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복동>(2019) 포스터

영화 <김복동>(2019) 포스터ⓒ 뉴스타파


해변가에는 파도가 친다. 파도는 사람들과 바람에 의해 더럽혀진 해변을 깨끗이 씻겨준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 해변은 금세 다시 엉망이 되고... 다시 깨끗해지기를 반복한다. 

김복동 할머니는 이러한 해변을 보고 싶어했다. 단지 바닷가에서 태어나 살았기 때문일까. 다시는 떠올리기 싫지만,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과거이기에 진실을 이야기해야만 했던 당신의 삶을 비추어 보신 것은 아닐까.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된 후 인권운동가의 삶을 살다 가신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김복동>에 유독 바다와 파도가 많이 나오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김복동>처럼 '위안부'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나 영화는 많았다. <귀향> <아이 캔 스피크> <허스토리> <눈길> 등 관련 작품들이 개봉할 때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졌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 영화들은 우리의 위안부 담론을 확대, 재생산할 뿐 새로운 담론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김복동>은 좀 다르다.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라는 굴레를 벗어나 세계 각지의 여성들과 연대하고 미래 세대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인권 운동가, 김복동을 조명한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에게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것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일본 내 중고등학교에서 위안부에 대한 교육을 하라고 촉구했다. 또 일본에서 박해받는 재일조선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면서 세계 각지의 청년들을 만나 자신의 경험이 담긴 강연을 했다.

다큐에 따르면, 김복동 할머니의 이런 노력에 대해 세상이 조금씩 화답을 하기 시작한다. 대학생들은 한일 위안부 합의와 화해 치유 재단 설립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기도 했다. 미국에도 소녀상이 세워졌고 각국의 언론들은 김복동 할머니를 인터뷰해 보도했다. 대사관 앞 수요집회는 올해 8월 14일부로 1400회를 맞았다. 이 모든 일들은 일본 정부의 권력에 맞서 행동할 줄 아는 인권운동가로서 김복동 할머니의 용기, 그리고 그녀에게 화답한 이들의 연대가 만들어낸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이런 내용은 배우 한지민의 목소리와 만나 더욱 큰 울림을 준다. 그리고 그렇게 김복동>은 현실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영화가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실을 보고 미래를 바꾸자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된다. 

또 <김복동>은 감정적인 작품도 아니다. 오히려 절제할 줄 아는 편집과 기술이 돋보인다. 오프닝만 봐도 그렇다. 영화는 검은 화면을 배경으로 한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과 함께 시작한다. 김복동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갈 당시, 위안소에서의 학대와 고통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다가 열심히 손을 씻는 할머니의 모습이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졌다를 몇 차례 반복한다. 숏과 숏의 반복. 그게 다다. 아무런 설명도, 통곡도, 절규도 없다.

하지만 전혀 관계없는 두 개의 숏이 부딪히는 순간, 그 긴 세월을 아무도 알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보내셨을 할머니의 인생이 스크린에 나타난다. 평생에 걸친 그 악몽을 세면대에 떠내려 보내고 싶으신 할머니의 심정이 느껴진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말처럼, 숏의 충돌이 의미를 창조해낸 것이다. <김복동>의 검은 화면, 그 절제미가 우리를 더 아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중간중간 차마 숨기지 못한 감정이 툭 튀어나오는 순간들이 있다. 증인이 있는데 왜 증거가 없냐는 항변, 위안부에 관한 일체의 교육을 하지 않는 일본의 현실을 보면서 잊혀서는 안 된다는 당부, 피해자 의견 없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분노와 정부에 대한 배신감, 함께 끝까지 싸워 달라는 부탁, 아베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한숨과 담배, 용서할 준비가 되었으니 일본 정부는 그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기자회견 등이 그것이다.

이 순간들이 모여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든 눈보라가 치든 일본 대사관을 지켜보는 평화의 소녀상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소녀상이 왜 필요했는지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녀상을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애틋함과 회한의 눈빛을 지켜보며...

그래도 <김복동>은 끝까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 괴로움, 희생을 알아달라거나 함께 해달라고 애써 간청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고, 영화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대신 작은 질문을 하나 던진다. 

"같이 싸워줄 거죠?"

내 눈가에 글썽이는 눈물은 내 이성에 앞서 던진 질문에 대답했다. 소녀상 옆에서 싸우겠다고, 그간 외면하고 지내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스크린을 쳐다보기도 힘들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하는 것이더라도 그 참회록을 쓰며 결코 당신들을 잊지 않겠다고, 또 지금까지의 아픔이 있었던 만큼 마지막 꽃 한 송이는 보셔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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