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방해하지 않고 당연히 조용히 관람하는 게 상식 아니냐."
"'시체'처럼 공연만 보라는 것은 너무 과한 요구다."


공연계가 때아닌 관람문화 논란으로 홍역을 겪고 있다. 연극을 관람하는 올바른 태도를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는 것. 연극, 뮤지컬 마니아들은 "소리를 내지 않고, 타인을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관람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마니아들이 요구하는 관람 태도가 너무 엄격하다"고 반박한다. 어쩌다 이런 논쟁이 벌어진 걸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 15일 서울 대학로에서 진행된 연극 <프라이드>였다. 손석구, 오혜원, 강한나 등 tvN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의 배우들은 이날 오후 <프라이드> 단체 관람에 나섰다. 드라마에서 국정원 요원 정한모 역을 맡은 배우 김주헌이 이날 연극에 출연하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난 직후 배우들은 '비매너 관람' 논란에 휩싸였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는 배우들이 공연 중에 "웃고 떠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연이어 게재됐다. 당일 공연을 관람한 A씨는 "소극장이고 마이크 없이 진행되는 극인데 (배우들이) 기침을 하거나 대화를 하는 등 지속적으로 소리를 내 공연에 제대로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비난 여론이 커지자 오혜원, 강한나 두 배우는 SNS를 통해 빠른 사과 입장을 전했다. 강한나는 16일 새벽 "관객분들께서 공연을 보시기에 불편하게 만든 점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사과했으며 오혜원 역시 곧바로 "좋은 작품과 관객들에게 누를 끼친 점 반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로써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했다.

공연관람 문화 전반에 대한 논쟁
 
'60일, 지정생존자' 손석구, 강한 남자 분위기 배우 손석구가 1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제작발표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를 원작으로 한 <60일, 지정생존자>는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인해 대통령을 잃은 뒤 환경부 장관이 60일 간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정되면서 테러의 배후를 찾아내고 가족과 나라를 지키는 작품이다. 1일 월요일 오후 9시 30분 첫 방송.

배우 손석구ⓒ 이정민

 
그런데 16일 오후 손석구가 "연극을 즐기고 아끼는 사람으로써 부끄러운 관람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도마에 올랐다. 그는 "몇몇 관객분들의 그릇된 주인의식과 변질된 공연관람 문화가 오해를 넘어 거짓 양산까지 만드는 상황이 당황스럽다"며 "트림, 기지개, 잡담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논란은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입장문 발표 이후 "비상식적인 관람태도를 보여놓고 왜 사과조차 하지 않냐"는 비판도 많았지만, "손석구 말대로 연극 마니아들의 관람 기준이 너무 엄격한 것 아니냐"는 반박도 나왔다.

그 날 손석구와 다른 배우들이 공연 중에 어떤 행위를 했는지 진실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증거가 남아 있는 상황도 아닌데다,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관람태도 역시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극, 뮤지컬의 공연 관람 문화가 다소 예민하고 엄격하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이야기다. 진실공방과 별개로 공연관람 문화 전반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공연계에서는 시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연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뜻의 '시체 관극'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일 정도다. 겨울에 패딩을 입고 있으면 조금만 움직여도 '부스럭' 소리가 난다고 힐난하는 것은 물론, 고개를 숙이면 뒷사람의 시야에 방해가 된다고 지적받기도 한다.

특히 소극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의 경우, 좌석간 거리가 좁고 단차(좌석간 높이 차)가 작아서 주변의 작은 움직임도 더 크게 느껴진다. 때문에 소극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게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청강대학교 뮤지컬스쿨 최승연 교수는 미국 브로드웨이의 예를 들며 한국의 공연 관람문화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공연 마니아들이 '관크'(관객 크리: 부적절한 공연관람매너를 부르는 온라인 신조어)라고 말하는 행위들이 때때로 너무 자의적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모두가 하나의 태도로 반응하는 것을 요구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보면 소극장에서도 (음식을) 먹는 것, 특정 장면에 반응해서 크게 웃는 것, 서로 조금씩 이야기 하는 것, 감동해서 크게 우는 것, 심지어 코를 푸는 것조차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며 "반면 한국에서는 특히 중소극장에서 밀도 있는 내용으로 공연되는 작품의 경우 '숨만 쉬면서 공연을 봐야 한다'는, 매우 불편한 관극 태도를 강요한다"고 덧붙였다.

