4인방 중 한 명인 안장미 역을 맡았던 배종옥은 < 60일, 지정생존자 >에서 비중이 썩 크지 않은 선진 공화당의 윤찬경 대표를 연기했다. 윤찬경 대표는 양진만 대통령(김갑수 분)의 국회 시정연설을 보이콧한 덕분에(?) 테러에 휘말리지 않고 생존하는 행운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유력 대선후보였다가 박무진 대행과 기적의 생존자 오영석 의원(이준혁 분)에게 차례로 지지율을 역전 당하는 비운(?)의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찬경 대표는 성소수자인 아들을 위해 박무진 대행이 입법하려는 차별금지법을 지지하고 테러단체 배후 김실장(전박찬 분)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박무진 대행을 적극 돕는다. 비록 배종옥이라는 큰 배우의 이름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비중이었지만 배종옥은 결코 성의 없는 연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 60일, 지정생존자 >를 마친 배종옥은 곧바로 21일 첫 방송되는 MBN 수목드라마 <우아한가>에 출연한다.

군사 쿠데타 일으킬 거 같은 얼굴로 쿠테타 진압한 참군인
 
 최재성은 <60일,지정생존자>에서 군인의 긍지와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는 이관묵 합참의장을 연기했다.

최재성은 <60일,지정생존자>에서 군인의 긍지와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는 이관묵 합참의장을 연기했다.ⓒ tvN 화면캡처

 
아스트로의 차은우나 <프로듀스101 시즌2>의 강다니엘 같은 미소년들을 흔히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라는 의미로 '만찢남'이라 부르곤 한다. 하지만 만찢남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1980년대 중반에도 영화계에는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배우가 있었다. 바로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오혜성을 연기했던 최재성이다. 최재성은 미남이면서도 반항기 있는 외모로 최민수가 등장하기 전까지 연예계를 대표하는 터프가이로 군림했다.

사실 90년대 들어 <여명의 눈동자>와 <두려움 없는 사랑> 정도를 제외하면 주연배우로서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한 최재성은 전성기가 짧았던 대표적인 배우로 꼽힌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조연도 마다하지 않는 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야인시대>의 마루오까 형사와 <개와 늑대의 시간>의 암흑가 보스 마오를 연기하면서 발산한 카리스마는 주인공이었던 안재모와 이준기를 능가했을 정도.

2010년대 들어서는 다소 후덕해진 외모로 재력가나 정치인 또는 비운의 아버지를 주로 연기한 최재성은 < 60일, 지정생존자 >에서 합동참모의장 이관묵을 연기했다. 국방부 장관이 테러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극 중에서는 실질적인 군의 1인자였다. 양진만 대통령은 물론이고 박무진 권한대행 역시 나약한 안보관을 가졌다고 믿는 강성군인이다.

특히 박무진 권한대행의 직무가 시작되고 북한 잠수함이 남한의 영해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박무진 권한대행과 엄청난 갈등을 빚는다. 특히 통계확률을 근거로 선체고장에 따른 표류가능성을 언급한 박무진 권한대행을 대놓고 무시하고 사실상 전시상태나 다름 없는 '데프콘1'을 발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관묵 합참의장은 박무진 권한대행으로부터 군지휘권을 박탈 당했다.

한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이관묵 합참의장은 15회에서 은희정 육군참모총장(이기영 분)의 쿠테타 기도를 저지하며 복귀한다. "박대행에게 모욕 당한 게 억울하지도 않냐"는 은희정 육참총장의 분노 섞인 질문에 "자국민에게 총을 겨눈 '우리 군의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를 내가 반복할 거라 믿었나?"라고 일갈하는 장면은 믿음직한 참군인의 모습이었다. 이관묵 함참의장은 박무진 권한대행에게 쿠테타 진압 완료를 보고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최재성의 묵직한 연기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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