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방송된 KBS1 <시사기획 창>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으로 구성됐다. 제작진은 일본 외교사료관 등을 뒤져 입수한 5만 장의 기밀문서를 토대로 독립운동가들을 팔아 넘긴 밀정 895명의 명단을 밝혀냈다.

청년 기자 2인이 밀정의 기록을 찾아 중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숨은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우리가 몰랐던 밀정들의 존재를 밝혀낸 것 역시 대단한 성과였다. 방송 직후 누리꾼들의 호평도 쏟아졌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2부작 특집 '밀정' 포스터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2부작 특집 '밀정' 포스터ⓒ KBS

 
'안중근의 동지' 우덕순이 사실은 밀정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895명의 밀정 중에서 누리꾼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인물이 바로 '우덕순(1879~1950)'이다. 우덕순은 안중근 의사와 함께 거사를 준비했던 동지였다.
   
 의거 직전 함께 사진을 촬영한 거사 동지들 (좌로부터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

의거 직전 함께 사진을 촬영한 거사 동지들 (좌로부터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 국가보훈처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우덕순·조도선·유동하 등과 함께 거사를 준비하면서 우덕순 등은 채가구역에서,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각각 이토를 저격하기로 결의했다. 실패를 대비해 이중으로 거사를 모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토가 탄 열차가 우덕순이 대기하고 있던 채가구역을 지나침으로써 다음 정거장이었던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는 데 성공한다. 만약 이토가 채가구역에 내렸다면, 오늘날 우리는 안중근 대신 우덕순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하얼빈 의거로 수감됐던 우덕순이 출옥한 뒤, 1920년대 이후부터 보인 행보를 들어 그를 밀정으로 지목했다. 그 근거는 일제의 어용단체인 '조선인민회'의 하얼빈 지회장을 맡아 활동했다는 사실이었다. 제작진은 우덕순이 일제로부터 밀정에 대한 대가로 활동비를 지급받았으며, 당시 밀정들을 통솔하는 책임자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방송이 나가자 누리꾼들이 받은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당장 방송 직후 우덕순이 독립유공자로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사실을 지적하며 훈장을 박탈하고 파묘해야 한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KBS 시사기획 창 '밀정' 1부 스틸컷

KBS 시사기획 창 '밀정' 1부 스틸컷ⓒ KBS

 
단정하기엔 이르다

사실 우덕순의 친일 의혹은 학계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던 사실이다. 제작진이 지적한 대로 우덕순은 조선인민회 하얼빈 지회장으로 활동하며 일제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았고, 해당 단체는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의 지휘를 받는 친일어용단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덕순의 생애를 연구한 역사학자들 중에는 이미 이 사실을 근거로 우덕순의 변절 의혹을 제기한 이들도 있다.

정운현 국무총리 비서실장과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2017년에 공동 집필한 <안중근家 사람들>에서 안중근의 5촌 조카 안민생의 편지를 공개했는데, 그 편지에서는 우덕순을 변절자로 묘사하고 있다.

'1945년 왜놈들 패전과 동시 왜놈의 주구로 있든 그 우덕순이 서울로 도망 와서 애국자로 행세하였으며 지금 이곳의 독립기념관에 애국열사로 모셔 있는 이 사실은 임이 지난일이라 할지라도 우리 민족사를 올바르게 사실대로 정립하기 위하여 밝혀져야 할 일'

하지만 이에 대해 함부로 '친일파'라 단정할 수 없다는 반박 의견도 존재한다. 변절을 했다기엔 우덕순의 행보나 우덕순에 대한 일제의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몇 가지 근거를 살펴보자. 우선 KBS 제작진이 지적한 문제의 단체, 조선인민회 하얼빈 지회에 참여하고 있을 당시 우덕순은 '만몽산업회'라는 단체의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해당 단체는 김좌진, 김교헌, 조성환, 현천묵 등 대종교를 믿는 독립운동가들로 구성된 민족운동단체였다.

1923년 8월 김좌진은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친일 밀정이었던 배정자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때 우덕순이 배정자를 소수분으로 유인하는 등 적극적으로 관계했음이 당시 일본 외교사료관 문서에서 드러나고 있다.

특히 김좌진은 하얼빈 지역 내 일제의 정황에 대한 조사를 우덕순에게 맡기고, 혁명군 지부장을 우덕순에게 맡기려고 했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였다. 당시 일제는 우덕순과 김좌진을 '한국 폭도의 수괴'라고까지 기록했다.

실제로 조선인민회는 비밀 조직이 아닌 공개적인 조직으로, 상하이 임시정부는 조선인민회 간부들을 '7가살(七可殺)'에 포함시켜 처단했을 정도로 이미 악명 높은 조직이었다. 그런 조직의 수장이었던 우덕순의 정체를 과연 김좌진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몰랐을까?

우덕순에 대한 일제의 기록에서도 그가 정말 변절자였는지 의심케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1934년에 기록된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외국의 용의 조선인 명부'에는 우덕순에 대해 '배일사상이 농후하다'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안중근의 동지였다는 이력 때문에 지속적으로 일제의 '요시찰 대상', 쉽게 말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로 해방 직전까지도 옥살이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KBS의 결론, 조금 신중했어야

이러한 근거를 들어 안중근 연구의 권위자인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014년에 발표한 자신의 논문에서 일제와 타협했다기보다는 위장 전술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무엇보다 우덕순은 해방 직후 귀국하여 동포들의 귀환 사업과 동지였던 안중근 선양 사업에 앞장서며 독립운동계의 원로로 대우받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친일 조직의 수장이었던 우덕순이 해방 직후에도 독립운동가들의 지탄을 받지 않았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위장 전술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조성된 우덕순의 묘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조성된 우덕순의 묘ⓒ 김경준


이처럼 우덕순의 친일 의혹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 차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여러 정황 증거를 토대로 우덕순의 친일 의혹에 반박하는 의견도 존재하는 만큼, 섣불리 그를 밀정이라 결론 내린 KBS <시사기획 창>의 보도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만약 후속 연구를 통해 우덕순의 밀정 의혹이 해소된다면, 보도로 인해 훼손된 독립운동가 우덕순의 명예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덧붙이는 글 해당 기사는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이 2014년에 발표한 학술논문 <우덕순의 민족운동과 해방공간 활동>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또한 이 기사를 쓴 필자는 <우덕순의 생애와 민족운동>으로 2018년도에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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