2014년 소녀시대 티파니와 윤아도 논란 휩싸여

'비매너 관람 논란'이 수년간 반복되는 이유 역시 엄격한 공연 관람문화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014년 소녀시대 티파니와 윤아는 멤버 써니가 출연하는 뮤지컬 <싱잉 인 더 레인>을 관람하던 중 무대 위 써니를 향해 환호하는 등 부적절한 관람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뮤지컬 배우로서 관극문화에 익숙할 법한 정선아 역시 지난 2011년 공연 중에 큰 소리로 웃고 지나친 리액션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사기도 했다. 공연 마니아들이 모여 있는 DC인사이드 '연극 뮤지컬 갤러리' 게시판에서도 비매너 관람을 비난하는 게시글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공연계에서는 한국 공연 시장의 특수성에 대해 언급하며 "공연 마니아들의 관람 문화만 문제라는 식으로 몰고 가는 건 옳지 않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공연 마니아들은 한 배우의 같은 공연도 여러 번 관람하면서 작은 차이를 찾기 때문에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것.

공연기획사에서 수년간 일해 온 관계자 B씨는 "마니아들은 매 공연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의 관람 기회를 해치지 않도록 존중하는 마인드가 기본이다"라며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반대로 오히려 아무런 매너가 숙지되지 않아 문제를 일으키는 관객도 있다"고 피력했다.
 
 극장

극장ⓒ Pixabay

 
제작사 측 역시 주요 고객층인 마니아들의 요구에 맞출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호소한다. 공연제작자 C씨는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공연의 주요 고객층이 대부분 그렇다 보니 (문화를 바꾸자고 하기) 조심스럽다. 대학로 내 창작 뮤지컬, 연극 공연장에 가 보면 소위 마니아층이 전체 관객의 80~90%를 차지한다. 이들이 같은 공연을 10번, 20번 보기도 한다. 물론 과한 측면도 있지만 다른 관객에게 에티켓을 요구하는 이 분들의 입장을 (제작사로서는)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에는 마니아층을 겨냥한 공연들이 따로 있고, 그런 경우 일반 관객들은 거의 오지 않는다고. C씨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공연 시장을 확장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마니아층을 겨냥한 공연과 그렇지 않은 공연이 거의 나뉘어 있다. 마니아층을 겨냥한 공연에도 마니아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이 계속 유입돼야 하는데 일반 관객들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관람 문화가 마니아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공연의 경우 제작사 측에서도 '시체 관극'을 공공연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그런 공연에서는 어셔(안내원)조차 관람 규정을 엄격하게 고지한다. 공연 관계자인지 마니아의 일부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라고 일갈했다. 그러니 마니아를 겨냥한 공연에 일반 관객이 가게 되면, 이번 <프라이드>와 같은 논란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배우 D씨는 "그것(시체관극) 또한 관객문화라고 생각한다. 마니아들에게 그런(엄격한)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며 "공연 중에는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있고 중소극장에서 공연하다 보면 작은 일에도 배우의 집중이 깨지기도 한다. 물론 뻔뻔하게 이어가는 게 배우의 몫이고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방해가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관극 문화 논쟁 해결 방법은 없을까

결국 현재의 관극 문화 논쟁은 한국의 공연 시장이 특정 마니아층의 소비로 유지되는, 작고 불안정한 시장이라는 특수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공연제작자 C씨는 "두 부류를 융화시키는 방법을 찾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양쪽이 조금씩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관람 문화 논쟁이) 화두가 된 것도 그런 과정 중에 하나인 것 같다"고 전했다.

공연관계자 B씨 역시 "지금의 '시체 관극' 문화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마니아층만 비판하는 건 더 좋은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최 교수는 우리나라의 공연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객석은 '하우스' 개념이 되어야 한다. 서로 공연을 함께 보고 있는 '커뮤니티'다. 서로 감동하고 반응하고, 극장 밖에 나가면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 그러면서 내 삶이 행복해지거나 달라지는 것. 그것이 공연의 진짜 목적이 아닌가 생각한다. 엄격한 관람문화는 결국 공연의 본질을 잃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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