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포스터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포스터 ⓒ 무브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 초이스 장편 부문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미스터리와 판타지란 장르에 청춘과 여성의 이야기를 녹여냈다.

만약 아침에 눈을 떴더니 유령이 되어 있다면 어떨까? 영문도 모른 채 죽어버린 유령은 이유를 찾아 부유하다 여러 죽음과 마주칠 것이다.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해 되짚어가는 길을 걷는 것처럼.

죽음의 시작에서 삶을 발견한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스틸컷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스틸컷 ⓒ 무브먼트

 
외곽의 도시는 다세대 주택, 논과 밭, 공장이 들어서 있다. 주변은 재개발로 여기저기가 빈집투성이다. 집은 많지만 정작 살 집은 없어 공허하다. 혜정을 포함해 두 명의 룸메이트가 한집에 산다.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뭐 하는지 알 수 없다. 번화가에서 밀려난 소도시의 작은방은 피곤에 찌든 몸을 누일 공간으로 전락한다. 혜정은 이곳이면 족하다.

영화는 혜정(한해인 분), 효연(전소니 분), 수양(심소현 분)을 전지적 시점을 바라본다. 셋은 소외된 사람들이다. 혜정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동안 오히려 또렷하게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탓에 뒤틀린 사고를 갖고 있다. 집을 떠나며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스무 살이 되어 가장 좋았던 일로 나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이라 고백한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살고자 다짐했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다. 연애도 결혼도 관심 없다. 매일 똑같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같이 일하는 민성(이승찬)이 고백해도 시큰둥하다. 태어났기에 살아갈 뿐인 안타까움. 찬란의 청춘의 나날들이 아깝기만 하다.

혜정은 새로운 일과 관계에 지쳤다. 계속 비슷한 일을 하며 사는 인생을 오로지 견디고 있을 뿐이다. 눈에 띄는 게 싫어 오히려 외로움이 편한 사람이다. 어쩌면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 하나 감당하기 힘들어 눈 감고 귀 닫는 사람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스틸컷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스틸컷 ⓒ 무브먼트

 
반면 룸메이트 지연의 동생 효연은 삶의 욕망이 큰 사람이다. 혜정은 안될 거라며 쉽게 포기하는 반면 효연은 왜 안되냐며 악바리처럼 달려든다. 못 해본 게 너무 많고, 지긋지긋한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친다. TV에 나오는 가족처럼 사람답게 살고 싶도 잘 살고 싶다. 엄마처럼 아무 잘못 없이 죽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빠져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게 파고드는 덫에 걸린 효연은 불행과 더 가깝다. 불어난 빚만큼 저당잡힌 삶을 죽어야만 끝낼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여기에 할머니와 아빠와 사는 아이 수양이 있다. 수양은 철저히 방치되어 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폐가에서 시간을 보내며 아빠를 기다린다. 애타게 아빠를 찾지만 결국 아빠와는 묵묵부답이다. 혜정이 살아있을 때 수양은 도움을 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수양은 유령이 된 혜정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던 혜정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함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원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지만 죽어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어차피 사는 의미도 없으니 죽어도 된다고 말하는 논리는 꽤나 섬뜩하다. 너를 밟아야 내가 사는 정글 속에서 처음으로 혜정은 타인을 도와준다.

인간은 타인과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스틸컷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스틸컷 ⓒ 무브먼트

 
삶은 연결된 복잡하고 다층적인 세계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는 외로움과 무기력에 찌든 주인공이 관계의 단절을 선택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소임만 다하면 된다고 믿었다. 때문에 연애나 결혼도 관심 없고 미래를 계획해본 적도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출근해서 퇴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나 같은 사람은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인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령이 돼 시간을 거꾸로 살다 보니 오히려 살고 싶어졌다.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나고, 타인의 부탁을 들어주었으면 싶다. 사는 데 급급해 남 돌아볼 시간이 없던 혜정은 죽어서야 주변을 돌아본다.

결국 들어줄 수 있는 부탁도 얽히기 싫어 일부러 외면했던 과거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과연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면 달라졌을까? 생각보다 우리의 삶은 타인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스틸컷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스틸컷 ⓒ 무브먼트

 
매일 한결같이 일하는 혜정을 마음에 둔 민성은 이런 말을 한다. 혜정씨를 보면서 내 삶이 헛된 게 아니라 하루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빛나는 거라고 말이다. 내일이 없는 유령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왔던 길을 반대로 걷는다. 잠들어 있던 모든 어제의 밤을 지켜본 후에야 걸음을 멈춘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는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인 10월 4일을 기점으로 시간 위를 걷는다. 8일부터 10일까지는 순행 전개가 펼쳐지고, 이후 혜정이 죽은 10일부터 추석인 4일까지 역행하는 전개로 이어진다. 유령의 시점으로 진행되어 혼란스러울 거라는 편견을 깬 친절한 구성과 내레이션이 강점이다. 유은정 감독의 데뷔작이자 몽환적이고 판타지 요소가 강할 거란 예상과 달리 빚, 재개발, 가족, 집, 취업 등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도 여운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도시 외곽 공장 노동자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그는 자신을 되돌아본다. 특별한 꿈이나 계획 없이 근근이 버티던 여성은 죽고 나자 간절히 살고 싶어진다. 유령이 된 혜정의 담담한 내레이션으로 비극을 들여다본다. 삶은 역시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임에 틀림없다. 유령도 나도 잊히지 않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노력한다. 왔던 길을 반대로 부단히도 걷는 행위를 통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밤의문이열린다 한해인 전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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